도서관센터 칼럼

▲ 그림책작가 김중석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가끔 ‘작가와의 만남’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다. 잠시 생각을 해본다. 독자들이 작가에게 뭐가 궁금한 걸까? 어린 독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잠시 망설이지만 결론은 항상 비슷하다. 가겠다고 한다. 내 책을 좋아해주는 독자들을 만나서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고 아직 내 책을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새로 책을 소개해줄 수도 있으니 즐겁다. 또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어떤가. 그냥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즐겁게 그림그리며 놀다 온다고 생각하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올해는 정기적으로 이런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해봤다. ‘문화가 있는 날’이라는 프로그램인데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도서관, 미술관, 고궁, 박물관, 공연장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무료 혹은 저렴한 비용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작가를 파견하고 도서관은 작가를 맞이한다. 평소 작가를 초청하기 어려운 작은 도서관에서는 작가들이 참여하는 이런 프로그램이 열리니 반응이 뜨겁다고 들었다.

올 한 해 서울, 경기 강사로 지정되어 매달 한 번씩 지역의 작은 도서관들을 찾아갔었다. 부천, 평택, 안양, 하남, 의왕, 인천 등 평소에는 가보지도 못했던 도시들을 찾아갔다. 경기도는 왜 이리 넓은 것인지. 대부분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작가는 매달 다른 도서관을 찾아간다. 다양한 아이들과 학부모, 사서들을 만나게 된다.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게 된다. 어떤 도서관은 작가가 올 때까지 아무 준비가 안되어 있고 또 어떤 도서관은 준비를 잘 갖춰 놓아서 작가를 기분 좋게 해준다. 준비라는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내가 만든 책을 잘 정리해서 한 곳에 가지런히 두기만 해도 된다. 미리 책을 읽고 온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책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도서관을 만나면 왠지 더 반갑다.

“책을 찾다보니 작가님 책이 엄청 많으시던데요. 저희 도서관에 있는 책은 이게 전부입니다.”
“와~ 고맙습니다. 이렇게 준비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이 책은 저도 없는데….”

세심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작가도 기분이 좋아져서 신나게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처음 내가 도서관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흠칫 놀란다. 표정을 보면 다 알 수 있다. ‘요녀석들 오늘 한 번 재미있게 놀아보자.’

일단 내 헤어스타일로 아이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와 폭탄머리 아저씨다”, “안녕~” 조금 과장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온 물건들에 관심을 보이며 슬쩍 다가가 본다. 금세 마음을 풀고 다가온다. 우리집 아이들이 제법 커서 그런지 요런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을 보면 너무 귀엽다.

신청자가 많아서 20명이 넘는 아이들과 수업을 해서 진땀을 뺀 적도 있고 비가 오는 궂은 날씨라 서너 명밖에 모이지 않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해본 적도 있다. 소규모로 모였을 때는 여러 이야기들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엄마들도 함께 자리에 앉아 그림책 작가가 무엇을 하며 사는지, 어떤 그림책을 좋아하는지 서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 만남은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다. 2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다 끝나고 헤어질 때는 서로가 너무 아쉬워한다.

김중석 작가가 펴낸 그림책들.


여러 도서관을 다녀보면 유별난 아이들도 많이 있다. 체험활동을 시작하자마자 무조건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요”라는 질문을 쏟아 붓는 아이들이 있다. 스스로 해보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나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은 편이다. “하기 싫어요”라고 하는 아이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최대한 타이르고 칭찬하면서 어떻게든 할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

질문시간에 “책 한 권 그리면 얼마 벌어요?”, “이거 하면 돈 많이 벌어요?” 라며 묻기 시작하는 아이도 있었다. 또래보다 조금 큰 아이였는데 처음부터 이 수업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가 돈 이야기만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응. 책 한 권 그리면 1억원 정도씩 벌어. 아저씨는 지금까지 그림을 많이 그려서 50억원 정도 벌었어”라고 놀려주려다가 꾸욱 참았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칭찬’인 것 같다. 잘 그리지 못했더라도 잘 된 부분을 칭찬해주면 좋아한다. 무언가 하나는 잘한 것이 있는데 색을 열심히 칠했을 수도 있고, 선이 재미있을 수도 있고, 아이디어가 너무 좋을 수도 있다. 자그마한 좋은 점이라도 끄집어내서 칭찬하는데 기분 나빠할 사람이 있을까.

다 그리면 앞으로 나와서 자기 그림을 자랑하라고 한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그런지 대부분 부끄러워한다. 모기만한 소리로 자기 그림을 보여준다. 몸도 배배 꼬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이고 귀여워라’ 셋째를 낳고 싶을 만큼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만남의 끝무렵에는 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준다. 내 책을 가져오면 좋겠지만 준비를 하지 못한 아이들은 그냥 사인을 해준다. 이 때 동물을 한 마리씩 그려주면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이 이야기를 해주면 동화작가들은 푸념을 늘어놓는다.

“동화작가들은 2시간 동안 침 튀겨가면서 강연해도 아이들이 시큰둥한데 그림작가들은 잠깐 그림 하나 그려주면 애들이 그렇게 좋아하니 우리도 그림을 배워야겠어요.”

확실히 그림은 글보다 직관적으로 보이니 아이들이 좋아한다. 여자 아이들은 토끼, 강아지, 사슴을 그려달라는 아이들이 많다.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호랑이, 용을 그려달라고 한다. 내가 펜을 들고 슥슥 그리면 아이들은 그걸 그렇게 신기해한다. 옆에서 “와~ 와~”라고 탄성을 질러주면 나도 모르게 우쭐한 마음에 한 마리 더 그려본다.

어떤 도서관에서는 여자아이 때문에 난감한 적이 있었다. 사인이 거의 끝나갈 무렵 예쁜 여자아이가 “김연아 선수 그려주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김연아?’ 순간적으로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 아~ 나는 여자를 잘 못 그린단 말야. 게다가 김연아를. 내 솜씨가 다 들통나게 생겼다. 그래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끙끙거리며 겨우 ‘김연아’를 그렸다. 그런데 그 그림을 본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 아닌가. 너무 이상하다며. 못생겼다고. 어쩌란 말이냐. 나는 순간 온몸에서 땀이 흘러 내리는 것 같았다. 나의 작가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내가 이러고도 그림작가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서 선생님이 겨우 아이를 진정시키고 데리고 나갔다.

작가와의 만남을 하면 아이들도 어른들도 좋아한다. 책으로만 보아왔던 작가를 만나니 신기한 것 같다. 작가를 만나서 책도 함께 읽어보고 어떻게 그림책을 만드는지를 살펴보고 사인도 받으니 즐거운 추억이 되는 것 같다. 이런 기회가 더 많이 생겨서 독자들과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김연아’를 그려달라는 것만 아니면 나도 언제나 환영이다.

김중석 작가는 지난 7월 주엽어린이도서관에서 진행한 '그림책 작가의 방' 전시를 통해 독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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