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권우 도서평론가
치욕의 날을 보내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모욕당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하면서 보인 어처구니 없는 작태를 확인하고 있노라면 분노가 치솟는다. 급기야 200만 명이 모였다는 촛불시위는 그야말로 분노의 해일이었다. 아무리 구시대의 정치인들이 모여든 극우 성격의 정권이라해도 이 정도로 국정을 파탄에 이르게 할지는 몰랐다. 입으로는 늘 애국을 외치며 잘 사는 나라 만들어보자고 외쳐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결과는, 그들이 즐겨 쓰던, 국격을 떨어트린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다.

혼란에 빠진 정국을 살펴보면서 맹자에 나온 두 대목이 떠올랐다. 그 하나는 공손추 하편이다. 맹자가 계손이 한 말을 인용했는데 내용인즉 이러하다. “비루한 작자 한 놈이 있어 그놈은 언제나 드높은 언덕을 찾아 올라가서는 이리저리 둘레둘레 돌아다 보면서 저잣거리의 이익은 모조리 긁어모으고자 덤비었다. 사람마다 그놈더러 비루하다고 하기 때문에 쫓아가서 그놈에게서 세금을 받아냈으니, 장사치에게서 세금을 받아내는 법이란 이 비루한 작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 나온 드높은 언덕은 한자로 용단(龍斷)이라 쓰는데, 이것이 변해 농단(壟斷)이 되었다. 짐작할 수 있듯 농단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뜻한다.

이번 게이트가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이나 비밀자료를 넘보았다는 점에서 국정농단이라 말하면서 시작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때 농단은 본뜻보다는 파생된 의미로 자격 없는 사람이 국정을 쥐락펴락했다는 점에 무게가 실려 쓴 말이다. 그러나 넓은 뜻의 농단은 본래의 농단이 되는 법이다. 결국에는 재단을 세우겠다며 재벌들한테 돈을 뜯어냈고, 이를 바탕으로 사욕을 채우려 하지 않았는가. 비루한 놈들이나 하는 짓을 대통령이 거들었으니 시민의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

다른 하나는 양혜왕 하편에 나온다. 제선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탕왕이 걸왕을 내쫓고 무왕이 주왕을 정벌하셨다니 사실인가요?” 옛기록에 나와 있다했더니 다시 물었다. “신하로서 그의 주군을 죽였는데 그래도 옳을까요?” 이 질문에 맹자는 다음처럼 대답했다.

인을 깨뜨린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를 깨뜨린 자를 잔(殘)이라 하는데, 잔적(殘賊)을 일삼는 자는 한놈의 왈패라고 부릅니다. 한놈의 왈패 주를 죽였다고 들었지 그의 주군을 죽였다고는 듣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선왕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는 기록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통치를 잘못하여 민심을 잃은 임금은 그의 신하에게 죽임을 당해야 마땅하다고 했으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오금이 저렸을 테다. 지금의 게이트를 보면 대통령으로서 품위를 지킨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한낱 잔적이었을 뿐이다. 맹자라면 지금 이 사태를 보고 무엇이라 했겠는가? 모골이 송연해진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로 갑론을박하고 있다. 정의감이 앞선 것도, 정치적 속셈이 숨어 있는 것도 있을 테다. 그러나 분명히 할 것이 하나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역사에 반드시 남겨야 한다는 점이다. 특검이 시작되었으니 죄상을 소상히 밝히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검찰이 공소장에 기록한 사실만으로도 대통령은 탄핵당해야 마땅하다. 국정을 농단해 뇌물을 받아먹고 사익을 추구한 대통령인지라 탄핵당했다고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는 말이다. 맹자의 역성혁명을 오늘의 말로 바꾸면 탄핵이라 할 수 있을 테다.

맹자 등문공 하편에 “천하의 넓은 고장에 살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 길을 걷다가 뜻대로 되면 백성과 더불어 나아가고”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이와 정반대되는 대통령과 지난 세월을 함께 했다. 그래서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수치스럽다는 말이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