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 역사문화연구소장, 전 건국대 교수
장자(莊子, BC369~289)의 본명은 주(周)이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말기 송나라 사람으로 지금의 하남성 부근 몽(蒙)이란 작은 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곳에서 옻나무 밭을 돌보는 하급관리로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인간관계의 본질이란 담론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 때 그의 사상을 집대성한 것이 오늘날「장자」이다. 장자의 구성은 내편, 외편, 잡편 등 총 33편으로 꾸며져 있으며, 이 중 장자 자신이 직접 쓴 것은 내편뿐이고 나머지는 그의 후학들이 훗날 추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노자와 장자를 한데 묶어 노장(老莊)사상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노자와 장자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노자가 무위자연(無爲自然)에 바탕을 둔 현실주의자라면, 장자는 세상의 모든 사물이 서로 얽혀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는 만물일체론(萬物一體論)을 주장하며, 속세를 초월해 유유자적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노자의 ‘도덕경’을 깊은 사색을 필요로 하는 철학적 작품으로 본다면, ‘장자’는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을 뛰어넘는 도취와, 망아(忘我) 상태로 빠져들게 하는 문학작품에 비유되기도 한다.

장자는 만물을 지배하는 근본 원리를 ‘도(道)’라 칭하고, 말로 설명하거나 배울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보았다. ‘도라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한계나 경계도 없으며, 우리들 인생은 도의 영원한 변형에 따라 그저 흘러갈 뿐이다’. 따라서 세상 만물은 저절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며 여기에 인간이 끼어들어 좋은 것, 나쁜 것, 선한 것, 악한 것을 구별짓거나, 이 상태가 저 상태보다 낫다는 등의 가치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덕이 있는 사람은 항상 환경, 개인적인 애착과 인습 등의 욕망에서 벗으나 흐르는 물이나 바람처럼 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장자의 사상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은 장자의 내편 첫 편에 실려 있는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나비의 꿈(胡蝶之夢)’과 외편 20편의 산목(山木)에 올라있는 ‘빈 배(虛舟)’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나비의 꿈은 장자(장주) 자신이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꾼 이후, 세상의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나로 변한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역설한다. 또한 빈 배의 이야기는 진정한 힘의 원천은 비움에 있고, 마음이 비어있으면(虛) 세상에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라고 강하게 묻고 있다.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떠내려 와서 내 배에 부딪히면 비록 속이 좁은 사람이라도 화를 내지 않지만,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떨어지라고 소리를 지른다. 한 번 소리를 쳐서 말을 듣지 않으면 다시 소리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세 번째 소리를 치고 그 후에는 욕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화를 내지 않다가 나중에 화를 내는 이유는 처음에는 빈 배였지만 나중의 배는 누군가가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비우고 산다면 그 누가 욕을 하겠는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대방과 다투거나 싸울 때 상대방을 빈 배처럼 생각하면 싸울 일이 없다.”

12월, 그간 두껍게만 느껴졌던 달력도 마지막 한 장을 남겨 놓고 모두 떨어져나가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지난 여름 무성함을 자랑하던 가로수들도 무거운 몸으로는 겨울을 나기가 힘겹다고 느꼈는지 어느새 그 많은 잎새를 털어내고 앙상한 가지만을 남겨 놓고 있다. 우리들 인간도 저들 가로수처럼, 아니 빈 배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생의 강을 유유히 흘러갈 수 있는 지혜를 길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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