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수 소설가
봄부터 정성껏 모종을 부어 농장 주변에 해바라기를 심었다. 수확에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농장에 해바라기가 활짝 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공동체 회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90m에 달하는 밭둑에 해바라기를 심는 일이 호락호락할 리 없건만 다들 싱글벙글 신명이 났다. 만개한 해바라기가 밭둑 전체를 노랗게 물들이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절로 입이 헤벌어졌다.

여름이 되자 해바라기는 무서운 기세로 쑥쑥 자라서 꽃망울을 맺었고, 하늘이 눈부시게 푸른 어느 초가을 폭죽 터지듯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황홀한지 고된 밭일에도 다들 미소를 지었다. 만개한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새참을 먹던 중에 내가 씨앗이 영글면 해바라기씨유를 짜서 전을 부쳐 먹자고 농담 삼아 말을 건네자 누군가 "그랬씨유"하고 아재개그를 하는 바람에 다들 까르르 뒤집어졌다. 꽃잎 사이로 씨앗이 야무지게 들어차서 영글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들은 내심 기름이 얼마나 나올까 기대를 했고, 해바라기씨유로 지져먹는 전은 어떤 맛일까 하는 상상으로 군침을 삼켰다.

그런데 수확을 목전에 둔 어느 날 농장에 나가보니 그 많던 해바라기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밤사이에 누군가 깡그리 서리를 해간 것이다. 누구의 소행인지 알 길은 없으나 호시탐탐 때를 노렸을 그 음험한 눈길을 생각하면 빠드득 이가 갈렸다.

떡심이 풀린 우리들은 밭일이고 뭐고 터덜터덜 술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들은 해바라기를 잃어버린 상실감을 애써 떨쳐내고 다 함께 농장에 모여서 빼곡히 알이 들어찬 들깨를 수확했다. 행여 알이 쏟아질 새라 조심조심 낫으로 베어서 일주일간 햇볕에 널어 정성껏 말린 뒤 빙 둘러앉아서 막대기로 들깨 대를 살살 두들겼다. 막대기로 한 번 칠 때마다 쏴아 쏴아 쏟아지는 들깨에 하하 호호 신바람을 냈고 누군가는 김준태 시인의 ‘참깨를 털며’라는 시를 낭송했다. 깨끗이 씻어서 물기 뺀 들깨를 우리는 그늘막 밑 평상 위에 신문지를 깔고 널었다. 들깨를 널면서 우리는 조만간 농장에서 들깨 수제비를 해먹기로 약속을 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뿔싸, 다음날 농장에 나가보니 들깨가 자취도 없이 사라진 게 아닌가. 우리는 한동안 멍하니 넋을 놓았다. 누구의 소행인지 짐작이라도 가면 좋으련만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렇다고 농장에 CCTV를 설치할 수도 없고 우리들은 허공에 대고 에이, 어떤 놈인지 잘 먹고 잘 살라고 공허하게 욕을 한 뒤 평상 위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텃밭농사를 짓다보면 남이 애써 농사지은 걸 자기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서리하는 현장을 들키고 나서도 인심 박하다고 되레 열을 내기도 한다. 적반하장도 이만하면 금메달감이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유분수지 도대체 저런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내 깜냥에는 도무지 이해불가능이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이해가 간다.

떼강도들이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아오면서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으니 까짓 농산물쯤 대수겠는가. 하물며 떼강도의 수괴가 피눈물의 뜻을 알겠다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기막힌 시절이 아닌가. 만약에 떼강도들을 일벌백계하고 그들이 훔친 물건을 남김없이 주인에게 되돌려준다면 남의 물건을 사사로이 여기는 세태는 사그라들지 않을까. 과연 그렇게 될지 어떨지 횃불을 들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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