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동구 멱절길 91세 이경식 어르신

내년이면 92세가 되는 이경식 어르신이 아들 내외, 손자들과 함께 온 가족의 화목을 다짐하고 있다. 

"고양땅이 한반도 최초의 재배볍씨가 발견된 고장이잖아. 영양이 풍부한 고양쌀 덕분에 내년에도 건강할 거야.”
2017년 정유년이 밝으면 92세가 되는 이경식 어르신은 몸도 생각도 젊은이 부럽잖다.

4대째 이어오는 벼농사꾼답게 직접 농사지어 수확한 쌀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어르신은 파주 적성면이 고향이다. 지인의 소개로 연천군 백학면에 살던 처녀랑 19세 때 결혼했다. 25세가 되던 해에 큰딸이 태어났는데, 6·25 전쟁이 터져 큰딸을 등에 업고 부모 동생들과 함께 피난을 왔다.

당하리에서 머물다 군에 징집되어 보급부대에 배속되어 강원도 김화지역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휴전이 된 후 가족들과 상봉해서 살다가 지금의 주엽동으로 옮겨와 적성에서 선조들 대대로 이어온 벼농사를 다시 시작했다. “남의 논 2000평을 얻어서 어렵게 농사를 시작했기에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일해야 했다”는 어르신은 “해마다 조금씩 논도 구입하고, 2명의 남동생을 결혼까지 시켰다”고 회상했다.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1990년 9월 무섭게 쏟아진 비에 한강둑이 붕괴되며 살림살이와 농기계 뿐만 아니라 살던 집의 용마루까지 물에 잠기는 큰 수해를 입었다. 재봉틀 하나만 겨우 자전거에 싣고 다급히 피신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정신이 아찔할 정도라고. 물난리를 겪은 이재민들과 함께 일산초등학교 교실에서 한 달 넘게 기거하다가 10월 중순이 돼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행히 군인들과 친척들의 도움으로 한 달만에 흙집을 복구했다.

“물난리를 겪은 이재민들에게 나라에서 정부미를 제공해주었는데 맛있는 고양쌀만 먹던 입맛에 도저히 밥맛이 없어 못 먹겠더라구. 다시 팔아버리고 수매 등외 판정을 받은 물에 잠긴 벼를 거둬 다음해 수확 때까지 아껴서 먹으며 버텼지.”

당시의 기억을 더듬는 이경식 어르신의 얼굴에는 세월이 남긴 그윽한 주름이 자리잡고 있다.
이경식 어르신은 일산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지금의 멱절길로 옮겨 와 여태껏 살고 있다. 어르신을 닮아서 부지런한 둘째 아들 병기씨, 며느리 안춘이씨 내외랑 손자 재광이, 재익이와 함께 4대가 재밌게 살고 있다. 평생을 부지런하고 알뜰하게 살아 현재는 3만여 평의 벼농사를 경작하면서 가공시설까지 갖춘 ‘일산쌀영농조합법인’을 손자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아들 내외와 손자들은 안성 농협 창조농업지원센터가 주최한 6차 산업 교육을 열심히 이수하며, 쌀을 이용해 소비자들의 입에 맞는 가공상품을 생산할 구상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아내가 2011년 지병으로 운명했지만 자손들이 모두 효자들이라 외롭지 않다는 이경식 어르신. 슬하에 2남3녀와 손자, 손녀까지 21명의 자손을 두었는데 매주 10여 명의 자손들이 찾아 와 말벗도 되어주고 목욕도 시켜주며 다복한 여생을 누리고 있다. 자손들과 함께 관광버스를 임대해서 20년째 농한기 때 가족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얼마전에는 증손자 성구가 파주의 한 행사에서 청려장(명아주지팡이)을 사 와 선물해주며 할아버지를 기쁘게 했다.

며느리가 솜씨 좋게 무쳐주는 가지나물을 좋아한다는 어르신은 “차지고 영양이 풍부한 고양쌀을 즐겨먹어서 눈과 귀가 밝고 치아도 본래 그대로 건강하다”면서 변함 없는 고양쌀 사랑을 또 한 번 드러냈다. 농번기 때면 여전히 부지런하게 움직인다는 어르신은 내년에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부터 전동 휠체어를 타고 논길을 한 바퀴 돌며 논물을 살피고, 벼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건강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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