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요, 건강 - 인권분만

▲ 김상현 동원산부인과 대표원장은 “출산의 주체는 의사가 아니라 아기와 산모입니다. 말은 못하지만 태아는 다 느끼고 압니다”라며 “인권분만은 출산환경을 배려하여 출생의 순간이 아기와 산모에게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행복한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인권존중 철학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고양신문] 제왕절개(帝王切開, cesarean section) 수술. 기자는 두 아들을 이 수술로 얻었지만 그 어원이 로마 황제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가 이 수술을 통해 태어났기 때문에 유래됐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김상현 원장과 인터뷰하면서 처음 알았다. 요즘은 제왕절개 수술이 감소하고 출산과정에서 산모와 태아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인권분만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 2000년 프랑스 프레드릭 르봐이예 박사의 태아 인권 분만법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여 전국으로 확산시키며 ‘인권분만은 출산의 방법이 아니라 철학’임을 강조해온 김상현 동원산부인과 대표원장을 만났다. 

임신과 출산의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임신은 잘 알다시피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는 것을 말한다. 여성의 배란일 즈음에 정충이 난자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여 태아로 발육하는 경이로운 과정이다.

임신기간은 흔히 10개월이라고 말하지만 통계적으로는 마지막 월경의 첫째 날로부터 평균 280일(40주)이고, 수정일로부터는 약 265일이다. 출산 예정일 전후 2주일 이내에 아이를 낳는 것을 정상분만으로 보기 때문에 37주 이전에 출산하면 조산이라고 한다. 

분만법이라 하면 흔히 자연분만, 인공분만을 떠올리게 된다.
분만방법은 크게 보면 수술하지 않고 태아가 질을 통해 나오는 정상분만(자연분만, normal delivery)과 수술적 방법인 제왕절개(cesarean section)가 있다. 제왕절개를 통한 출산율이 한때는 40%에 이른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35%정도로 줄었고 점점 더 정상분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태아의 머리가 크다거나 태아를 밀어내는 자궁 힘이 약해서 제왕절개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데도 산모들이 제왕절개를 많이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정상분만은 아프고 힘들다는 인식 때문에 기피하는 산모들이 많았고 분만 시에 ‘아기가 충격을 덜 받기 때문에 머리가 좋다’는 속설 등의 영향도 있었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정상분만을 하다가 혹시라도 문제가 생겨 의료분쟁에 휘말릴 수 있어서 제왕절개로 유도하는 경향도 높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처럼 제왕절개가 산모와 의사의 서로 다른 필요성이 조합되어 선택된 경우가 많았다. 의료보장이 잘된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은 의료사고가 나도 국가에서 책임지기 때문에 정상분만율이 보통 90% 이상이다.

국내 최초로 ‘르봐이예 분만법’을 도입하게 된 계기는.
프랑스 프레드릭 르봐이예 박사의 『폭력없는 탄생』이라는 책을 보고 나서다. 그런 책이 있다는 것은 진작 알았는데 소아과 의사인 후배로부터 “아기가 웃으면서 나올 수도 있다는데 왜 선배는 항상 아기를 울리면서 받느냐”는 말을 듣고 정독을 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아기의 입장에서 출생의 과정을 묘사했는데 기존에 알고 있던 전통적인 내용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었다. 아기에 대한 배려가 없는 분만 과정은 살인에 가까운 폭력으로 묘사되고 있었고 그런 폭력적 탄생 과정이 무의식 속에 잠재된 죽음의 공포, 증오심,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뱃속의 태아에게도 어른과 같은 시각, 청각, 촉각, 감정 등이 있기 때문에 환경변화에 따른 자극을 최소화해서 세상과 만나게 해주어야 한다는 ‘아기에 대한 배려’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인권분만’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 달라.
수중분만에 대한 세계 최초 이론가인 미셸 오당을 통해서는 ‘산모에 대한 배려’도 중요함을 알게 됐다. 2001년에 미셸 오당을 초청해 강의를 듣고 나서 ‘르봐이예분만 연구회’ 모임의 명칭을 ‘인권분만연구회’로 바꿨다. 인권분만은 출산환경을 배려하여 출생의 순간이 아기와 산모에게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행복한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인권존중 철학이다.

왜 인권분만이 중요한가.
가정에서 이루어지던 출산이 조산소를 거쳐 의료보험 확대와 더불어 병원분만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분만을 위한 병원이라는 곳의 환경을 보자. 병원에서는 의사가 ‘갑’이고 환자는 ‘을’이다. 의사는 산모를 밝은 빛 아래에 운동도 안 시키고 가만히 누워 있게 만들고 산통을 호소하면 ‘조용히 하라’고 핀잔을 주고 심지어 재갈을 물리기도 했다. 편안한 출산의 모습이 결코 아니다. 태아도 각종 기구와 마취제, 유해한 환경 등에 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아빠는 아기가 나올 때 까지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린다. 분만 후 모유수유도 잘 안 시켰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출산문화가 달라졌다. 산모들의 의식이 높아지고 방송에서 수중분만법이 소개되는 등 의사보다 산모의 자율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산모와 아기가 분만 과정에서 행복한 주체가 되는 인권분만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대표적인 인권분만법인 르봐이예 분만법에 대해 설명해 달라.
먼저, 분만실의 환경을 어둡게 하여 태아의 시각적인 자극을 최소화하고, 태아가 자궁문을 나서는 순간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모든 사람들이 소곤소곤 말하며 임하는 것이 기본이다. 막 태어난 아기를 바로 엄마 품에 올려놓아 엄마의 심장소리와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안정감을 주면서 엄마와 친밀감을 높여준다.

탯줄을 통해 호흡을 하던 아기는 폐호흡과 탯줄호흡을 동시에 하는데 아기가 고통스럽지 않게 폐호흡에 적응할 수 있도록 분만 5분 정도 후에 탯줄을 자르고, 엄마 자궁안과 비슷한 환경인 욕조에서 물과 함께 놀게 해주면 스스로 분만 스트레스로 경직된 몸을 풀며 반짝이는 눈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된다. 그리고 분만 후 30분 이내에 엄마 젖을 빨게 해주어 모아유착과 자궁수축도 좋아지도록 한다. 르봐이예 분만법은 이렇게 태아를 출산의 고통으로부터 보호해주며 사랑을 주는 인권분만법이다.

산모와 아기의 인권을 중시하는 트렌드에 따라 자연주의 출산법에 대한 관심이 높다.
르봐이예 분만법이 인권분만의 출발점이고 자연주의 출산도 결국 인권분만의 흐름 안에 있다고 보면 된다. 최근 분만의 주체인 산모의 인권을 중시하고 더불어 아빠의 역할도 강조되면서 자연스레 자연주의 출산이 조명 받고 있는 것이다.

관행적인 의료개입을 최소화 하며 과도한 약물사용을 줄이고 산전상담, 교육, 순산운동, 진통에서 출산까지 조산사, 의료진, 남편도 함께 참여하는 자연주의 출산은 육아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면서 가족애도 돈독해진다. 요즘은 수중분만, 그네분만, 자유분만, 좌식분만, 아로마 분만 등 다양한 분만법 중에서 산모가 주체가 되어 본인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인권분만의 주체는 의사가 아니라 태아와 산모다. 의사는 분만과정을 돕고 보살펴 주는 역할을 하는 조력자다. 

▲ 김상현 동원산부인과 대표원장

[김상현 동원산부인과 대표원장 프로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박사
인권분만 연구회 회장
연세대 외래 교수
보건복지부 제왕절개 감소 대책위원
한국 최초 르봐이예 분만 도입
일본 동경대 및 관동 체신병원 초음파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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