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곁의 지역 금융인 - 김재수 고양동부새마을금고 이사장

새해부터 '이웃 곁의 지역 금융인'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지역경제에 활력을 주는 금융인들의 성과와 보람 그리고 그 이면의 애환까지 귀담아 들어보고 이들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아봅니다. 지역에서 금융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들의 세계에 한 발 다가가봅니다. - 편집자 주

26년간 근무하며 금고 400배 성장시킨 주역
자산규모 8천200억, 전국 3위 규모 우뚝 서

지난 달 준공식을 열며 새 얼굴을 선보인 고양동부새마을금고 원흥본점 신축사옥의 실내 공간은 역시나 쾌적했다. 1층 금융창구 공간은 높게 트인 층고와 안락한 휴게 공간이 돋보였고, 3층 집무공간의 한쪽에는 햇살을 맞으며 바깥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힐링존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사장실 문이 열리고 김재수 이사장이 친근한 미소로 기자를 반긴다. 공간이 번듯하니 사람도 달라 보인다.

2016년 7월 퇴임한 유순원 전임 이사장에 이어 고양동부새마을금고의 3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김재수 이사장에게는 두 가지 평가가 따라다닌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란는 이미지가 하나라면, ‘강력한 의지로 조직의 성장을 이끈 리더’라는 이미지가 나머지 하나다. 모순된 듯 보이는 두 개의 이미지가 한 사람 안에 어우러질 수 있을까? 신기하게도 공존한다. 김재수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양면적 진가를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였다.

유원지 계곡 발품 팔며 거래처 넓혀  

“조직의 성장을 위해 그저 성실하게 일했을 뿐이죠. 저에게 성과가 있었다면 늘 제가 추진하는 사업들을 지지해주시고, 든든하게 뒤를 책임져 주셨던 유순원 전임 이사장님 덕분이겠지요.”
역시나 겸양을 앞세우지만, 알 만한 이들은 다 안다. 고양동부새마을금고가 달려 온 놀라운 성장 드라이브의 핵심 엔진이 바로 26년간 조직의 2인자로서 핵심 업무를 추진한 김재수 이사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일산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온 김재수 이사장은 군 제대와 함께 1991년 새마을금고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만 해도 금고의 명칭은 지금의 덕양구 지축동의 일부 지역만을 영업구역으로 삼는 ‘지축2리 새마을금고’였다. 자산 규모는 고작 20억원에 불과했다.

“당시만 해도 정말 소박했지요. 직원이라야 고작 서너명이 전부였으니까요.”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김재수 이사장과 본점 직원들.  

입사 초기 김재수 이사장(당시의 직급은 과장)이 수고를 집중한 분야는 파출수납이었다. 당시엔 북한산계곡, 송추계곡, 일영계곡 등에서 소위 ‘유원지 식당 장사’가 성황이던 시절이었는데, 일찍부터 구파발농협에서 거래처를 장악한 시장에 김재수 이사장이 가방 보따리 하나 차고 무작정 뛰어 든 것. 엄청난 텃세가 있었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뚝심으로 거래처를 하나씩 늘려 갔다. 승부사적 기질이 그 시절부터 싹튼 듯. 고객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금고 이름이 적힌 양철 우편함을 대문마다 달아드렸던 일에도 품을 많이 팔았다. 나중에 우체국에서 김재수 이사장의 아이디어를 따라했다.

초기의 기억 중에는 잊을 수 없는 회한도 있다. 당시엔 새마을금고가 제도금융권에서의 위상이 취약해 수표발행이나 신권수급, 공과급 납부 등의 업무를 타 금융기관의 신세를 져야 했는데, 매일 일거리를 싸들고 들르는 김재수 이사장을 타 금융기관의 창구 직원들이 무척 귀찮은 존재쯤으로 대했던 것.

“당시엔 정말 비참했죠. 하지만 오기도 생기더라구요. 내가 언젠가는 우리 금고를 키워 당신들을 기필코 추월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절이 오더라도 우리 직원들은 결코 어떤 고객이든 불친절하게 맞이하지 않겠노라 다짐도 했구요.”

결국 그는 ‘성장과 친절’이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원흥본점 신축사옥의 금융창구. 탁 트인 공간이 쾌적하다.

 

점포 한쪽에 마련된 편안한 휴게공간.

앞선 예측과 결단력으로 꾸준히 합병 추진

이후 지축2리 새마을금고의 명칭의 변화는 금고의 성장사를 그대로 대변한다. 고양이 군에서 시로 승격하는 것과 발맞춰 영역을 넓히며 ‘효자동 새마을금고’가 되었다가, 1990년대 중반에 화정과 행신의 금고를 잇따라 합병하며 명실공히 덕양구 전체를 대표하는 ‘고양동부새마을금고’라는 이름을 얻는다. 오늘날에는 고양시 각 지역에 본점과 8개의 지점을 거느린 대형 금고로 성장했다. 

자산 규모는 자그마치 8천200억원에 이르러 전국에 있는 지역금고 중 당당히 3번째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청년 김재수가 ‘지축2리 새마을금고’에 입사해 열정을 불사른 26년 동안 금고가 무려 400배의 성장을 이룬 것이다. 

 

금고 성장의 비밀 열쇠는 김재수 이사장의 앞서가는 판단력이었다. 그는 금융권에서 ‘인수 합병’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주변의 부실 금고와의 통합 작업을 집요하게 추진했다. 자본 구조가 취약한 지축3리 새마을금고를 3년간 설득해 1대1 통합을 이룬 것을 시작으로 새마을금고의 업무구역 확대에 발맞춰 부실 금고들을 합병하며 영업권을 차츰 늘려나갔다. 합병 과정에서 사원들을 잡음 없이 하나로 엮어내는 조직관리 능력 또한 빛을 발했다.

위기도 있었다. 90년대 중반 행신동 금고와 통합을 한 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자기자본 출자금이 고갈돼 수년 동안 배당금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직원들과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틴 끝에 5년만에 금고가 정상화되었을 땐 정말 기뻤다. 고비를 넘기며 금고도 직원들도 함께 질적인 성장을 이뤘다는 사실이 고맙고 감격스러웠기 때문이다.

“초기의 열악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켜 준 직원들을 보면 말 그대로 가족이지요.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금고가 됐으니 다들 자부심을 갖더라구요.”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커뮤니티센터 꿈 꿔

고양동부새마을금고는 원흥본점 시대를 열며 새로운 미래를 설계한다. 가장 가깝고 친근한 서민금융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함과 동시에, 새로 조성되는 주거단지의 중심에서 소통의 매개가 되는 커뮤니티센터를 꿈꾼다. 신축사옥 6층에 240석 규모의 강당을 만든 까닭 역시 지역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양질의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싶어서다.

“금고 회원 4만여 명에게 수시로 문자 메시지로 이런 저런 정보를 공유하며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요구를 경청하고 협력을 이끌어 내면 소통의 토대가 자연스레 마련되리라 기대합니다.”

여가 시간에는 무얼하며 보내냐고 물었다.
“개인적인 취미는 등산이 유일합니다. 20여 년 동안 오른 북한산은 샛길까지 안방처럼 훤하지요.”

김재수 이사장은 노모를 정성껏 모시며 내조를 잘 해 주는 아내가 늘 고맙다. 아내 역시 별다른 취미 없이 주말이면 함께 길게 산을 타는 것으로 건강관리와 부부 데이트를 한꺼번에 해결한다. 

“참, 취미가 하나 더 있네요. 체질적으로 술도 잘 마십니다(웃음). 요즘엔 좀 줄이려고 하지만요.”

말투는 끝까지 평범했고 미소는 겸손했지만, 김재수 이사장의 내면에는 단단하고 강인한 의지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