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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가진다는 기쁨에 아파트 공사현장 들락거려”고양시와 나의 삶 - 2세대 일산신도시 입주민
  • 이병우 기자
  • 승인 2017.01.02 15:54
  • 호수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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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송광수, 황희숙, 이미숙

입주초기, 이웃고 아파트 공터서 고기 구워 먹기도
나무 많고 호수공원 있어 만족하지만 교육은 불만
아파트 노후화 악화되면 슬럼화, 시는 대비해야

2기 일산신도시 입주민들의 좌담회에 참석한 이들은 3명 모두 서울에서 살다가 이주해 온 이들이었다. 주엽동 주민자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희숙(61세)씨는 1981년 고양군 능곡에 정착하며 당시 주위 할머니로부터 ‘새댁’소리를 들었는데 이제 두 아들을 결혼시켜 손주까지 보았다. 황씨는 신도시 청약 열풍 이전에 고양에서 14년 정도 살다가 주엽동 강선마을 4단지로 이사와서 다시 22년을 살고 있다. 송광수(70세)씨는 1994년 주엽동 강선마을 9단지에 입주해 줄곧 살고 있다. 송씨는 직장생활 은퇴 후 6년 전부터 주민자치활동을 해오다 내년부터 신임 주엽동 주민자치위원장을 맡게 됐다. 주엽동 강선마을 16단지에 살고 있는 이미석(54세)씨 역시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씨는 주엽동 주민자체센터에서 문화교양 분과장으로서 지난해 도지사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맞았다



(이하 송광수=송, 황희숙=황, 이미석=이)
 
Q 다른 곳에 살다가 고양시 일산신도시를 선택한 이유는.
황 = 남편과 서울에 살 때 남편 직장의 직원 몇몇이 고양군에서 살고 있었다. 그 분들이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털래기를 요리해먹는 모습이 남편이 보기에는 그렇게 좋았나보다. 나는 원래 서울에서 계속 자란 사람인데 반해 남편은 원래 평택에서 농사짓는 집의 사람이기 때문에 시골에 대한 향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사 와서 단독주택에 세들어 살 당시만 해도 이웃의 인심을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면 동네 할머니들이 손수 뜯어 우리집 문 앞에 갖다 놓은 상추를 볼 수 있었다. 할머니들이 ‘새댁, 우리가 밭에서 뜯은 것 한 번 먹어봐’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정겨움이 그립다.
그렇게 능곡에서 살다가 1993년 분당의 아파트에 청약을 했지만 2번 떨어졌다. 그러고 난 후 ‘지역 우선’이라는 기준 덕택에 일산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됐다. 지금도 당첨될 당시가 기억이 난다. ARS(자동응답시스템)로 접수번호를 입력하고 남편 주민등록번호 모두 입력하기 전에 벌써 ‘당첨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말이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바로 해외에 있는 남편에게 ‘여보, 우리 아파트 됐다’며 기뻐했다. 세들어 살다가 집을 갖게 됐다는 기쁨에 미리 내가 살 아파트 건설현장에 와보기도 했다. 허허벌판에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송 = 1993년 분양 당시 인기가 가장 좋은 곳이 분당이었다. 그 다음이 일산이었고 평촌, 중동 순이었다. 나는 분당과 일산 등 신도시 아파트에 10번 이상, 아니 20번 가까이 청약을 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너무 답답해서 왜 자꾸 떨어지는지 경찰서에 확인까지 해봤다. 10번 떨어지고 포기할 때 즈음 당첨이 됐다.

이 = 신혼시절 일산 아파트에 대한 분양 공고가 처음 났을 당시 운 좋게도 첫 회에 당첨됐다. 일찍 당첨되었으니까 이후에 분당 아파트에 대한 분양 공고가 났어도 포기했다. 처음에 당첨됐을 때는 몰랐다. 왜냐하면 남편 이름이 ‘김인호’인데 당첨자 명단에 ‘김진호’로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Q 처음 일산신도시로 이사올 때 가졌던 기대감에 비해 실망했던 점과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

이미숙(54세)
이 = 제가 이사 왔던 강선마을 16단지 아파트 앞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처음 입주할 당시에는 호수공원 자리가 훤히 다 보였었는데 갑자기 바로 앞에 큰 건물이 들어서게 되어 일조권을 잃어버린 것이 아쉽다.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는 어르신들이 텃밭농사도 짓던 곳이었다. 여름에는 우리 아이들이 논밭에서 올챙이 잡던 곳이었는데 갑자기 그 일대가 높은 건물이 들어섰다. 고양시가 좋은 점은 운전하기 편하다는 점이다. 시댁이 성남에 있는데 차를 끌고 갈 때마다 여러 군데 고개가 많아서 운전하기 힘들다.

송 = 실망한 점은 일산신도시가 애초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50~60만명 정도로 자족도시로 키우려는 계획이 백석동 출판단지 무산 등으로 물거품이 됐다. 또 하나는 공기가 나빠졌다는 점이다. 입주 초기에는 차를 타고 서울에서 원당으로 접어들면 당시 고등학생들이었던 우리 아이들이 ‘아! 공기 좋다!’하고 감탄할 정도로 고양시의 공기가 좋았었는데 지금은 공기가 그 때만큼 좋지 않다.
|40대 중반에 처음 일산신도시로 이사 왔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내 나이 70살이 되고 보니 고양시는 노인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느껴진다. 일단 일산은 길이 평평해서 돌아다니기도 편하고 곳곳에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이 있다. 도시에 녹지가 잘 조성됐다는 점도 참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호수공원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점도 다른 도시에 살았으면 얻지 못할 고양시의 장점이다.

황 = 아무래도 아이들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는 신도시에 살면서 교육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분당, 평촌은 좋은 고등학교가 하나둘씩 생겨났는데 일산은 그렇지 못했다. 분당에 비해 교육수준이 뒤지는 것에 대한 불만이 엄마들 사이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분당과 비교하면 일산이 더 좋은 것 같다. 친구가 살고 있는 분당에 가보면 따뜻함이 일산보다 떨어지는 것 같다. 내가 일산에 사니까 그렇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분당은 삭막함이 더 한 것 같다. 일산은 조금만 걸어가면 호수공원이 있고 조금만 걸어가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있어 여자들이 사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우리 아파트의 같은 라인에 입주했던 사람은 아파트를 팔고 서울 대치동 은마 아파트가 뜨기 전에 샀다가 부자가 됐다. 그 양반이 내게 전화해서 ‘아직도 거기 사세요?’하는 걸 보고 ‘참, 이 친구는 그래도 요리조리 잘 옮겨 다니면서 부자가 됐는데, 나는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Q 입주한 이후 어떤 커뮤니티를 통해 고양시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나. 

황희숙(61세)
황 = 처음에 입주했을 때 학부모, 특히 엄마들끼리 의기투합도 잘되고 서로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입주 초기만 해도 몇몇 가족들이 모여 아파트 뒤에서 돗자리 깔고 고기 구워먹던 시절이었다. 당시 반상회도 고기 구워먹으며 열기도 했다. 1층 사는 집들은 시끄럽다고, 냄새 난다고 민원을 제기하다가 나중에는 함께하던 시절이었다. 상대적으로 직장 다니는 남자들이 이웃과 어울리기 어려웠다.

송 = 가장 좋은 연결고리가 사실은 반상회였다. 단지별 이슈화된 일이 발생하면 반상회를 열어 거의 모두 볼 수 있었다. 직장 다닐 때는 몰랐는데 10년 전 은퇴 후 처음 3~4년간은 견딜 만 했는데 그 이후는 어떤 모임에 가입하지 않고는 견디지를 못했다. 그래서 산악회, 주민자치활동을 시작했다.

이 = 아무래도 반상회를 통해 이웃을 알았다. 저희 단지에서는 부녀회 주관으로 나눔장터가 활성화 되어 이웃과 친해졌다. 

Q 고양에 처음 이사 왔을 때 토박이들에 대한 느낌은 어떠했나. 그리고 ‘반 토박이’가 된 입장에서 최근 고양으로 이사온 사람들에 갖는 느낌은 어떠한가.
송 = 나는 흔히 말하는 토박이들의 텃새 같은 것을 못 느꼈다. 처음에 토박이들이 목숨 걸어가며 신도시 개발을 반대했지만 나중에 돈을 번 토박이들은 신도시 개발을 추진한 노태우에게 절을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개발을 반겼다. 입주민들이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는 토박이들도 있었다. 며칠 전에 부산서 온 입주자를 만난 적이 있다. ‘고양은 참 살기 좋은 곳’이라고 환영하는 말을 해줬다.

황 = 고양으로 이사 와서 아이들을 맡겨 둘 곳 없을 때 이웃 할머니들이 많이 돌봐주시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 많이 드신 어르신보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토박이 티를 많이 냈다. ‘너희들은 서울에서 왔다던데 우리 같은 촌사람들 깔보지마라’는 식이었다.
내가 일산신도시로 처음 입주했을 때 이사턱으로 떡을 돌리면 토박이 티를 냈지만 ‘잘 먹겠다’는 정은 표했다. 그런데 농장에서 상추를 뜯어다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갖다 주면 ‘나는 아줌마를 모르는데, 이걸 왜 우리에게 주느냐’고 묻는다. 이 말을 들으면 이웃과 나눠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이 = 저희 아파트에는 토박이보다 외지에서 온 분들이 많았다. 가좌 마을에서는 서로 갈등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강선마을에서는 80% 이상이 토박이보다 외지인들로 채워졌다. 그래서 토박이와 접촉할 기회가 적은 던 것 같다.    

Q 고양시가 향후 변화와 관련해 바라는 점은.

송광수(70세)
송 : 현재 고양시 행정이 축제나 공연에 너무 치중하는 것 같다. 자족도시를 만들 수 있는 행정이 이뤄져야 한다. 자족도시가 되려면 큰 기업체가 많이 들어와야 한다. 서울까지 가지 않고 고양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

황 : 자족도시가 되려면 수도권 정비계획법상 고양시가 과밀억제권역으로 묶여 있는데 이것이 풀려야만 한다. 고양시로서는 앞으로 20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못하면 슬럼화 되는 도시가 될 수 있다. 반면 어떤 계기로 인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도시도 될 수 있다. 성남시는 아파트 노후화에 대비한 여러 방편을 마련하고 있는데 고양시는 그러지 못하다는 점도 아쉽다. 고양시는 새로운 도시재생 계획을 마련해서 고양시가 슬럼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한다. 

 Q 노후화된 1기 신도시아트에서 새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는 욕구는 없었나.
송 = 저는 이곳에 정이 들어 다른 아파트로 갈 생각이 별로 없었다. 제 주위 사람들과 이제 친숙해졌다. 옛말에 ‘반미치광이가 되어야 이사간다’라는 말도 있다.

황 = 나는 한번쯤 새 아파트로 옮기고 싶다. 우리 애들도 다 컸고 새 아파트에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런데 막상 떠나서 타지역에 가서 새 사람과 사귀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Q 자녀들에게 고양시에 계속 살게 할 것인가.
황 : 두 아들 모두 결혼했는데 큰 애는 고양 후곡마을에 살고 작은 애는 서울에 산다. 우리 큰 애는 고양신문 학생기자도 했다. 작은 애도 고양시에 자리 잡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며느리가 서울에서 일하기 때문에 신혼집을 서울에서 꾸렸다.    

송 : 딸은 남편이 직장을 따라 서울 올림픽 공원 근처에 살고 아들은 후곡마을에 살고 있다.
 
Q 고양시에서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송 = 91점. 황 = 80점. 이 = 95점. 

 

 

 

이병우 기자  woo@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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