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윤 인문학 작가
새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은 작년도에 이어 올해도 최대의 화제다. 그들에게 기생하고, 그들을 이용하고, 그들과 더불어 공생했던 자들도 아마 바쁜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죽느냐, 죽이느냐 죽음의 한판굿이 벌어질 것이다. 그 사이에 각 당들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염려하며 공약을 내세울 것이고, 이합집산을 반복할 것이다. 소위 대통령 후보들의 행보도 바빠질 것이다. 고구마니 사이다니 김치니 온갖 음식이름을 별명으로 가진 정치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쥐니 닭이니 장어니 온갖 짐승들도 언론에 출몰할 것이다. 주변을 보니 벌써부터 대통령감을 서로 진단하며 줄을 서고 있다. 그렇지, 탄핵이 이루어지든 아니든 대선이 핫 이슈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되었든 책임제 총리가 되었든 그들에게 명운을 걸려는 시도가 다시 열기를 더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구원할 메시아가 출현하려나?

2000년 전 식민지 이스라엘에서도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있었다. 예수가 태어나기 전에 갈릴리 지방에 유다라는 메시아가 잠시 희망을 주었으나 체포되어 죽음을 당했다. 유다 이전에도 수많은 메시아들이 명멸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주구이자 이방인 출신인 헤롯에게 절망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꿀 자가 아니었다. 그때 등장한 자가 바로 예수였다. 그는 남달랐다. 이전의 메시아라 자임하는 자들에게 풍기는 자신감이나 강력함은 없었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들을 누구나 차별없이 환대했고 그들과 축제를 조직했다. 그는 거리의 인물이었다. 그는 일약 수퍼스타가 됨과 동시에 지배자들에게 위험인물로 낙인찍혔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주변 사람들은 전혀 믿지 않았지만, 결국 그는 십자가에 달려 죽고 말았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 죽음을 통해 예수가 메시아라는 종교를 만들었지만, 나는 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그와는 정반대의 것이라 생각한다. 혹시 예수는 이와 같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대가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의 운명을 뒤바꿀 메시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인간이 있을 뿐. 그러니 그대들이여, 메시아를 기다리지 마라. 차라리 그대가 그대 삶의 메시아가 돼라.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남에게 기대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마라. 그대로 살다가 그대로 죽어라.

우리를 구원할 신 따위는 없다. 더욱이 우리의 과오를 한 번에 해결할 메시아는 더더욱 없다. 그것은 모든 죄를 관장하는 악마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최순실, 김기춘 등을 악마로 비유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최악의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을 처벌한다고 하더라도 이 땅에 천국이 건설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세상은 아수라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선의 존재를 메시아로 규정하고 설령 그들이 집권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천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세상은 아수라일 것이다. 왜일까? 특정한 사람이나 사상이 지배하는 곳은 결코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통령제니 의원내각제니 이원집정부제니 따위 제도를 만능으로 선전하는 자들의 소리에 귀를 틀어막자. 그들의 입을 틀어막으면 더 좋겠지만,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가 있으니 그 자유를 침해하지는 말자. 나라를 나보다 더 걱정하고, 나라에 나보다 더 좋은 일들을 해내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러니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줄서지 마라. 국가나 정당에 헛된 희망을 품지 마라. 다시 말하지만 메시아는 없다. 그대가 그대의 삶을 구원할 메시아가 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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