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고양신문] 예전에 배운 영시(英詩)에 ‘주여!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하였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지난해 연말 광화문을 메운 1000만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우리 국민은 참으로 위대하였다’라는 시가 절로 나온다. 특히 미완의 혁명이 되어 버린 87년 6월 항쟁을 온몸으로 겪은 우리 세대는 남다른 감회에 젖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자녀들과 같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면서 30년만에 되풀이되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에 감동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또다시 6·29선언이나 3당 야합으로 혁명의 열기가 무참하게 짓밟힐 것에 대한 우려로 가슴이 무거웠을 것 같다.

 

현상적으로는 광화문의 촛불은 박근혜-최순실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형 비리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규탄이 광장에서 표출된 것이기에 직접적인 원인은 정유라의 이대 부정입학에서 시작, 청와대 문건 유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권력을 통한 불법 모금 등 최순실과 박근혜에 의한 국정 농단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백남기 농민 살인, 세월호 침몰 부실 대응, 국정 교과서 강행을 통한 한국사 왜곡, 종군위안부 굴욕외교, 일방적 사드 배치와 한일군사정보호협정의 강행 등 국민의 뜻에 반하는 국정 그 자체에 대한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기초연금 공약 후퇴, 4대 중증 질환 국가 보장의 공약 사기, 공공산후조리원과 청년 수당 정책 같은 지방정부 정책 방해 등 지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가 약속한 공약의 후퇴와 파기로 인한 총체적인 국민생활의 악화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1단계 촛불혁명은 박근혜의 국회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완성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 촛불혁명은 대통령의 교체나 집권당을 바꾸는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국민들의 삶이 개선되는 것이 체감되어야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6개월 이상 앞당겨질 대통령 선거 일정으로 인해 2개월 내 당내 경선과 대통령 선거를 거친 후, 인수위원회도 없이 바로 출범하게 될 차기 정부가 당면할 상황은 만만하지 않다. 북핵 대응 과정과 개성공단과 남북 경협의 일방적 중지 과정에서 악화된 남북관계,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한류 금지령) 등 외교문제는 차기 정부 5년 동안 지속적으로 발목을 잡을 것이다. 또한 한진해운의 해체와 조선산업 구조조정 과정 등에서 드러난 경제와 산업정책에 대한 무능력과 무책임함은 자동차, 조선, 철강, 화학, 전자 상업 등 기존 5대 주력 산업의 위기를 가중시켜 누가 집권하더라도 경제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다. 거기에 부자감세와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심각한 재정적자 상태에서 정부의 재정 여력이 매우 취약한 상태이고, 민간 부문도 1300조원이 넘는 가계 부채로 소비지출 여력이 없고, 기업들은 사내유보금을 쌓아 두고도 투자를 꺼리는 상태 등 경제의 모든 부문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대로 대통령만 바꾸는 것으로는 희망이 없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촛불 혁명의 2단계가 필요하다.

첫째, 정치 개혁과 더불어 차기 정부의 정책 과제를 분명하게 요구하자.
보수 언론과 종편들은 특검과 헌법재판소의 상황을 지루하게 중계하는 것을 통해 국민생활과 관련된 정책들에 대한 논의를 희석시키고 있다. 국민들은 촛불 피로감으로 지치고 정치에 대한 희망보다는 환멸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국민들이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려는 정치권에 청구서를 제출해야 한다. 헌재의 심의 기간 동안 각 상임위별로 단기간 내에 구체적인 국민생활 개선 정책을 요구하고 입법을 추진하여 국민들이 승리를 체감할 수 있도록 전리품(?) 배분을 요구하자. 한시적인 내년 예산의 확보를 넘어, 이제 더 이상 보육 불안이 없도록 영유아 보육법, 유아교육법 등에 명기하는 누리과정 책임입법을 요구하자. 박근혜가 기초연금과 연동하면서 삭감해버린 국민연금도 정상화를 요구하자. 성과연봉제 폐지, 비정규직 축소, 산업안전보건 규제 완화 등 소위 ‘경제활성화법’이라고 명명한 노동개악 5법은 지금이라도 당장 폐기하고, 건강보험 누적 흑자 20조원을 활용한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 확대, 특진비 및 병실 차액료 해소 등 실질적인 3대 비급여 철폐 정책 시행을 추진해야 한다. 분리된 여당과 달라진 정치 상황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이 각 상임위별로 개혁 입법을 통해 상호 경쟁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둘째, 차기 대선 후보들에게 구체적인 차기정부의 비전을 요구하자.
이명박-박근혜 적폐 해소 방안 제시를 넘어 재벌에 대한 관리 방안, 비정규직의 축소와 최저 임금 인상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추진, 증세 및 각종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자. 헌법 개정보다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비례대표 확대를 포함한 선거법 개정과 권력기관 중립화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과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 교육 정상화 방안, 노동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와 주거비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자. 대선주자들이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아니라 노후소득 보장과 노인 돌봄의 부담 경감 정책을 두고 경쟁하도록 하고, 경제민주화와 주력 산업 대책, 자영업 정책 등 성장 동력 확보 방안을 가지고 토론하도록 해야 다음 정부가 힘을 가질 수 있다. 차기 정부가 국민들의 여망을 모아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대선 후보들이 정책 대결을 중심으로 논쟁하도록 하고, 공약을 통해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보수기득권 카르텔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경선과 대선이 공약대결이 되어야 차기정부가 혁명적으로 각종 개혁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이 실린다.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역사를 바꾸고 있다.
이제 촛불혁명의 완성을 위해, 또다시 정치권에 농락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 우리는 개혁의 대상을 분명히 하고 촛불 집회의 내용과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일산에서도 박근혜 퇴진 국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촛불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0년간 미루었던 미완의 혁명 완성을 위해, 그리고 너무나 어려워진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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