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공간 21 - 파주 마장저수지

 

안고령 고개를 넘으며 내려다 본 마장저수지의 시원한 풍광.

 

호젓한 설경 품고 있는 산 속의 호수

“요즘 겨울 맞니? 도대체가 눈 구경을 할 수 있어야 말이지….” 친구 한 명이 강원도 어딘가로 눈 구경을 다녀오겠단다. 수긍이 간다. 원래 겨울은 온 천지가 눈에 푹 덮히는 순백의 풍경을 적어도 서너 번은 구경해야 지나가는 계절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요 몇 해 고양에선 눈 다운 눈을 구경하지 못했다. 물론 교통과 생활의 불편을 생각하면 다행스런 일이겠지만, 어딘지 섭섭한 맘은 감출 수 없다.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눈 구경 제대로 할 만한 곳이 어디 없을까? 한 곳이 떠올라 파주 광탄 가는 길로 차를 몬다. 고양과 파주의 경계를 타고 고령산 자락을 넘어가는데도 아직 눈 세상은 아니다. 슬슬 걱정이 된다. 하지만 저수지 댐을 바라보며 마지막 언덕길을 넘는 순간 시야에 하얀 호수가 들어온다. 그럼 그렇지, 마장저수지 너만큼은 흰 눈을 한 아름 품고 있을 줄 알았다. 강원도로 떠난 친구에 대한 부러움이 사라진다.

 

마장저수지의 풍경은 단조로운 수평의 미학을 보여준다.  

 

호숫가 따라 이어진 편안한 산책로

파주 마장저수지는 태어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인공호수다. 고양동에서 보광사 고개를 넘어 접근해도 되고, 양주시 장흥유원지에서 기산저수지를 끼고 좌회전 해 찾아와도 된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짬날 때 훌쩍 다녀올만한 나들이 코스로 제격이다. 

농업용수를 확보할 목적으로 조성한 저수지라는데, 애초부터 관광호수를 목적으로 자리를 낙점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풍광이 일품이다. 초기에는 졸지에 물에 수몰된 키 큰 나무들의 우듬지가 수면 위로 비쭉비쭉 솟은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이한 풍광은 사라졌다. 대신 호숫가를 따라 편하고 안전한 나무 데크가 깔렸다. 봄과 가을에는 나들이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데, 겨울에는 찾는 이들이 적어 호젓한 산책을 즐기기에는 오히려 그만이다.

호숫가를 따라 길게 이어진 샌책 데크. 경사가 없어 유모차나 휠체어를 끌고 와도 문제 없다.

 

굽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풍경 열려

수변 데크를 걸으며 하얀 눈 구경을 원없이 한다. 단조로운 화면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흰 배경이 나머지 것들의 생생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마장저수지는 험준한 계곡에 물을 가둬 만든 호수인 까닭에 모양이 들쭉날쭉하다. 덕분에 곡선으로 휘어진 코너를 돌 때마다 새로운 경관을 선사한다. 그러니 마장저수지를 산책할 때는 꼭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까지 찍고 돌아오기를 권한다.

크게는 동쪽 호수와 서쪽 호수로 나눌 수 있겠는데 신기하게도 저수지 둑에서 시작되는 서쪽 호수쪽은 얼음이 단단하게 얼어있는 반면, 기산저수지 방향의 동쪽 호수는 얼지 않은 채 찰랑이는 수면을 유지하고 있다. 산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일조량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다.

중앙 주차장 아래쪽에는 얼음 위로 올라선 이들의 발자국이 어지럽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자제해야 하는 행위지만 눈 덮인 얼음 벌판 위를 걸어보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니 어쩌랴. 한 무리의 나들이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꽁꽁 언 호수 위로 걸어들어간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얼음을 지치던 행복한 기억이라도 떠올리는 걸까, 넘어질까 조심하면서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뜨린다.

 

꽁꽁 언 빙원 위를 걷고 있는 한 쌍의 연인.

 

청둥오리와 인사하고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 

얼지 않은 호수로 접근하자 귀여운 오리들이 환영인사를 건넨다. 흰오리와 청둥오리가 함께 뒤섞여 차가운 겨울 호수를 놀이터삼아 헤엄치고 있다. 몇몇 녀석들은 사람이 접근하면 일부러 다가와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마도 나들이꾼들이 던져 주는 새우깡이 입맛에 맞는 녀석들인 듯. 자세히 보니 털빛이 더없이 아름다운 원앙도 두어 마리 끼어 있다. 덩치는 작지만 천연기념물답게 포스는 무척 당당하다.

 

마장호수의 터줏대감인 오리들.

얼음물에 발을 담그고도 여유롭게 노니는 모습이 귀엽다.

 
두어 시간 호수의 눈을 구경하며 걸었더니 눈과 머리는 맑아졌지만 손발이 시리다. 따뜻한 차 한잔이 그리워진다. 들를만한 찻집을 고르는 건 아주 쉽다. 달랑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망 벤치가 마련된 솔숲 능선길을 따라 나무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카페 마장호수’로 들어서니 데이트를 즐기는 한 쌍의 연인이 장작 난로 옆의 아늑한 테이블에 앉아 있다. 덕분에 시원한 유리창을 통해 마장저수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자리는 내 차지다.

 

다음 일정을 위해 서둘러 커피를 마시고 일어서려는데 부지런한 사장님이 따끈한 아메리카노를 머그잔 가득 리필해 주신다. 핑계 삼아 마장저수지와의 데이트를 15분 연장한다.    

 

차가워진 몸을 녹이려면 이곳에서 차 한잔.

 

마장저수지의 ‘생얼’ 감상하는 마지막 겨울

마장저수지는 올해 대대적인 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파주시가 79억원을 들여 ‘광탄 마장호수 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마장저수지를 마장호수로 명칭을 변경하고 호수 전역을 관광지로 개발해 국내 최초로 내륙 호수에서 카누와 카약을 즐길 수 있는 체험장을 설치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공사가 시작되면 마장저수지가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지 궁금하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여유로움을 선물해주는 호젓한 나들이코스를 기대하긴 어려워질 듯하다. 다시 말해 얼마 남지 않은 이번 겨울이 성형수술을 하고 개명을 하기 이전의 마장저수지의 진짜 ‘생얼’을 눈에 담아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기대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안고 돌아서며 마장저수지에게 인사말을 남긴다.
“마장저수지야, 실력 좋은 의사선생님에게 수술 잘 받아서 눈부신 미인으로 변신하길 바란다. 잊지 않을게. 풋풋했던 시절의 네 모습을…”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벤치. 눈이 쌓여 앉아 쉬진 못해도 그 자체로 그림이 된다.

 


눈 덮인 호수 위에 드리우는 나무 그림자는 겨울 호수가 선사하는 또 하나의 멋.

마장저수지는 올해 대대적인 관광지 개발을 예고하고 있다. '생얼'을 감상할 수 있는 마지막 겨울이 될지도 모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