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미국의 펜실베니아주 게티스버그에서 링컨이 역사에 남을만한 연설을 했다. 우리도 이 문장은 기억할 것이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인민주권, 인민자치, 인민복지를 정치적 강령의 핵심으로 삼으려는 링컨의 견해가 명징하게 드러난다.

한편 선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같이 쓴 <공산당선언(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이다. 그 선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질서의 폭력적 전복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을 뿐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한다.”

이처럼 개인이나 단체가 대중에 대하여 확고한 정치적 의도와 견해를 밝히는 것을 매니페스토(Manifesto)라고 한다. 매니페스토는 라틴어 매니페스툼(manifestum)에서 파생한 이탈리아어이며, '분명한', '매우 뚜렷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링컨의 연설이나 마르크스의 선언이 사상은 다르지만 자신의 정견을 분명하고도 뚜렷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범이 될 만하다. 자고로 매니페스토는 그러해야 한다. 당당하고 분명하게!

아직 본격적인 선거 시즌은 아니지만, 박근혜대통령 탄핵과 연관하여 조기 대선이 점쳐지고, 그에 따라 예비 후보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야말로 말들의 향연이다. 당연한 모습이다. 후보들의 매니페스토야말로 선거의 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계해야할 것이 있다.

우선 후보들의 말을 잘 따져봐야 한다. 그저 교언영색(巧言令色)과 감언이설(甘言利說)일 수도 있으니. 후보들이 평소에 쏟아내는 말들의 안받침이 되는 삶을 살았는지도 따져봐야 할 일이다. 말의 수사는 가볍지만 삶의 행보는 무겁기에, 말대로 사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민의(民意)를 형성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는 민의를 수렴하여 공공의 약속을 만들고, 그 약속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그런데 정작 민의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을 수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정치가들의 공약을 듣는 것에 앞서, 민중이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급선무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우리는 무엇이 바뀌었으면 좋겠는가? 우리 스스로 입을 열어 우리의 약속과 다짐을 이야기하자. 어린이들이 입을 열어 어린이 매니페스토를 하고,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설계하여 매니페스토하자. 학생이, 가정주부가, 군인이, 노숙자가, 동성애자가, 장애인이, 외국인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농어민이 스스로 입을 열어 자신의 세계를 상상하고 매니페스토를 하자.

내신과 수능 폐지를, 당당하게 일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권리를, 동일한 노동에는 동일한 임금을, 성과 함께 모든 차별의 금지를, 존엄한 삶의 인정을, 기초생활 보장을,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평화통일과 군축을, 재벌해체와 건전한 기업활동의 보장을, 비리와 부패척결을, 헌법 준수와 악법 철폐를, 자신이 속해 있는 삶의 영역에서 당당하고 분명하게 외치자.

대통령을 처벌하라는 촛불의 구호는 더 공정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밑불이 되어야 한다. 몇몇 대선후보의 후광을 비춰주는 뒷불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환히 빛나는 국민주권의 횃불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것이다. 우리의 미래도 우리가 만들어간다. 그렇다면 우리의 약속도 우리가 한다. 우리가 매니페스토의 주체이며, 주인이고, 실천자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의 참 뜻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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