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홀트학교 퇴임하는 임경애 교장

39년간 몸담았던 홀트학교에서 정년퇴임을 맞는 임경애 교장을 홀트학교 교정에서 만나봤다.

문화예술체육 교육과정 과감히 도입
장애학생과 일반인의 소통의 문 열어
“장애인 사회진출 후 제도적 돌봄 절실”

41년 교직생활을 특수교육의 현장에서 헌신한 홀트학교 임경애 교장이 지난 17일 퇴임했다. 홀트학교에 교사로 부임한 해가 1978년이니 39년의 세월동안 홀트학교 교정으로 출근을 한 셈이다. 인연을 맺은 학생들과 교사, 학부모들의 숫자도 헤아리기 힘들다. 많은 이들의 감사와 축하를 받으며 퇴임하는 임경애 교장을 홀트학교 교정에서 만나보았다.  

명예로운 퇴임을 축하한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담은 축하 인사를 보내주셔서 감사하다. 39년간 몸담았던 홀트학교를 떠나려니 사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홀트학교를 소개해달라.
정식으로 특수학교 인가를 받은 것은 1975년이지만, 실질적으로 1964년도부터 특수교육을 시작했으니 지적장애학생 교육기관으로서 선구자적 발자취를 남겼다. 정신지체 1급에서 3급까지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데, 거의 대부분 자폐나 시·청각 장애 등의 복합장애를 가지고 있다. 재학생은 190명이고, 교사와 지도사, 행정직 등 120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와 함께 전공과 과정을 지도한다. 전공과에서는 집중적인 직업교육과 사회적응교육이 이뤄진다. 진로직업 특수교육지원센터도 학교 내에 있다. 일반 학교의 특수반 아이들도 이곳으로 와서 취업에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홀트학교의 위상은.
1980년대에 새로 문을 여는 특수학교들이 홀트학교를 찾아와 벤치마킹을 하곤 했다. 지금은 시설적인 면에서 노후화됐지만,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앞서간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교과부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만, 홀트학교는 한 발 더 나아가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해 교육과정을 재구성한다. 학생들이 졸업 후 일반인들과 어울려야 하는 모든 생활을 교육과정에서 체험하도록 한 것이다.

교장이 된 후 주력한 일은.
8년 전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교감 시절부터 준비해왔던 일을 시작했다. 핵심은 학교 교육의 중심을 문화예술체육으로 과감히 바꿨다. 학생들이 학교에서는 행복하게 지내는데 사회에서는 여전히 이웃들로부터 차별적인 시선을 받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먼저 나서서 일반들과 어울릴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과의 접점을 나는 문화예술체육 교육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오케스트라단, 국악합주단, 합창단, 운동팀 등을 차례대로 만들었다. 

처음부터 순조롭지만은 않았을텐데.
당연했다. 선생님들은 우려를 표했고, 학부모님들은 무관심했다.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일부에선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행사가 아니라 분명한 목표를 가진 교육과정의 일환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그리고는 무작정 악기 회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도 했고, 오케스트라 홈페이지마다 재능기부자를 찾는다는 요청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 분야에서 재능과 열정을 가진 분들이 하나둘 정착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아이들의 실력도 훌쩍 자라났다. 3년 정도 지나자 비로소 눈에 띄는 열매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좋아지면서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페스티벌을 열기도 하고, 일반 음악단체와 협연도 하면서 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일반인과 멋지게 어울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지금은 홀트학교의 문화예술팀들이 꽤 유명해져서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 많이 초청된다.

2013년 전국학생페스티벌 참가 모습.

멋진 공연을 마친 홀트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교사와 가족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학생들의 내적인 만족도도 높은가.
물론이다. 일반인과 자주 접촉하고 활동하다보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행복감도 증가한다. 아이들이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들도 어깨가 으쓱해진다고 하신다. 요즘에는 선생님들이 더 의욕적으로 참여한다. 도전하고 시도하면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학생과 학부모, 봉사자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경험했다.

재능기부 봉사자들의 역할이 컸겠다.
초기에는 큰 기대 없이 왔다가도 학생들이 너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며 꾸준히 와 주는 경우가 많다.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 연주자와 합창단원들은 물론, 퇴직 국가대표 축구선수 모임에서도 오시고, 고양시의 사회인 야구팀도 비시즌에 봉사를 해 주신다. 인근 교회의 도움도 컸다. 그런 분들의 열정을 교육과정과 연계해서 유익하고 보람되게 교육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협력한다. 매 주 토요일마다 분당에서부터 찾아와 악기를 고쳐주고 가신 눈물 나게 고마운 붕사자도 있었다. 세상에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장애인의 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도 있었다는데.
국가에서 대한민국 인재상 시상자를 선정한다기에 장애인세계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홀트학교 플로어하키 선수를 추천하고자 했다. 그런데 장애 학생은 아예 자격 대상이 아니었다. 국가 이름을 빛낸 학생들인데 왜 안돼냐고 물었더니 특수학교 전공과는 대학과정이 아니지 않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장애인들에게는 전공과가 전문대 과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건의를 해서 결국 대한민국 인재상에 이름을 올렸다. 의미 있는 선례를 남긴 셈이다. 작지만 장애인 인권의 새로운 지평을 넓혔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들과 함께 기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를 꼽는다면.
2013년 홀트 오케스트라의 첫 공연을 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학교 운동장에 큰 무대를 세우고 지역주민과 외부 손님들을 초청해 성대한 행사를 벌였다. 공연을 앞두고, 겉으로는 실수 없이 하라고 격려했지만 속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일반인들만큼, 아니 일반인들보다 더 잘하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동정이 아닌 감동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마침내 연주가 시작됐는데, 정말 소름이 끼칠 만큼 우리 아이들이 너무 잘해줬다. 옷을 차려 입고 무대에 오르니까 자신들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지휘자를 따라 의젓하고 진지하게 연주를 이어가는게 아닌가. 청중들도 다들 깜짝 놀랐다. 일반학교 교장 선생님이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네며 “어떻게 가르쳤길래 우리학교 아이들보다 더 잘하나요?”라고 말해줬을 때 굉장히 감격스러웠다. 집에 가서 잠자리에 드는데 깊은 감동과 보람이 밀려왔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너무 고마웠다.

특수교육자의 입장에서 바람은.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누구든지 장애를 남의 일이라 애기할 수 없는 시절이 됐다. 어차피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함께 가야 한다. 하지만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편견은 남아있다. 학교 과정 이후 성인 장애인을 위한 제도와 여건은 여전히 부족하다. 장애인들이야말로 평생교육이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13년동안 특수교육을 받은 이들이 가정으로 돌아간 후 몇 년 만에 퇴보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양질의 교육을 통해 획득한 가치들을 사회까지 이어주는 정책적 조치가 필요하고, 지역에서 뭔가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마지막 인사말을 부탁한다.
퇴임을 앞두고 짐을 정리하며 그동안 적었던 메모들을 훑어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내가 홀트에 와서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스쳐지나가며, 아이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얻고, 얼마나 많은 순간 행복했는지를 다시 되새겼다. 퇴직을 하지만 경험을 살려 어디에서든 특수교육과 관련된 봉사활동을 펼치며 은퇴 이후의 삶을 이어가고 싶다. 홀트학교는 나의 사랑이 영원히 머무는 곳이다.   

제6회 전국 장애학생 음악 콩쿠르.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홀트학교 6학년 박성원군이 다가와 임경애 교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건넸다. 박성원군은 홀트학교의 예그리나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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