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권우 도서평론가
[고양신문] 촛불의 힘으로 대선국면이 앞당겨지면서 이른바 잠룡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이 벌어진다. 대통령으로서 리더십과 자질이 있는지 검증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잡음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검증에는 동의한다. 국가운영에 대한 원칙과 철학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피는 일 자체가 우리 민주주의를 농익게 한다. 잘 알다시피 우리는 그동안 지역감정에 바탕을 둔 선택을 해오지 않았던가. 물론, 검증 자체가 완벽할 리 없고 권력을 잡은 다음 식언하는 일이 다반사라 회의적 시선이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국민에게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드러내고 실천을 다짐하는 통과의례는 상당히 의미가 크다.

그런데 최근 대권주자의 정책과 비전을 검증하는 기사나 방송을 보면서 갑자기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방송이나 대권주자나 정책과제로 안보문제를 제일 먼저 내세우는 일이 있어서다.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한반도가 늘 준전시상태에 놓여있고,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하기는커녕 미사일발사로 긴장감을 한층 높이고 있다. 더욱이 전쟁을 겪은 세대가 보이는 알레르기 반응을 감안하면 이해할만하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안보가 보장되어야 다른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거꾸로 더 중요한 그 무엇인가가 지켜지고 그것이 발전해야 안보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관행처럼 굳은 발상을 뒤집어 보자는 말이다.

의구심이 들자 떠오른 논어의 구절이 있다.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대화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으니, 양식이 풍족하고 군비가 퐁족하면 백성이 정부를 믿으리라 말했다. 요즘말로 하면 경제, 안보, 신뢰가 정치의 3대 요소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자공은 “한 걸음 더 들어” 간다. 부득이 하게 버린다면 셋 가운데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하느냐 묻는다. 날카로운 질문이다. 대선주자라면 무엇이라 할까? 그런데 공자의 답변이 놀랍다. 군대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잊지 말자. 공자 시대는 전쟁 시기였으니, 그의 철학이 전쟁을 끝장내고 평화를 이루려는 인문학적 고투의 결과였다는 점을. 자공이 누구이던가. 원거리 무역으로 돈방석에 오르고도 참된 공부를 하려던 이가 아니던가. 세 발로 선 솥이 그 하나의 다리로도 버틸만한 게 무엇이냐고 덤벼든다. 다음으로는 무엇을 버려야 하냐고 물었다는 뜻이다. 양식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오늘날 어떤 정치지도자가 국방과 경제를 다음 순위로 놓고 국정을 고민하자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처럼 시민의 마음을 사로잡아 권력을 부여잡고 싶을 때 과연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장담하건대, 그럴만한 정치인은 없을 테다.

물론 그것이 대권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다수 시민이 나라 발전을 위한 우선순위가 국방과 경제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양식을 버리라고 한 다음에 이어진 공자의 말을 들어보면 오늘 우리가 어떤 미망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 수 있다. “예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지만, 백성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하지 못하느리라.”

이 대목에서 무릎을 치지 않는다면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역사적 사건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셈이다.

대통령이 탄핵을 받고 헌법재판소에서 법리논쟁을 벌이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안다. 안보도 아니고 경제도 아니다. 최순실과 짬짜미가 되어 벌인 국정농단 탓이다. 시민이 더는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아서 국가 위기가 일어났다. 경제는 어려워지고 축산농가는 울상이 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는데 손 쓸 도리가 없다. 다시 물어보니, 무엇 때문인가?

그런 점에서 우리의 보수는 철저히 실패했다. 안보를 제일 가치로 내세우고 시장주의를 앞세웠지만 시민의 신뢰를 잃으면서 권력상실의 위기에 놓였고, 분열했고, 적폐의 대상이 되었다. 공자가 현실정치를 몰라서 한 말이라고 토달 이들을 위해 맹자에 나온 말을 덧붙인다.

“성곽이 견고하지 않고 군비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나라재앙이 아니고, 농사지을 땅이 넓혀지지 않고 재물이 모이지 않는 것이 나라의 해가 아니다. 윗사람이 예를 지키지 않고 아랫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법을 어기는 백성이 생겨나서 나라를 잃는 것은 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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