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상만 인권운동가
세월은 무섭다. 어느덧 만 19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모티브가 되었던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가 1998년 2월 24일에 발생하여 올해로 19년을 맞이했다.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장남을 잃고 억울함을 토로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 아버지, 김척 예비역 육군 중장의 분노 역시 19년째다. 내가 이 아버지를 처음 만난 때는 1998년 5월의 일이었다. 당시 50대 중반이었던 아버지는 어느덧 70대 중반을 헤아리고 있다. 조국을 위해 만 36년간 군복을 입었던 아버지는 월남전에도 3년이나 참전했다. 그 3년 동안 무수히 많은 죽음과 마주쳤지만 아버지는 오직 조국의 명령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끔찍한 월남전 고통보다 더 큰 비극은 따로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장남의 죽음이었다. 그것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후 그 아버지가 겪은 심적 고통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아버지를 처음 만난 곳은 1998년 내가 일하던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사인 과정에서의 의문점을 침착하게 설명했다. 나 역시 그런 김훈 중위의 자살이 납득되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방송국이 MBC ‘피디 수첩’ 이었다. 방송으로 보다 많은 국민들이 이 의문의 죽음을 알아야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다며 아버지와의 합의하에 부른 것이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카메라가 도착하고 이내 촬영이 시작되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인터뷰를 거부하는 것 아닌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내가 아버지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때 들려준 아버지의 말씀.

아버지는 모든 군인들이 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며 “일부 군인중 아주 나쁜 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지금 우리 군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니 그 잘못만 바로 잡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에 의해 ‘국방부도 속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36년간 자신이 충성해 온 군이 진실을 알면서도 저렇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순진한 아버지를 배신한 곳은 다름 아닌 ‘아버지가 그렇게 믿었던 국방부’였다. 아버지의 믿음과 달리 국방부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잔인하게 외면했다. 대표적인 경우중 하나가 ‘김훈 중위 자살 결론’ 발표 시간이었다. 1998년 2월 24일 낮 12시 20분경, 김훈 중위가 판문점 241GP 3번 벙커 안에서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러자 국방부는 국방부 출입기자에게 ‘김훈 중위가 자신에게 지급된 권총으로 자살했다’며 발표한다. 이것이 김훈 중위가 자살한 것으로 지난 19년간 억지를 부리는 첫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 그 증거가 국방부의 자살 결론 발표 시각이다. 국방부는 오후 2시경 이러한 내용을 발표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시각은 사건 현장에 군 헌병대 수사관이 채 도착도 하지 않은 때였다. 즉, 수사가 시작도 되지 않은 시각에 국방부가 김훈 중위 자살을 발표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후 군은 김훈 중위의 모든 타살적 증거를 배제한 채 자신들이 발표한 자살 의심 증거만 모으는데 주력한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유족이 억울함으로 몸부림치고 있던 그때, 한줄기 희망의 빛이 찾아왔다. 바로 재미 법의학자인 노여수 박사였다. 그는 모두 11가지의 ‘김훈 중위 타살’ 증거를 제시하며 국방부의 ‘자살 결론 굳히기’를 반격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적 진실을 국방부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끝끝내 외면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대법원, 그리고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김훈 중위 자살’을 오직 국방부만 유일하게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언컨대 주장한다. 김훈 중위는 자살하지 않았다. ‘만약 자살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분명한 타살 사건을 자살로 우기는 ‘국방부의 양심’이다. 언제까지 이 분명한 사실을 국방부만 외면할 것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저 바보같은 주장을 국방부는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이제 내년이면 김훈 중위 20주기를 맞이한다. 부디 그전에 이 논란이 그만 되어야 한다. 김훈 중위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나는 촉구한다. 영원한 청년 장교, 김훈 중위의 19주기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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