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인천에 살다가 일산에 터를 잡은 지 어느덧 훌쩍 십 년이 지났다. 그 사이 사십 중반에서 오십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 김한수 소설가

일산에서의 삶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일산은 여러 면에서 인천과 많이 달랐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시민사회에 인문학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인문학 공부를 하는 모습은 참으로 낯선 풍경이었다. 일산에 정을 붙이고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여러 사람들과 의기투합하여 고양인문학연대 ‘울림’을 만들어 삼 년간 작가와 대화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여러 단체와 인연을 맺어 다양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만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문학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언어, 문학, 예술, 철학,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살다보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행하기 마련인데 나는 어쩐지 일산에 자리 잡은 인문학의 저변이 보이는 만큼 느끼는 곳에 머물고 있다는 잔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일산 시민들 사이에 축적된 인문학적 토대는 두드러지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일상적 공간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꾸만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지향점이 아직까지는 삶의 변화보다는 개인적 만족에 치우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 만족을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는 자체도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미래의 삶을 생각하면 인문학이 관념에 머물지 말고 삶 자체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선 인문학을 접하는 틀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재작년에 나는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농사를 지어온 벗들과 함께 ‘텃밭으로 간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했었다. 한 주는 작은 도서관에 모여서 인문학 공부를 하고, 다음 한 주는 농장에 모여서 농사를 짓는 방식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우리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었다. 그때 모였던 사람들 삼분의 일은 농장 식구가 되어 지금까지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데 그 우애가 보통 끈끈한 게 아니다. ‘텃밭으로 간 인문학’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1박 2일에 걸친 김장이었는데,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작은 도서관에 왁자지껄 모여서 콧노래 흥얼거려가며 김장을 했던 풍경은 지금까지도 동네 이야깃거리이다. 또한 주변에서 발상이 정말로 참신했다는 격려도 많이 받았다.

지난해에는 이런저런 일들로 겨를이 없어서 유야무야 지나갔지만 우리는 올해 더욱 발전된 형태의 ‘텃밭으로 간 인문학’을 진행해보려고 계획 중이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면 삶 자체가 공부이고, 공부하는 방식도 진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수많은 현장이 있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현장도 있지만 잔잔하게 흘러가는 현장도 있다. 인문학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길 바란다면 구체적 관계와 이야기가 출렁거리는, 우리 모두가 발 딛고 살아가는 바로 그 현장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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