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윤 인문학 작가
“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그룹이 있다. 요즘은 제법 세련된 복장과 용모를 갖췄으나 데뷔 때만 하더라도 영락없이 동네 백수청년 모습을 한 이 그룹은 ‘싸구려 커피’로 흥행을 하더니, ‘달이 차오른다, 가자’와 ‘느리게 걷자’ 등 그야말로 백수 예찬에 가까운 노래들을 쏟아냈다. 그 중에 백미는 위에 첫머리 가사를 소개한 ‘별일 없이 산다’ 였다.

나는 이 노랫말에 왜 감동했는가? 노동개념의 역전된 표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파 고전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뿐만 아니라 좌파 무정부주의경제학자들이나 마르크스경제학과도 연결되는 ‘노동가치설’은 노동을 새로운 가지 창출의 원천으로 여긴다. 거기에 사도 바울의 언술인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마라”는 구절까지 이어지면 그야말로 인간은 노동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와 다름이 없다.

자본을 증식시키는 것도 노동이요, 노동자의 구매력을 확보하는 것도 노동을 통해서다. 노동자에게는 일할 자유와 굶어죽을 자유밖에 없다고 마르크스는 진술했으나, 사실 일할 자유조차 박탈당한 오늘날 안정된 노동조건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마르크스가 노동자를 임금노예에 비유하고, 혁명을 통해서 노예의 쇠사슬을 끊으라고 선동했지만, 오늘날 구직자들은 간절히 임금노예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천지개벽! 백수가 별일 없이 산다니. 별다른 걱정 없다니. 이렇다 할 고민이 없다니. 설상가상으로 노래 후반부에선 이렇게 외친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경천동지할 노릇이다. 이 배짱은 무엇인가?

요즘 들어 유행하는 말이 4차 산업 혁명이다. 조만간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게 되면 인간은 대량실업사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초의 산업혁명은 농민에서 노동자로의 이전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노동자에게 백수로 전락하게 될 운명이다. 다른 일자리를 구하면 된다고? 불가능하다. 유발 하라리의 신간 『호모 데우스 』의 전망에 따르면, 조만간 인간은 '비고용‘에서 ‘고용불가능’의 상태에 도달한다. 이유는 로봇과 인공지능의 정보량과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나는 장기하의 노래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본다. 편하게 살려고 죽어라 노동하는 노동숭배의 시대는 이미 낙후되어 버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완전고용, 고용승계는 민중을 유혹하는 정치적 슬로건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현불가능한 꿈일 가능성이 크다. 노동가치보다 소중한 것은 삶 자체이다. 고용노동이 아니어도 살아가야할 이유는 수 천 수 만 가지이다. 따라서 우리가 더 절실히 고민해야할 것은 그 수 천 수 만 가지의 삶의 이유를 현실화할 다양한 방법을 탐색하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은 노동현장에서 모색되는 대안이고, 기본소득제는 사회적 대안이 되겠지만, 그보다 앞서 노동을 숭상하는 낡은 이념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별일 없이 살아도 하루하루가 즐겁고 매일매일 신나는 삶을 가능할 것이다. 이 얼마나 깜짝 놀랄만한 혁명적 발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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