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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에 오른 추사 김정희, 1250년 동안 잠자던 빗돌의 심장을 깨웠다<선인들의 숨결 따라 걷는 북한산 1> 추사 김정희의 길
  • 유경종 기자
  • 승인 2017.03.20 15:06
  • 호수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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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성취와 현실의 좌절 공존한 추사의 삶
산영루와 부왕사지 찾아 여러 편의 시 남겨
비봉 진흥왕 순수비 고증으로 조선 금석학의 새 장 열어
 

 

추사의 길을 따라 가는 테마산행을 함께한 고양신문 독자산악회원들이 중성문 앞에서 카메라 앞에 모였다.

 

 


[고양신문] 휴일에 북한산을 오르는 일은 일종의 거대한 집단 퍼포먼스에 동참하는 행위와도 같다. 어느 등산로든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의 행렬이 긴 줄을 만든다. 대한민국 심장의 뒷마당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이 웅장한 바위산을 오르는 이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산을 향한 애정을 헌사한다. 누군가는 올라야 할 봉우리를 생각하고, 누군가는 산세와 경개를 즐기고, 누군가는 길가에 핀 꽃과 나무들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함께 동행하는 이들과의 교감을 만끽한다.

고양신문 독자 산악회는 매월 한 차례 북한산 곳곳에 스민 ‘시간의 흔적’을 바라보기로 했다. 오래 전 북한산을 찾았던 선인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되밟아 보자는 것. 첫 번째 테마산행의 주인공으로 초청된 인물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다. 19세기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는 북한산과 연관된 많은 문장과 이야기를 후세에 남겼다. 추사의 삶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 추사 연구의 대가인 한성대학교 한국어문학부 정후수 교수가 동행했다.

추사를 만나러 떠나는 산뜻한 산행길 

3월 둘째 주말의 날씨는 겨울의 흔적을 떨쳐버린 듯 포근했다. 20명 남짓의 일행 속에 친숙한 얼굴과 참신한 얼굴이 적당히 뒤섞인 까닭인지 분위기도 날씨만큼이나 활기차다. 고양신문 독자 산악회를 이끌고 있는 임철호 대장이 오늘의 코스인 ‘추사의 길’을 소개한다. 중성문을 지나 첫 번째 목적지인 산영루를 둘러본 후, 부왕사지를 거쳐 부왕동 암문과 청수동 암문을 지나 비봉까지 올라가는 코스다. 거리가 만만찮지만 추사의 흔적들을 하루에 일별하려면 어쩔 수 없다. 등산화끈을 다시 동여맨다.

북한동 역사관이 있는 쉼터까지 이어지는 계곡길엔 너른 바위가 즐비하다. 그 사이로 맑은 계곡물이 때론 웅덩이를, 때론 작은 폭포를 만든다. 간간이 선명한 구멍 자국이 일렬로 늘어선 바위들도 눈에 띈다. 산성을 축조하기 위해 석재를 떼어 낸 흔적들이다.

계곡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유적들은 흥미롭게도 시멘트나 콘크리트 재질의 ‘초 근대 유적’들이다. 집집마다 살구나무를 많이 길러 행화촌이라고도 불렸던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마을엔 불과 10여 년 전까지도 400여 가구가 계곡 주변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 등산객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6년에 이주 정비사업을 벌이며 옛 북한동의 삶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몇몇 흔적들을 현대의 화석처럼 남겨 놓았다. 오래 된 선인의 자취를 찾아가는 길의 워밍업이라고나 할까. 평평한 집터에 덩그러니 남은 시멘트 기둥과 벽돌벽 따위가 친근하면서도 안쓰럽다.

 

 

흰구름 머무는 신선의 골짜기 
 

바위에 새겨진 백운동문 각자.

백운대로 올라가는 길과 중성문 가는 길이 갈라지는 넓은 터에는 북한동 역사관과 넉넉한 쉼터가 마련돼 있다. 조망 데크에선 백운대, 만경대, 염초봉, 원효봉 등의 봉우리들이 가파르게 올려다보인다. 푸른 하늘을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듯 오밀조밀 산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풍광이 멋지다.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며 숨이 찰 무렵 중성문이 나온다. 중성은 북한산성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짧은 성벽이다. 위쪽에 있는 북한산성 행궁을 방비하기 위해 지대가 평탄한 계곡 옆으로 겹성을 쌓은 것. 중성문 문루 위에 올라 첫 휴식을 취한다. 처마 끝에 노적봉의 우람한 풍광이 넉넉하게 걸쳐 있다.

산영루로 향하는 옛길로 들어서니 백운동문(白雲洞門)이라는 바위 각자가 나타나고, 정후수 교수의 설명이 이어진다.
“흰구름이 머무는 골짜기 입구라는 뜻입니다. 옛 사람들이 노래한 절경이 시작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흰 ‘백(白)’자가 들어간 지명이 있으면, 아마도 어딘가에 푸를 ‘청(靑)’자가 들어간 지명이 있으리라 짐작해도 좋습니다. 옛 사람들은 이름 하나를 지어도 청백의 균형을 맞춰 멋스럽게 지었으니까요.”

 

산 그림자 비치는 누각, 산영루

백운동문 문패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계곡 옆 넓은 암반 위에 우아한 정자가 나타난다. 산영루(山映樓)다. ‘아름다운 산 그림자가 물가에 비치는 누각’이라는 뜻의 산영루는 북한산의 영봉들을 뒤로 하고 수려한 계곡을 바라보며, 하늘을 향해 날아갈 듯 치켜 올라간 처마를 자랑한다. 산영루는 1603년에 쓰여진 문헌에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북한산성 축성 이전부터 이 자리에 서 있었던 듯하다. 1925년 대홍수 때 누각이 완전히 유실되고 10개의 주춧돌만 남아 있었던 것을 2014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원형을 복원했다. 다행히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까지 이곳을 찾았던 외국인들의 카메라에 의해 산영루의 아름다운 자태가 사진으로 남아 복원에 큰 도움이 됐다. 

산영루를 찾은 선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겼다. 추사 김정희와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등의 문사들은 산영루를 노래한 아름다운 시를 남겼고, 신석현, 심상훈, 김성근 등은 인근의 바위 위에 손수 자신의 이름을 암각으로 새겼다. 뜻으로 새긴 이름과 정과 망치로 새긴 이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망각이라는 세월의 전략에 대항한다.

산영루의 아름다움 그린 추사의 시
 

추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 준 정후수 한성대 교수.

산영루를 마주보는 너른 바위에 일행들이 흩어져 앉자 드디어 정후수 교수가 추사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추사는 당대의 조선 선비들과 학문의 수준과 안목이 달랐어요. 24세에 청나라에 건너가 완원과 옹방강과 같은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았지요. 추사 하면 떠오르는 추사체와 세한도, 금석학이 모두 추사의 높은 학문과 관념의 세계를 구현한 산물이지요.”

정후수 교수의 설명대로 추사는 19세기 동아시아의 주류 학문으로 부상한 청나라 고증학을 받아들이고, 금석학에 대한 방법론과 안목을 익혀 19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최고의 학자요 예술가로 널리 이름을 떨친다. 청나라에서도 추사의 글씨와 그림 한 점을 얻고자 하는 요청들이 오래도록 이어졌다는 사실만 봐도 추사의 성취와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시대의 첨단에 선 추사의 학문적 눈높이가 형식과 타성에 젖어 있던 당시 조선 지식인 사회와 불화하는 요인이 됐다는 점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타인에 대한 엄정함을 견지한 그의 깐깐한 성격 또한 한몫을 했으리라.
“추사의 생애를 다 들춰봐도 그가 유배를 가야 할 이유를 도대체 찾을 수 없어요. 너무 앞서 간 까닭에 시기를 받았다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지요.”

그렇게 추사는 제주도로, 또 북청으로 쫓겨나 오랜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낸다. 물론 유배 시절에 가장 고고한 학문과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지만, 그의 생애를 감싸고 있는 회한의 쓸쓸함은 지우기 힘들다. 추사가 산영루를 찾아와 남긴 시에도 그러한 정서가 배어있다.        

산영루
여기 저기 붉은 숲속에 / 감돌아 흐르는 시내 또 끊어진 멧부리 / 멀리 오는 종소리는 비에 잠겨 고요하고 / 그윽한 범패 소리는 구름 속에 싸늘하게 들리는구나 / 늙은 돌을 만나자 전생이 생각나고 / 산이 깊어 종일토록 보고 있다 / 연기와 아지랑이가 손짓해 부르는 듯하니 / 조그만 오솔길이 환히 보이는구나

 

그는 유학자였지만 학문과 깨달음의 경지에 경계를 두지 않았던 듯, 시를 통해 불교적 풍경과 세계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드러낸다. 산영루의 그윽한 풍광 속에서 그가 찾은 조그만 오솔길은 무엇이었을까.
 

일행들이 산영루 앞 바위에 앉아 정후수 교수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산세 감상의 최고 조망처, 부왕사지

길을 서둘러 부왕사지를 찾아나선다. 거대한 바위 밑동에 청하동문(靑霞洞門)이라는 바위 각자가 나온다. ‘푸른 노을이 지는 마을 입구’라는 뜻이다. 산영루의 초입에서 마주했던 백운동문각자의 짝꿍이 바로 여기로구나.

바위를 돌아 왼편으로 언덕을 오르면 넓은 절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부왕사지다. 부왕사(扶旺寺)는 북한산성 안에 있었던 10여 곳이 넘는 승영사찰 가운데 하나였다. 절집의 기능과 승군이 머무는 병영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던 까닭에 무기고와 군량 창고와 같은 군사시설도 있었던 것 같다. 아쉽게도 건물들은 한국전쟁 와중에 모두 소실되고 지금은 누각 터의 석축과 당당히 남은 주춧돌만 과거의 웅대했던 규모를 증언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는 부왕사에서도 시 한 수를 남겼다.

부왕사 
산을 구경하기는 어디가 좋은가 / 부왕사 옛날의 선림(禪林)일세 / 해 떨어지자 봉우리가 물들인 것 같아 / 단풍이 환히 피니 골짜기가 어둡지 않아 / 종소리는 원근에 들려오고 / 새들은 깊은 산에 살고 있구나 / 점점 무엇이든 오묘한 것임을 깨닫겠으니 / 영구(靈區, 신령한 땅)와 도심(道心, 불도를 행하는 마음)이 서로 알맞구나

추사의 말마따나 부왕사 터 끄트머리에 서니 멀리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들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산봉우리 너머로 해가 저물고 사위가 붉게 물드는 시간을 기다리면 속인들도 추사처럼 ‘무엇이든 모요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으려나. 

부왕사에서 부왕동 암문으로 오르는 산길가엔 추사가 묘사한대로 단풍나무가 지천이다. 골짜기를 환하게 밝힌다는 단풍을 기대하며 가을날 이 길을 다시 한 번 걸어보리라.
 

부왕사지에서 건너다 보이는 북한산 영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의 자태가 멋지다. 

 

1250년 전 비석의 실체를 밝혀내다

부왕동암문에서부터는 가파른 고개를 몇 번 오르내리며 나월봉과 나한봉을 거쳐 청수동암문에 다다른다. 숨 한번 돌리고는 승가봉과 사모바위를 찍고 비봉으로 향한다. 비봉이야말로 추사의 흔적을 더듬어 가는 여정의 하이라이트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816년 7월, 추사는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승가사 뒤편으로 우뚝 솟은 바위를 힘겹게 오른다. 뒤편으로는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도열하고, 눈앞으로는 한양 도성의 지세가 한눈에 조망되는 바위 봉우리 끝에는 오래 된 비석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세인들이 조선 건국의 설화와 연관된 무학대사의 비석, 또는 신라 도선 국사의 비석이라고 짐작하곤 했지만, 아무도 그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미지의 비석 앞에서 추사는 오랜 세월의 더께를 하나하나 벗겨 내고 숨겨진 글자들을 찾았다. 그렇게 발견된 글자들을 추사는 조심스레 탁본으로 옮겼다.

탁본을 품고 산을 내려 온 추사는 글자 속에 숨은 비밀을 푸는 일에 매달려 비로소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眞興王 巡狩碑)라는 사실을 명쾌하게 고증해낸다. 
그로부터 1년 뒤 추사는 다시 비봉에 오른다. 이번에는 그의 학문적 파트너였던 조인영이 동행했다. 첫 산행이 궁금증과 호기심이 동반된 길이었다면, 이번 산행은 감격과 자부심을 한아름 안고 오른 등정이었다. 추사는 동행한 석수쟁이를 통해 비석 측면에 글자를 새겨 넣는다.

‘이것은 신라 진흥대왕의 비석이다. 병자년 7월에 김정희와 김경연이 와서 비문을 읽었다’
‘정축년 6월 8일에 김정희와 조인영이 함께 와서 남아 있는 글자 68자를 확인했다’

1년의 시차를 두고 이뤄진 두 번의 방문, 그리고 그 사이에 진행된 놀라운 학문적 성과를 두 줄로 간결하게 기록한 것이다. 정후수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역사적이고 위대한 순간이 아닐 수 없지요. 1250년 동안 세월에 묻혀 있던 비석의 역사가 만천하에 드러남과 동시에, 추사 김정희를 조선 금석학의 개창자로 우뚝 세우는 결정적인 장면이니까요.”
 

비봉 정상에 우뚝 선 진흥왕 순수비. 추사 김정희에 의해 비로소 125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을 거슬러 오른 추사의 길을 따라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의 진품은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돼있다. 비봉에 서 있는 비석은 희미하게 마모된 앞면과 측면의 글씨는 물론, 한국전쟁 당시 생긴 탄흔의 상처까지 오롯이 재현한 복제비다. 비록 진품은 아니지만 실물 크기 그대로 재현된 진흥왕 순수비를 가까이서 알현하는 심정은 벅차다.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기에도 오히려 부담이 없다. 손바닥으로 마멸된 글자들을 천천히 짚어본다. 오랜 세월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이름을 잃어버린 채 버텨온 길고도 무거운 고독이 차가운 빗돌의 심장으로부터 전해오는 듯하다.

눈 밝은 추사에 의해 비로소 실체가 밝혀져 무명의 어둠을 몰아낸 비석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옛것을 발견하고 기억한다는 일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본다. 테마산행의 첫 손님으로 추사를 모신 건 정말 잘 한 일이지 싶다.

산행코스 
북한산성 입구 - 수문 - 북한동역사관 - 중성문 - 백운동문 각자 - 산영루 - 청하동문 각자 - 부왕사지 - 부왕동암문 - 청수동암문 - 비봉 - 진관사
 
 

산영루 인근에 자리한 선정비문. 

 

 

부왕사지 초입의 바위에 새겨진 최송설당의 암각문.

 

 

 

부왕동암문에서 청운동암문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에서 건너다 본 주 능선의 우람한 봉우리들.

 

 

 

비봉 정상 근처에서 벅찬 산행의 방점을 찍으며 인증샷.

 

 

(사진 = 김정호 사진작가)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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