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구 다산의원 원장
드디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졌다.
한겨울 내내 주말을 반납하고, 광화문에 또는 각 지역의 집결 장소에 모여 촛불을 든 지 20회만에 드디어 국민의 뜻을 받들어 8:0으로 파면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이는 국민의 위대한 승리이고, 역사에 남을 민주주의의 승리다. 우리의 힘으로 쟁취한 승리이기에 마음껏 즐거워하고, 자녀들에게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자.

특히 중요한 것은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파면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동안 탄핵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조직적인 시위가 이어지고, 대통령 변호인단뿐 아니라 시위대들의 도를 넘는 행패와 막말에도 우리 국민들은 침묵으로 인고(忍苦)해 왔다. 더디지만 차근차근 진행되는 재판이 법률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이었기에 묵묵히 지켜보고 기다렸던 것이고, 우리가 만든 법체계에 따라 이루어진 파면이기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이제 탄핵 불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스스로가 헌정질서를 거부하는 세력이라는 뜻이므로 더 이상 국민들의 지지와 공감대를 획득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우리 힘으로 다시 한 번 국제 사회가 부러워하는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파면되었지만 국민들의 삶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적폐’가 당사자의 문제나 그 일당의 범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탄핵의결과 헌재의 심판 과정 중에서 국정교과서 강행, 사드 배치 강행, 각종 친재벌적 정책과 규제 완화 법률 추진이 지속되는 것은 박근혜의 국정 농단이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재벌–보수 언론–학계–법조계-고위 공무원-군부 등 기존의 기득권 집단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면서 생긴 일이다. 따라서 파면 이후에도 이들 집단들은 여전히 건재한 상태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숨가쁘게 당내 경선과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겠지만 새 대통령이 당면할 상황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여당이 없이 5당 체재로 바뀐 국회가 탄핵을 가결한 이후 제대로 된 개혁입법이나 적폐청산 관련 법안을 하나도 통과시키지 못한 것은 새 정부가 출범해도 그대로 반복될 것이다. 국회나 정부는 법안이나 예산 등 곳곳에서 국회선진화법과 이제는 야당이 된 박근혜 공범들의 반대에 발목이 잡혀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시간만 끌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집권 여당 없이 5당 체제로 바뀐 국회는 이미 탄핵 심판 기간 동안 ‘특검 연장 실패, 황교안 총리 견제 실패, 사드 배치 저지 실패, 상법 개정안 통과 실패, 국정 교과서 추진 중지 실패’ 등 일련의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반개혁적인 정치적 입장과 정치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새 정부가 출범해도 국회의 의석 분포를 볼 때 상황이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몇몇 정당들이 연정을 해서 과반을 만들더라도 국회 선진화법이 계속 새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20대 국회가 앞으로 3년간이나 지속되기 때문에 새 대통령이 아무리 유능해도 국회의 동의와 협력을 얻기가 쉽지 않고 노동관계법이나 상법의 개정, 적극적 증세 등의 획기적인 개혁이 통과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금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나선 분들이 일정 수준의 복지 확대나 노동 개혁, 그리고 재벌 개혁과 적폐 청산은 이야기하지만, 대한민국의 혁신적 비전이나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나라의 구체적인 모습을 일관되게 제시하는 후보가 아직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가 대통령과 집권당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그 다음 단계의 ‘촛불 혁명’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 있을 각 정당의 후보 경선 과정에서 후보들에게 ‘당신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물어보자. 이어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는 각 당의 공약을 넘어 증세 여부와 재벌 규제, 그리고 노동개혁의 방법 등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주요 정책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 할 수 있을지를 가지고 검증하자. 또 다시 특정 후보의 성격이나 외모로 판단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20대 국회의 의석 구조와 정부의 재정 상황, 그리고 냉혹한 국제 사회의 외교 현실에 근거하여 실제로 국정 운영 능력이 있는지를 살펴보자.

4년 전 제대로 된 검증을 하지 못한 것은 정치인들과 언론의 잘못이 크겠지만, 그 피해는 우리 국민들이 고스란히 온몸으로 지고 있다. 대통령이 무능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는 해운산업과 조선산업의 몰락이나 대북관계의 악화로 인한 안보위험의 증가, 사드 강행 배치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넘어 보육, 교육, 의료, 일자리, 주거, 노후보장 등 국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대통령을 잘못 뽑은 대가는 우리들 삶의 어려움을 넘어 자녀들의 목숨까지 요구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후보들에게 무엇을 물어보고, 정당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자. 또 다시 고통을 감내하기에는 국민들의 삶이 너무나 어렵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