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공간> 경의선 책거리

일산에서 25분, 책·공원·카페 어우러진 나들이 명소

 

경의선 책거리의 간판 조형물. 휴식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낭만의 거리를 상징한다.

 

[고양신문] ‘경의선 숲길’을 아시는지? 젊은이들 사이에선 어느새 입소문이 자자한 도심의 나들이 명소다. 경의선 기찻길 중 가좌역에서 용산역에 이르는 6.3㎞구간이 지하화되면서, 지상에 남은 폐철로 구간을 도심 휴식 공원으로 꾸민 것.

몇 해 전부터 염리동, 새창고개 등의 공원이 순차적으로 들어섰는데, 가장 유명한 구간은 홍대입구역에서 가좌역 방향으로 이어지는 연남동 구간이다. 정감 있는 주택가와 공원, 그리고 개성 있는 카페들이 어우러진 연남동 경의선 숲길은 뉴욕의 유명한 녹지공원인 센트럴파크를 패러디한 ‘연트럴파크’라는 애칭을 얻었을 정도로 인기 있는 핫플레이스다.

경의선 숲길은 어느덧 고양시민들에게도 친숙해졌다. 일산의 백마역에서 전철을 타면 25분이면 홍대입구역에 도착할만큼 가깝다보니 ‘부담 없는 서울 나들이’ 코스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콘크리트와 철골을 이용해 모던하게 제작한 테마별 책방 건축물.

 

‘연트럴파크’ 반대쪽에 문 연 책거리

최근 ‘연트럴파크’ 반대쪽으로 또 하나의 명소가 조성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같은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이번에는 서강대역 방향인 6번 출구로 나가 걷다 보면 기차 모양으로 지은 세련된 건축물들이 연이어 이어진다. 건물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다. 지난해 10월 개장한 ‘경의선 책거리’다.

기차의 객차 모양으로 만들어진 책방 에는 각각 ‘00산책’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예술, 인문, 문학, 아동, 여행 등 각각의 장르에 어울리는 전문 출판사들이 책을 진열·판매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제한된 공간에 꼭 보여주고픈 책만 엄선한 출판사들의 정성이 느껴진다. 한쪽에는 편하게 앉아 책을 펼쳐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책들을 살피다 보니 마치 기차 여행과 독서 여행을 동시에 떠나는 듯 설렘이 밀려온다.  

지붕이 둥근 객차 건물은 조금 다른 산책을 제안하는 장소다. ‘창작산책’에선 책을 테마로 한 다양한 창작활동이, ‘문화산책’에선 전시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기자가 찾은 날에는 새롭게 시작되는 사진전 ‘히말라야의 숨결’이 한창 오프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테마별 책방의 실내도 객차 내부를 연상케 한다. 사진은 '아동산책' 코너를 운영 중인 보리출판사 책방.

          
책과 사람, 문화가 한자리에

이곳에 책거리를 꾸민 이유는 뭘까? 사실 홍대 앞 거리는 젊은이들의 유행을 선도하는 문화의 거리지만, 동시에 국내에서 가장 많은 출판사가 몰려 있는 ‘책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주인장의 취향에 따라 다채롭게 진화하고 있는 ‘작은 책방’ 붐의 진원지도 이곳 홍대 앞이다. 그러니 선물처럼 주어진 기찻길 자리를 책을 테마로 삼은 공원으로 조성한 것은 이곳을 중심으로 건강한 독서 문화가 다시 한 번 꽃 피기를 바라는 마음일 터.

올 한 해 ‘아동산책’ 책방을 운영 중인 보리출판사의 담당자는 경의선 책거리의 진짜 매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단순히 출판사별로 책만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책과 연관된 다양한 강연과 만남이 쉬지 않고 이어지는 거리예요.”

그의 말처럼 이곳에선 작가와의 만남, 명사들의 강의 등 다양한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연중 이어진다. 벽에 붙은 행사 홍보물과 전시 포스터 등이 문화적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다.

 

 

와우교 아래를 장식한 전시물.


공원길 따라 흥미로운 풍경 이어져

거리 중간 중간 인상적인 조형물들도 매력적이다. 벽면을 배경 삼아 거대한 서가의 형상을 재현한 작품이나 기타를 치며 일상의 여유를 만끽하는 남녀 커플 조형물 등을 배경삼아 나들이 기념사진을 남기기에도 딱이다. 

기차 책방은 와우교에서 끝난다. 와우교 교각 아래 공간에는 가상의 역인 ‘책거리 역’이 만들어졌다. 플랫폼 위엔 제법 이정표도 있고 기차를 기다리는 벤치도 있다. 책의 길을 걷다 잠시 앉아 생각의 쉼표를 찍으라는 의미인가 보다.

와우교에서 조금만 가면 예전에 기찻길과 찻길이 교차하는 건널목이었던 땡땡거리가 나온다. 기차가 들어올 때면 ‘땡땡땡’ 신호음이 울려 붙여진 이름이다. 건널목을 지키는 역무원 조형물이 옛 시절의 추억을 환기시킨다. 잘 찾아보면 어느 무명의 동네 예술가가 만들었을 법한, 땡땡거리를 중심으로 한 주변 맛집들의 마을 지도도 발견할 수 있다.

전성기를 구가하는 연남동 숲길과는 비교하기 힘들지만, 경의선 책거리 주변에도 소박하고 개성 넘치는 카페와 서민적 분위기의 먹거리집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북적이거나 소란하지 않아 조금은 호젓한 나들이를 즐기는 이들에겐 오히려 안성맞춤일 듯.

나들이의 마무리를 좀 더 풍요롭게 장식하고 싶다면 땡땡거리나 와우교에서 홍대, 또는 신촌 방향으로 빠지면 된다. 지척의 거리에 술집, 맛집은 물론 공연장과 소극장, 책방, 공방 등의 문화 공간들이 줄지어 있다.   

 

 

기차 건널목이었던 땡땡사거리엔 역무원 모형의 조형물이 서 있다. 주변엔 서민적 분위기의 먹거리집들이 많다.

 


책거리 가득 채울 ‘사람책’ 꿈꿔

땡땡거리부터 서강대역까진 아담하고 쾌적한 공원길이다. 기찻길 옆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아온 주민들의 소박한 일상의 흔적들도 눈에 띈다. 자투리땅엔 작은 화단이 가꿔져 있고, 골목길엔 담쟁이가 울타리를 타고 오른다.
공원은 철길에 대한 기억의 이미지를 모티브 삼아 레일과 침목, 파쇄석, 콘크리트 등이 소품으로 적절히 쓰였다. 철로 위에 귀를 대면 지금이라도 먼 기적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녹지도 넉넉히 조성됐다. 머잖아 연둣빛 새싹이 올라오면 공원의 풍경도 한결 근사해질 게 분명하다. 
산책을 마치고 나니 와우교 아래에 커다랗게 쓰여 있던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 ‘오늘 당신과 함께 할 책은 무엇입니까?’ 맞다.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순간에도 책은 늘 마음 한 곳에 나와 함께 있어줬다. 동시에 이런 말도 떠올랐다. 사람들 스스로가 사실은 각각 한 권의 책이라고.
봄이다. 나들이하기 좋고 책과 만나기에도 좋은 계절 아닌가. 경의선을 타고 책거리 역에서 내리자. 그곳에서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이 북적이는 ‘사람책의 거리’를 꿈꿔보자.   

경의선 책거리

경의중앙선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시작
기차책방 운영시간 오전 11시 ~ 오후 8시
          (매주 월요일 휴무)


책과 독서문화를 테마로 한 조형물.

 

와우교 하부에 만들어진 경의선 책거리 역.

경의선 책거리 주변으로 개성 넘치는 카페와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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