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수 소설가
어릴 땐 사는 게 참으로 힘들었다. 그때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전쟁세대냐고 물어볼 정도로 하루하루가 녹록치 않았다. 위기의 순간도 많았고 나쁜 길로 발을 들일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들도 있었다.  
그래도 용케 여기까지 잘 왔다. 비록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않지만 가족들과 아픈 데 없이 오순도순 잘 살아가고 있고, 벗들과 아름다운 꿈도 일구고 있다.

나이 탓일까, 이따금씩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웃음을 잃지 않고 매서운 겨울을 의연히 견딜 수 있었을까 하고 반추해볼 때가 있다. 아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책 속에서 훌륭한 스승을 많이 만났다. 그 스승들은 어둠 속에서 환한 길로 나를 이끌었고, 힘든 순간마다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대충 헤아려보면 십대 때 읽은 책이 대략 천 권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가운데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책은 조세희 선생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전태일 평전’이다. 중학생 때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우연히 사보았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나는 열 번도 넘게 정독을 했다. 그러면서 굳게 결심했다. 나중에 작가가 되면 조세희 선생님 같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십대 후반에는 ‘전태일 평전’을 읽고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전태일 평전’을 읽는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전태일처럼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비록 전태일처럼 헌신적으로 살진 못했지만 그때의 다짐은 이후 내 삶의 나침판이 되었다. 사십대 초반에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그때 만난 책이 헨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였다. 나는 그 책을 읽는 내내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 마침표를 읽고 나서 남은 생을 이분들처럼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위기에서도 잘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난 십 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나는 텃밭에 도서관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텃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어가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상상을 하면 그 자체로 근사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그래서 텃밭도서관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꿈으로 남았다.

그런데 올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몇 년간 인연을 맺어온 농장 회원 한 분과 점심을 먹으면서 비록 기약은 없지만 언제가 됐든 텃밭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는데 그 분이 대뜸 얼마가 필요하냐고 진지하게 물어왔다. 삼백만 원쯤 있으면 가능할 것 같다는 대답을 하자 그 분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을 전제로 그 자리에서 계좌이체를 해주었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내게 그 분은 자신도 도서관을 만드는 게 꿈이었다고 수줍게 고백을 했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샌드위치 패널로 그늘막 밑에 네 평짜리 가건물을 지었고, 흙바닥에는 습기가 올라오지 않도록 수평을 잡아서 벽돌을 깔았다. 그런 뒤 벽돌 위에 방수합판을 올리고 장판을 깔았다. 기꺼운 마음으로 머슴을 자처한 농장 회원들이 있어서 작업은 사흘 만에 뚝딱 끝났다. 이젠 책꽂이를 들이고 책만 꽂으면 된다. ‘텃밭도서관 지렁이’라는 현판도 주문해 두었다. 그야말로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이제 ‘행복한농사공동체 자유농장’에서는 몸과 함께 마음도 살찌울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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