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 인문학 작가
[고양신문] 서기 676년 선불교의 육조 혜능이 법성사에 이르렀다. 마침 법성사에서는 인종법사가 대중들에게 열반경을 강론하고 있었다. 이 강론을 듣던 두 중이 흔들리는 깃발을 보며, 한 중은 깃발이 움직인다 했고, 다른 중은 바람이 움직인다 했다. 그때 혜능이 말했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니다. 바로 너희들의 마음이다.” 과학적으로는 틀린 말이지만 지혜로운 말이다. 강론은 듣지 않고 딴 곳에 마음이 흔들리는 두 중의 어리석음을 깨치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마음은 어떤가?

소위 ‘깜깜이’ 선거기간이다. 공식적인 설문조사 발표도 없는 이 시기에 가장 기승을 부리는 것이 가짜뉴스의 양산이다. 유권자들의 불안을 이용하여 표심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려는 온갖 협작과 사기가 넘쳐나는 시기이다. 상대방 후보에 대한 비난 등 흑선전이 넘쳐난다. 검증기간이 짧아 진위를 확인할 길도 없다. 되는 놈 밀어주자며 몰표를 종용하고, 이러다간 다 죽는다며 위기론을 퍼뜨린다. 축제의 막바지에 찬 물을 끼얹는 더러운 수작이다.

모두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 표 때문이다. 평소에는 거만하던 정치인들이 고개를 굽신거리며, 시장을 돌며, 떡볶이와 순대를 찍어먹으며, 웃음 섞인 손을 내미는 것도, 유세차를 동원하여 동네를 돌며, 공터에서 피켓을 들고 집단춤을 추는 것도, 형형색색의 옷을 맞춰 입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것도, 우리가 가진 표 한 장 때문이다.

투표는 선거의 꽃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그 꽃 한 송이가 누구를 위해 피어올라야 하는 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 한 장이 누구를 위하여 행사되어야 하는 지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 생각하고 따져보면 그 소중한 표 한 장 바로 유권자 자신을 위해 표현되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투표하는가?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투표하는가? 바로 우리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그러니 선거공보물을 보며 어느 당 후보가 더 괜찮은지 따지기에 앞서, 바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행사하는 표 한 장은 어느 당의 누구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격려하고 지지하기 위한 것이다. 청와대의 새주인이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주인이다. 집권당이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권력의 중심이다. 투표는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니 표를 던지는 행위는 신중하고 신중하여야 한다.

아직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표를 부동표(浮動票)라 한다. 기실 이 표현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를 뜻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적 삶’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네 삶은 마음 붙일 곳이 마땅치 않다. 삶은 가볍고 액체적이며 불안정하여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어른은 말할 것도 없고 청소년과 청년은 더 암울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소중한 표 한 장을 들고 있다. 어떤 이는 될 사람을, 최선이 아니라 차선, 심지어 차악을 밀어주자며 사표심리를 건드리지만,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신념에, 자신의 행복에, 아이의 미래에 표를 행사하자. 우리가 행사하는 한 표가 화살이 되어 부정과 부패를 심판하자. 우리가 던지는 한 표가 징검다리가 되어 오염된 역사의 격류를 넘어 가자.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어 어둠을 밝히자. 우리 자신이 승리자가 되자. 우리가 죽지 않는 한 사표(死票)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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