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고 김광석 교장, 고양고 시절 스승 이재호 선생에 매주 주말 씻겨 드려

은퇴 앞둔 무원고 김광석 교장
고양고시절 스승 이재호 선생에
매주 주말 방문해 씻겨 드려

[고양신문] 몸이 불편한 옛스승을 찾아 매주 목욕을 시켜드린 한 제자가 있다. 스승은 80대고 제자는 60대에 이뤄진 일이기도 하다. 제자는 4년 동안 거의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스승을 찾았다. ‘스승의 날’ 의미조차 사라지는 요즘, 제자는 또 다른 누군가의 스승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무원고 김광석 교장은 신문 인터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신문에 나올 만큼 본인에게 특출난 점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김 교장은 스승을 목욕시킨 일을 동창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일절 말하지 않았다. 스승의 사생활도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에 공개하기가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고양중학교 2학년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조원행 고양중·고 총동문회장 외에는 이 훈훈한 미담을 아는 사람이 없다.

김광석 교장이 목욕시킨 스승은 발산중학교 교장을 지내고 정년퇴임한 이재호 선생이다. 이재호 선생은 김 교장이 고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3년 동안 담임을 맡았었다. 김 교장에게 이재호 선생은 또한 고양 중·고등학교의 하늘같은 선배이기도 했다. 김 교장은 고교 졸업후 스승의 날, 음력 10월 27일 생신, 설과 추석 등 명절이면 빠지지 않고 이재호 선생을 찾아뵈었다.  

▲ 고양고 선배이자 고양고 시절 스승인 이재석 선생을 4년 넘게 주말 목욕시켜드린 김광석 무원고 교장. 김 교장은 올해 8월 37년간의 교직생활을 정리하고 은퇴하게 된다.

“이재호 선생님의 사모님이 혈액투석을 하며 투병생활을 오래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서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거동하는 것이 안타까웠죠. 사모님이 돌아가신 후 선생님을 찾아뵙고 얘기를 나누는데 선생님한테서 노인 특유의 냄새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목욕을 한번 시켜드리고 싶다고 제안을 드려봤어요. 사실 선생님의 바로 옆집에 아드님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걸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도, 아드님도 흔쾌히 동의해주시는 거예요. 제가 한 번 해외여행을 할 때를 제외하곤 매주 선생님을 뵈었던 것 같아요.”

김 교장은 교직에 있는 아내의 동의를 구해 주말이면 스승을 목욕시켜드리는 일을 4년 이상 이어나갔다. 적적해진 스승을 씻기며 결코 수고스럽다고 생각해본 적 없이 늘 기뻤다고 했다. “선생님의 등을 닦아드리면 ‘시원하다’는 그 말 한마디를 듣는 기쁨도 있고 바깥소식을 전해드리는 기쁨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 스스로도 교단에서 늙었지만, 그 이전 교단에서 먼저 늙어버린 스승의 몸을 씻겨주는 일은 김 교장에게 소중한 주말 일과였다. 가끔은 스승과 함께 목욕하기도 했다.
 
김광석 교장이 기억하는 학창시절 이재호 선생은 “매우 엄격하고 열성적인 분”이었다. 국어 교사였던 이재호 선생은 바르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는 용납을 하지 못한 분이었다는 것이다.

▲ 1970년대 초반 사진. 맨 오른쪽이 이재호 선생이고 맨 왼쪽이 김광석 무원고 교장이다. 사진제공 = 김광석 교장

“이재호 선생님은 그냥 수업만 한 것이 아니에요. 인생 전반에 대한 가르침을 주려고 노력한 분이었어요. 고양중·고가 종합고로 바뀐 후 배출한 제1회 졸업생이 저희 동기들이에요. 종합고로 바뀌기 전 농고의 실습시간이 으레 그렇겠지만 실습이 아니라 농촌 아이의 일상이었지요.  선생님께서는 교실 안에서의 공부도 중히 여겼었어요. 일종의 바람막이 역할도 해주셨어요. 거의 아버지 같은 존재였어요.”

김광석 교장은 두 해 전부터는 이재호 선생을 매주 뵙지 못하고 있다. 이재호 선생의 아들은 선생이 상처한 이후부터 줄곧 주중에 목욕을 시켜왔고, 스승은 제자가 힘들까봐 “이제 그만 와도 돼”라고 선을 그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정말 제가 목욕시켜드릴게요’라는 아들의 말에 더 이상 나서는 것이 주제 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김 교장에게도 나중에 매주 목욕을 시켜줄 수 있는 제자가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표정을 고치며 진지하게 말했다.

“아예 기대를 하지 않고 있죠. 우리의 학창시절에는 지역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형성된 끈끈한 유대감이나 정이란 게 분명히 있었어요. 지금은 인구유입으로 고양시가 팽창하면서 이러한 정서가 많이 희석됐죠.”

사제 간의 정이 표출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예순이 넘은 교장이 여든을 넘긴 스승을 목욕시키는 일을 매주 한다는 것은 세상에 흔치 않은 일이다. 세월 흐름에 따라 사제 간의 정도, 이를 표출하는 방식도 변하고 있는 마당에 ‘특별하다’고 할 정도다.

교직은 먼저 난 사람이 나중 난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다. ‘좋아한다’는 느낌에 더해 먼저 난 사람의 경지에는 다다를 수 없다는 ‘두려움’이 더해진 정서가 ‘존경’이다. 이 존경의 마음을 담아 김광석 교장은 말했다.

“이제 곧 스승의 날이 돌아옵니다. 스승의 날에 고양에 살며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과 함께 찾아 뵐 것입니다. 선생님이 참 좋아하시는 참외를 한 꾸러미도 준비해야겠죠. 저희들이 학창시절에 받은 걸 생각하면 제가 선생님에게 해드린 것은 극히 일부입니다.”

 

▲ 2012년 이재호 선생의 팔순잔치에 모인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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