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공간> 세계민속악기박물관

파주 헤이리에 자리한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의 외경.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이 관람객을 맞는다.

[고양신문] 세상에 존재하는 악기는 몇 종이나 될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시대와 지역, 문화권에 따라 수많은 악기들이 만들어지고 전해졌기 때문에 숫자를 세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더욱이 손으로 만드는 민속악기는 저마다의 유일무이한 고유성을 지닌다. 무궁무진한 민속악기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 파주 헤이리의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을 찾았다.   

세계 120개국 2000점 민속악기 소장

봄날 오후, 악기들의 천국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선 푸르른 나무들과 화사한 꽃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2003년에 문을 연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은 헤이리를 대표하는 문화 전시 공간 중 하나다. 박물관 덕분에 비로소 ‘민속악기’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의 문화 속에 전파되기 시작한 것.

박물관은 세계 120여 개 나라에서 수집한 2000여 점의 전통악기와 민속품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관은 중동과 이슬람사회, 동북아시아, 인도와 서남아시아, 아메리카 등 10개의 문화권별로 구분돼 있다. 각각의 문화권에 해당하는 악기들이 한 곳에 모여 있고, 문화권별 특징을 설명한 안내문과 이름표를 정리해놓아 지역별 특징과 문화적 매력을 한눈에 살필 수 있게 했다.

문화권별로 구분된 공간에 각 지역의 악기가 전시돼 있다.
전시된 악기들은 다양한 문화권의 환경과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악기는 무생물이지만,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소리를 내는 까닭에 많은 민족들이 악기를 마치 살아있는 인격체처럼 대우했다. 나아가 인간의 세계를 초월해 신과의 소통을 매개하는 신령스런 도구이기에, 악기를 만들 때 형태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런 이유로 잘 만든 악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대접받는다.

박물관에서 마주치는 악기들도 각양각색의 미적 감각을 뽐낸다. 특히 각각의 생물권에서 마주하는 여러 동물의 형상이 악기의 모양에 고스란히 반영된 모습들이 흥미롭다. 몽골의 초원에서 유목민들이 연주하는 ‘마두금’은 말 그대로 악기 머리 부분을 말 머리의 형상으로 만든 현악기다. 그런가 하면 기우제를 지내는 타악기는 개구리 형상으로, 아프리카 문화권의 하프는 악어의 모양으로 만들어져 생동감을 전한다. 악기의 재료 역시 아메리카 대륙의 아르마딜로 등가죽과 같이 지역의 생태권에서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소재들을 사용했기에 고스란히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다.

“악기는 인류문화의 다양성 들여다보는 창”

이영진 관장이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0여 년 전의 일이다. 기업체에서 일하며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드나들면서 각 민족마다 고유의 민속악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외국 서적 등을 탐독하며 각국의 악기에 대한 지식을 익혔다. 악기와 관련해 사 모은 원서만도 200여 권에 이른다. 이후 각국을 드나들며 부지런히 악기들을 모았다. 일부 제품은 골동품상이나 악기상이 아닌, 갤러리를 통해 구입해야 했다. 그만큼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민속악기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것을 연주하고 향유한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문화의 결정체라고 말한다. 태어나고, 자라고, 짝을 찾고, 삶을 마감하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통과의례의 과정에 음악과 노래가 함께 했고, 당연히 악기가 함께 했던 것. 개인사뿐 아니라 가족, 마을공동체, 지역과 국가, 민족의 문화에 악기가 함께 한다. 악기에 관련된 책만 모아도 따로 도서관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이영진 관장의 설명이다.

“가장 원초적인 문명이 태동하던 구석기 시대부터 악기는 인류와 함께 해 왔습니다. 시기적으로 모든 시대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 모든 지역에서 각각 역사와 문화에 걸맞는 악기들을 만들고 연주했으니까요.”

세계 각국을 다니며 민속악기를 수집해 박물관을 연 이영진 관장. 옆에 있는 마스크 역시 악기의 기능을 겸하는 수집품이다.

그는 인류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이 언어를 기준으로 분류한 6500여 개의 민족 중에 악기를 다루지 않는 민족은 단 7개뿐이라는 사실을 들려준다. 세계 여러 나라 중 민속악기의 자산이 가장 풍부한 나라는 어딜까? 정답은 인도다. 워낙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공존하는 인도는 자그마치 500여 종의 고유 민속악기가 전해온다고 한다. 더 놀라운 점은 그 악기들이 박물관이나 문화재로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각각의 문화권마다 일상속에서 연주되고 사용된다는 점이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 소장된 인도의 민속악기 숫자만 해도 100여 점에 이른다.

다양한 악기들을 꼼꼼히 살피다 보면 자연스레 악기를 통해 인류의 문화가 전래된 과정을 더듬게 된다. 터키 지역에서 연주되기 시작한 목관악기는 서양으로 넘어가선 오보에가 되고, 동아시아로 건너와 우리의 태평소가 됐다. 이렇듯 악기의 유사성을 서로 비교하며 살펴보는 것은 문화인류학적 영감을 흥미롭게 자극한다.

특별전시와 체험행사 수시로 열려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은 단순히 구경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생소하고 흥미로운 악기를 직접 두드려보며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아이를 동반한 부모가 먼저 악기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발휘해 길잡이를 해 주면 더 없이 좋을 듯. 그러한 매력 때문인지 한번 방문한 이들이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

박물관에서는 현재 ‘인형들의 오케스트라’ 특별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세계 각국의 악기를 연주하는 인형들만으로 별도의 전시 프로그램을 만든 것. 또한 이달 30일에는 중국의 전통 악기인 얼후의 공연을 감상하고, 연주법을 배우기도 하는 특별 강습 프로그램도 열 계획이다. 다양한 민속악기를 통해 소리와 연주 모습을 그려보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문화적 상상을 즐기는 곳.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은 낯설고도 설레는 여행으로 방문객을 초대한다. 

박물관에 진열된 악기의 일부는 직접 체험을 해 볼 수도 있다. 사진 속 악기 역시 두드려보며 독특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

관람시간 : 09:30 ~ 17:3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관람료 : 성인 5000원, 학생 4000원, 어린이 3000원
주소 :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63-26
문의 : 031-946-9838

■ 중국악기 초청공연 및 얼후 강습 : 5월 30일(수)

 

야산갈링. 불행하게 죽은 사람의 무릎뼈로 만든 관악기로서 라마교를 믿는 티베트와 몽골에서만 발견된다.
차라이나. 당나귀 턱뼈로 만든 페루의 악기. 손으로 탁 치면 이빨이 흔들리면서 소리를 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