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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마늘과 양파를 키우며 자연이 되다
  • 김한수 소설가
  • 승인 2017.05.23 15:33
  • 호수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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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마늘과 양파가 잘 자라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마늘과 양파를 보고 있으면 여간 흐뭇하지 않다. 마늘과 양파가 이만큼 자라기까지 공동체 회원들은 매일매일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을 끓이며 제발 마늘과 양파가 잘 자라주기를 간절히 하늘에 빌었다. 행여 재장바른 일이 생길까봐 다들 말을 아꼈지만 작년의 악몽은 꽤나 큰 충경으로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재작년에 우린 아홉 명으로 구성된 공동체를 꾸려서 양파 칠천오백 개와 마늘 사천오백 쪽을 심었다. 초겨울에 왕겨와 낙엽으로 보온작업을 해주면서 다들 풍작을 기원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고 이듬해 봄, 마늘과 양파는 일제히 싹을 내밀었다. 우린 새싹들이 잘 자라도록 낙엽을 걷어낸 뒤 겨우내 모아두었던 오줌과 술지게미를 섞어서 웃거름을 주며 행복해했다. 오월로 접어들면서 마늘과 양파는 무릎 위까지 껑충 자라서 장관을 이루었고, 다들 마늘과 양파를 두 팔이 빠지도록 들고 가는 상상을 해가며 신명나게 막걸리 잔을 돌렸다.

그러나 오월 중순으로 접어들 무렵 마늘과 양파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보였다. 잎 끝이 누렇게 타들어가면서 마늘과 양파 대가 맥없이 늘어지는 게 아닌가.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서 마늘과 양파를 뽑아봤더니 뿌리 위쪽 대 속에 구더기가 득시글거렸다. 말로만 듣던 고자리파리병이었다.

우린 부랴부랴 목초액을 구해서 마늘과 양파 밭에 진하게 뿌려주었다. 그러면서 고자리파리병이 최소한의 피해만 입히고 무사히 지나가주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수백 개의 마늘과 양파가 매일매일 죽어나갔다. 파란 물결이 넘실거렸던 마늘과 양파 밭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 황량해졌고, 결국 우리는 마늘 한 접과 양파 오십 개씩을 손에 나눠 들고 쓸쓸히 퇴장을 했다. 오 년간 마늘과 양파농사를 지어오면서 우린 해마다 풍작의 기쁨을 마음껏 누려왔었다. 그런데 이런 비극을 맞이하다니 참혹한 현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고자리파리병을 확인한 그 즉시 화학농약을 쳤더라면 마늘과 양파의 몰살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농약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하늘이 주시는 대로 먹자고 서로를 위로했다. 수확을 포기하더라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그 마음들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우린 쓰라린 속을 달래며 원인분석에 들어갔고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은 축분퇴비를 사용한 게 비극의 근본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뒤 축분퇴비 대신 서너 배가 비싸더라도 흙살림에서 만든 균배양체만을 거름으로 쓰자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가을이 되었고 우리는 균배양체를 밑거름으로 넣은 뒤 마늘과 양파농사를 지었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조마조마해하는 기색들이 역력했다. 농사를 끝내고 둘러앉은 술자리에서 우린 똑같은 피해가 되풀이 되는 한이 있어도 의연하게 흙을 살리는 일에 마음을 쓰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갔고 오월을 맞은 마늘과 양파는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파랗게 넘실거리며 무탈하게 잘 자라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마늘쫑이 일제히 머리를 내밀고, 양파는 수확을 해달라며 대가 푹푹 꺾일 것이다. 그럼 우리는 자연이 안겨준 수확의 기쁨에 왁자지껄 신명을 내가며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지 다시금 몸에 아로새기게 될 것이다.

김한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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