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미디어센터 G시네마 ‘고려아리랑: 천산의 디바’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의 역사
노래로 슬픔 쓰다듬은 두 여성 가수의 삶 조명
감각적인 노래와 영상 어우러진 다큐멘터리

작지만 소중한 영화들을 소개하고 있는 고양영상미디어센터의 작품 선정 안목은 늘 믿음직하다. 이번에는 관객들에게 고려인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초대장을 건넨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생존을 위해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이주해 온 이들은 스스로를 ‘고려인’이라고 불렀다. 고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동토의 땅을 일궈 어느 정도 정착을 이룰 무렵, ‘고려인은 일본의 앞잡이’라는 스탈린의 의심 때문에 1937년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강제 이주된다. 이주 초기에 어린이와 노인 등 이주자 25%가 사망했을 정도로 상황은 처참했다. 두 번의 쓰라린 이주의 상처를 달래 준 이들은 ‘고려극장’의 예술인들이었다. 그들은 고려인들이 사는 도시와 마을을 찾아다니며 민요를 부르고, 춘향전과 같은 고전 악극을 만들고, 춤과 연주를 들려주며 신산한 삶을 위무했다. 고려극장은 단순한 예술단이 아니라, 고려인들의 정체성과 동포애를 지켜 준 보루였다.

영화는 고려극장에서 활약했던 두 명의 전설적인 디바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첫 번째 인물은 고려극장 초대 춘향이로서 고려인 최초의 인민배우인 이함덕. 영화에선 올드팬들과 고려극장의 후배들의 입을 통해 고려인들의 자부심이었던 이함덕의 존재를 더듬어간다. 나이가 많은 이들의 기억속에서 소환된 이함덕은 타고난 예인이었으며, 사랑스런 외모와 훌륭한 인격을 가진 배우였다. 생존자들의 구술과 성실하게 수집된 자료 영상의 교차는 다큐멘터리의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
 

고려극장의 전설적인 디바 이함덕. 고려인 최초의 인민배우였던 그녀는 무대에서도 삶에서도 다른 이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두 번째 인물은 이함덕의 제자이자 1970~80년대의 최고 인기스타였던 방타마라. 그녀는 이함덕에게 배운 우리민족의 노래와 가락은 물론, 재즈와 러시아 민요 등 다방면의 음악들을 두루 소화하며 스케일 큰 무대를 만들어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함덕을 다룬 부분이 기억과 자료에 의존해 진행되는 반면, 생존 인물인 방타마라를 다룬 후반부는 민족사의 비극적 정조를 넘어, 노래에 삶을 내던진 한 여인의 매력적인 생애를 무척 흥미롭게 보여준다. 특히 딸들의 입을 통해 전성기 시절 엄마를 회상하는 장면, 레스토랑의 무명 가수로 살아가는 둘째딸과의 깊은 교감, 여전히 작은 교회에서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는 주인공 방타마라의 모습 등은 배경의 특수성을 넘어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응시할 때에만 비로소 얻어지는 보편적 감동을 만들어낸다.      
    

80~90년대 고려극장의 최고 인기 가수였던 방타마라의 젊은 시절 영상. 소박하고 평범한 현재의 모습이 영화의 감동을 더한다.


영화를 만든 김소영 감독은 평론과 연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몇 안 되는 창작자다. 특히 깊이 있고 독보적인 자신만의 여성주의적 시각을 작품과 평론 속에서 펼치고 있다. 2000년대부터 시작한 ‘여성 3부작’ 작업을 마친 그는 중앙아시아에 눈길을 돌려 ‘망명 3부작’을 순서대로 내 보이고 있는데, ‘고려아리랑’은 그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여성과 이주민이라는 그의 두 관심사가 이 영화 속에서 행복하게 만났다.

다큐멘터리이지만 실험적이면서도 섬세한 감독의 독특한 스타일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드넓고 황량한 중앙아시아와 연해주의 동토 이미지, 공동묘지, 쓸쓸한 물결 위로 노랫말이 흐르는 장면 등은 따뜻한 인간의 목소리로 꽁꽁 언 시절을 녹여낸 두 명의 디바들의 삶이 그러했듯, 쓸쓸하면서도 아름답다. 
 

고양영상미디어센터 G시네마
‘고려아리랑: 천산의 디바’

상영일 : 7월 1일까지 매주 금·토요일
상영시간 : 10:30 / 14:00 / 16:00
상영장소 :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영화관
관람료 : 성인 5000원, 노인·청소년·장애우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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