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호의 역사인물 기행

최재호 고봉역사문화연구소장

[고양신문]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도원수 권율(1537∼1599) 장군의 본관은 안동,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영의정을 지낸 권철의 아들로 강화도에서 태어나, 그의 나이 46세(선조 15년) 때 식년문과에 급제하였고, 55세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광주목사에 재수되면서 문관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명장의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다.

 오늘날 권율 장군하면 행주대첩의 영웅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행주대첩 이전의 활약상이나 전공(戰功) 등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임진왜란 초기 육지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는 상황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던 1592년 7월, 동복 현감 황진(黃進)과 함께 당시 금산군 이치(梨峙, 배고개)에서 왜군 2000여 명을 격파한 인물이 권율이다.

이치전투에서 승리한 공로로 전라도 관찰사 겸 순변사로 승차한 권율은 관군을 규합하여 순변사의 본영이 있는 광주(廣州)로 향하던 중 한양을 탈환하기 위해 남으로 내려오던 명나라 이여송(李如松)의 군사가 고양의 벽제관(碧蹄館) 전투에서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권율은 단독으로 한양을 탈환하기엔 역부족임을 깨닫고 수원에서 가까운 현재 오산시 지곶동의 독산산성(禿山山城)에 임시로 군사를 주둔시켰다.

독산산성은 사방을 관망 통제하기에 최적의 산성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양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들은 자신들의 보급로에 크게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남쪽에서 한양으로 오는 길은 부산, 대구, 수원을 거쳐 오는 길과, 바닷길로는 제물포(濟物浦, 인천)를 통해 한강으로 들어오는 뱃길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남해안 일대는 이순신 장군이 장악하고 있기에 보급선이 해로를 통해 들어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육로만은 반드시 확보하겠다는 절박감에서 왜군의 총사령관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는 휘하에서 가장 용맹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로 하여금 독산산성을 선제 공격하도록 하였다. 수적으로 우세한 왜군들이 산성을 포위한 채 조총을 쏘아대며 몇 차례 공격하여 보았지만, 사상자만 속출할 뿐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산위에 우물이 없다는 정보를 입수한 기요마사는 군사를 뒤로 물린 다음, 권율군사의 물과 양식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지연전술에 들어갔다.

기요마사는 조선군이 스스로 손을 들고 내려올 것을 기대하며, 부하에게 물 한 지게를 지어 산 위에 있는 권율에게 갖다 주게 하였다. 실제로 독산산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임이 분명하나 한 가지 흠은 샘이 없다는 것이다. 왜장이 물을 보내왔다는 보고를 받은 권율은 즉시, 왜적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말과 함께 쌀을 갖고 오게 하여, 말 등에 쌀을 끼얹게 하였다. 멀리서 보면 물로 말을 목욕시키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허장성세의 계책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왜장은 말을 목욕시킬 정도로 물이 많다면 승리를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 군사들에게 퇴각명령을 내렸다. 왜군들이 퇴각하자 권율은 그 뒤를 추격해 3000명을 죽이고, 그 여세를 몰아 행주산성으로 이동하여 행주대첩의 승리를 일구어 냈다. 왜군이 물러간 다음 선조는 이곳에 세마대(洗馬臺)라는 장대를 지어 독산산성의 전투를 기리게 하였다.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자녀들의 손을 잡고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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