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용 칼럼

호수공원의 메타세쿼이아길.
김윤용 『호수공원 나무 산책』저자

[고양신문] 저도 그이가 쓰는 방식대로, 그이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그이는 호수공원 옆에서 대부분의 글을 썼다고 합니다. 호수공원 잔디밭에 앉아 건너편 오피스텔 빌딩을 바라보며 와인 한 병의 행복한 혼술(?)을 즐기기도 합니다. 가끔은 김훈, 김중혁 소설가와 어울려 호수공원 어디선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이는 호수공원에서 마라톤을 즐깁니다. 항상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았는데, 언젠가 시계 방향으로 돌았더니 풍경이 훨씬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호수공원을 뛰기 위해 마라톤 타이즈를 입고 오피스텔 작업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툭 튀어나온 남성 상징 때문에 한 여성이 민망해서인지, 두려워서인지 탑승을 포기할 때도 있었나 봅니다.

그이는 저동초등학교 옆 닥밭공원 근처에 사는가 봅니다. 그곳에서 정발산을 넘어 아람누리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는 장면이 글 속에 나옵니다. 그이는 경북 김천 뉴욕제과점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카스테라 기레빠시(?)를 개 밥그릇에서 본 친구들이 개도 카스테라 빵을 먹을 정도이니 그이는 맛있는 빵을 엄청 먹을 거라고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호수공원 메타세쿼이아 산책길을 걷습니다. 그늘이 그리운 6월 초여름, 따갑고 따갑고 따갑기만 한 날카로운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를 걷습니다. 걷다가 그이가(아니 작품 속 시인이) 묻어 둔 메타세쿼이아 둥치 밑 편지를 찾습니다.

일산 구도시 고교에서 국어선생을 한 김희선 씨와 주인공 나는 만납니다. ‘메타세쿼이아 한 그루. 밤 열시의 산책. 호수 건너편 도시의 불빛 거기에 묻다.’ (아람누리)도서관 시 윤독 모임 ‘함시사’(함께 시를 읽는 사람들)에서요. 김희선 씨 제자인 시인은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다른 남자의 아내’입니다. 함께 도망치자고 말을 떼지 못하고, 두 사람이 걸어서 간 세상 끝은 호수 곁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한 그루였습니다. 아마도 그곳에 등을 기대고 슬프고 답답하고 막막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암으로 죽습니다. 시인은 죽기 전 우표를 잔뜩 붙인 편지를 메타세쿼이아 나무 밑에 묻고, 편지를 우체통에 넣어달라고 적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겉봉에 적힌 주소지는 메타세쿼이아가 있는 호수에서 걸어서 삼십 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호수공원 곳곳에 메타세쿼이아가 무리를 이루고 자라고 있습니다. 대개 두 줄로 심어 놓은 메타세쿼이아는 하늘 높이 곧게 자란 원뿔 모양 외모가 멋드러집니다. 두 줄로 길게 소실점을 드러내며 파란 하늘을 나무 너머로 드러내는 멋진 모습입니다.

메타세쿼이아는 은행나무와 함께 공룡시대부터 지금까지 살아 남은 화석식물입니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세쿼이아 나무와 많이 닮았지만 다른 종입니다. 세쿼이아 나무를 닮고 세쿼이아 이후에 발견되었다고 해서 메타를 붙였다고 합니다.

소나무 같은 바늘잎나무는 대개 상록성 나무인데 메타세쿼이아는 특이하게 바늘잎나무이면서도 잎이 집니다. 가을에 붉은기가 도는 짙은 갈색 단풍이 아름다워 풍치수나 가로수로도 많이 심습니다.

눈 밝은 이는 이미 눈치챘겠지만, 호수공원을 즐기는 그이는 소설가 김연수입니다. 그리고 그이가 쓴 단편소설『세계의 끝 여자친구』였습니다.
 

메타세쿼이아의 열매. 나무 크기에 비해 솔방울의 크기가 앙증맞을정도로 작다.
김연수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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