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 제작 다큐영화 ‘직지코드’ 개봉
직지와 구텐베르크 역사 미스터리 흥미롭게 추적
 


[고양신문]  독특한 소재와 논쟁적인 주제로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영화 ‘직지코드’가 관객들과 만난다. ‘부러진 화살’, ‘천안함 프로젝트’의 정지영 감독이 기획·제작한 영화 ‘직지코드’(감독 우광훈·데이빗 레드먼)는 금속활자로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책인 ‘직지’(직지심체요절, 이하 직지)를 매개로 동서양의 문화 교류의 미스터리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구텐베르크는 ‘라이프’지에서 선정한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가 1위’에 선정될 정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인쇄물보다 수십 년 먼저 인쇄된 고려시대의 직지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거의 없다. 영화는 이 차이가 서양문명 중심의 역사 프레임의 산물이 아닌지를 묻는다. 나아가 당대의 가장 앞선 인쇄문화를 보유하고 있던 고려의 금속활자기술이 교황청과 교류가 원활했던 원 제국을 사이에 두고 서유럽까지 건너간 것은 아닐까라는 가설을 추적한다.

화면속에는 고려의 직지와 서양금속활자와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제작진들의 악전고투가 고스란히 담겼다. 처음부터 험난한 여정을 예상했지만, 현실은 더 견고했다. 우선 직지를 보관하고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이해하기 힘든 이유를 들며 직지의 공개를 완강히 거부한다. 마치 직지가 공개되면 곤란한 봉인의 문서라도 되는 듯 시종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은 유럽의 중심국들이 서양문명 중심의 역사 프레임을 얼마나 견고하게 방어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난관은 오히려 다큐멘터리 장르의 활력이기도 하다. 제작진은 작은 단서도 집요하게 파고든다. 제작진이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등 유럽 5개국의 7개 도시를 누비며 수많은 고문서와 자료를 뒤지고,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하지만 봉인을 푸는 일에는 위험이 따르는 걸까. 중간에 녹화된 영상이 담긴 카메라와 노트북 하드드라이브를 몽땅 도난당하는 어마어마한 재난과 마주친다. 감독이 무릎이 꺾일 정도의 난국 앞에서 다시 심기일전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제작진의 투혼에 직지는 비밀의 베일을 아주 조금씩 열어준다.

영화가 ‘한민족의 문화적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한 국수주의적 시각에서 만들어졌으리란 의심은 떨쳐도 좋다. 영화의 아이디어를 처음 제공한 이는 영화의 공동 감독이자 출연자인 캐나다인 데이빗 레드먼이다. 우연히 직지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서양문명 중심의 세계사 프레임에 모종의 왜곡과 조작이 있음을 직감하고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레드먼과 함께 공동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명사랑 아네스는 어머니가 한국인인 혼혈인. 두 사람의 미묘한 시선의 차이 역시 ‘문화의 소통과 교류’라는 주제의 폭을 보다 넓혀준다. 시종 유쾌하고 도전적인 데이빗 레드먼과 진지하고 섬세한 명사랑 아네스의 캐릭터 차이도 영화의 흥미를 더하는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다.

영화는 고려 금속활자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이른바 ‘직지 코드’를 풀어내겠다는 처음의 의도를 성취했을까? 결론적으로 절반의 성공이다. 직지와 구텐베르크를 연결하는 다양한 가설들은 여전히 ‘가능성’으로만 남는다.

하지만 의외의 소득도 적잖다. 14세기 초에 가톨릭 교황이 고려의 왕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하기도 했고, 유럽 각국의 문화전문가들의 역사적 편향성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기도 했고, 여전히 들쳐봐야 할 사료들이 무궁무진한 숙제처럼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관객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던져 줄만한 사실은 ‘최초의 금속활자의 발명자는 구텐베르크’라는 명제를 뒷받침할 근거가 사실은 실체가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힌 점이다.

이렇듯 시선이 다채롭게 분열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관과 세계관이 확장되는 경험이야말로 두 시간의 숨가쁜 다큐멘터리를 관람한 관객들이 얻어가는 값진 보람이다. 28일 개봉.
 

시사회장에서 인사를 하고 있는 제작진. 왼쪽부터 감독 우광훈, 출연자 데이빗 레드먼, 제작자 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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