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전문 레크리에이션 노래강사 장두식씨

노래·기타·하모니카·마술 섭렵
경로당 돌며 즐거움 선사
봉사활동 경험 수필집도 펴내

점심시간이 지난 탄현 6단지 경로당. 삼삼오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았다. 할머니들은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장박사’를 기다리는 것이다. 장박사라 불리는 장두식(64세)씨는 목요일이면 강촌5단지와 탄현마을 경로당에서 노래봉사를 하고, 금요일에는 흰돌 4단지와 문촌2단지에서 노래교실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레크레이션 강사로 인생 이모작을 시작한 장두식씨는 봉사가 없는 날이면 더 멋진 레크레이션 강사가 되기 위해 노래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하모니카도 배우고 있다. 기타는 기본이고, 마술까지 배우고 있으니 그의 시계는 늘 바쁘다. 어느 것 하나 완전 고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는 끊임없이 배우고, 봉사활동하며 배운 것들을 세상에 펼치고 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는 말처럼 즐거워서 선택한 레크레이션 강사 일에 장씨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배우고, 봉사활동하며 배운 것들을세상에 펼치고 있다. 경로당 전문 레크레이션 노래강사 장두식(64세)씨는 노래·기타·하모니카에다 마술까지 섭렵한 엔터테이너다.

올해 초 장두식씨는 몇 년간의 레크레이션 봉사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필집 『노래하는 인생-장박사의 신바람 나는 이야기』를 출간했다. 이 책은 레크레이션 강사로 활동하며 지켜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에세이이면서 평생을 다사다난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담은 성장스토리다. 그래서 『노래하는 인생』에는 저자의 따뜻한 눈길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위로하고 소통하려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소통하며 봉사하는 삶의 중요함을 깨달은 저자의 감동이 독자들에게 전해진다.

장두식씨의 고향은 강원도 고성이다. 장씨는 “3살 때 서울로 이사온 이후 학교를 다녔고, 맹호부대에 입대해서는 그림솜씨가 좋아 군인극장의 간판을 그렸어요. 군대 제대 후에 종로3가에서 초상화 화실을 운영하다가 KBS 미술부 작화실에 입사해 근무하던 중 일본에 유화를 수출하는 사업을 하다가 큰 실패를 겪었습니다”라며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씨의 말에 따르면 그는 노점을 운영하며 수십 가지 상품을 판매하다가 그만두고 매일영어사의 학습지 영업사원으로 일하게 됐다. 성격 좋고, 판매경험 많은 그는 영업실적이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혼자서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많은 실적을 쌓았지만 회사는 운영난을 겪으면서 결국 문을 닫았다. 2002년부터 고양시에 정착했다는 장씨는 제2금융권에서 근무하며 환갑을 맞았고, 퇴직 후 레크레이션 강사로 뛰면서 인생 이모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장씨는 “제가 일곱살 때 동생과 함께 물에 빠졌을 때 당시 12살 위인 형이 저희 형제들을 구해줬어요. 죽을 뻔한 어린 생명들을 구해준 은인인데 인연이 되지 못해 성인이 된 이후 만나지 못했어요. 아마 살아계시면 70대 후반의 노인이 됐을 거예요. 제가 경로당을 찾을 때마다 그 형님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해요”라고 말했다.

장씨는 경로당 레크리에이션 봉사를 할 때나 노래수업 또는 공연을 할 때 우리 조상과 선배들이 즐겨 부르던 대중가요를 주로 선택한다. 우리 민족이 살아온 시대적 배경과 민족성에 잘 부합하는 주옥같은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래를 시작하기 전, 노래방 기계에 노래를 선택하고 “좋아요? 안 좋아요?, OK? 안 OK?”라고 학습하는 어르신들께 묻는다. 어르신들의 선택이 중요하기 때문이고, 어르신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소통하는 마음, 봉사하는 마음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장박사’ 장두식씨. 신바람 나게 노래하고, 서툴지만 한껏 손재주 부리며 어설픈 마술을 하며 어르신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의 삶은 64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너지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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