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하지가 지났다.

하지가 되면 조그만 텃밭을 일구는 도시농부들은 수확의 기쁨을 맘껏 누리게 된다. 고추를 비롯해서 토마토, 가지, 애호박, 오이, 참외까지 열매채소들을 매주 수확할 수 있다. 열매채소를 수확하는 즐거움은 잎채소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봄 농사의 절정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감자수확에 있다. 호미로 흙을 팔 때마다 감자가 줄줄이 쏟아져 나오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다들 입이 귀밑에 걸린다.

그리고 곧바로 장마가 시작된다.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만만해보이던 풀들이 무서운 기세로 자라기 시작한다. 장마철에는 텃밭에 열흘만 발길을 끊어도 풀들이 가슴 높이까지 자란다. 텃밭농사를 처음 짓기 시작한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다.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장마철이 되면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라고 탄식하며 주말농사를 포기한다. 낫 한 자루만 있으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데 경험이 없다보니 그냥 발길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장마철은 그야말로 풀들의 세상이다. 사람들은 풀을 이기기 위해 기나긴 세월동안 수많은 방법을 총동원해왔지만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싸움이었다. 풀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제초제는 월남전 때보다 열 배나 강해졌지만 제초제를 뿌리고 일주일만 지나면 풀들은 일제히 머리를 내민다.

텃밭농사를 잘 짓고 싶으면 풀과 싸울 생각을 버리고 자연이 일하는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연은 흙이 드러나 있으면 풀부터 키우기 시작한다. 사실 흙은 햇볕에 노출된 상태가 가장 안 좋다. 그래서 자연은 흙이 맨살을 드러내면 흙을 살리기 위해 정말 바쁘게 일하기 시작한다. 생명력이 가장 강한 풀들을 왕성하고 다양하게 키우는 것이다. 이 풀들은 아무리 뽑아내고 잘라내도 돌아서면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그렇게 풀들이 무성해져서 흙이 살아나기 시작하면 자연은 작은 나무들을 키운다. 이때부터 풀들은 조금씩 세력이 약해진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면 자연은 큰 나무들을 키운다. 즉 숲을 만드는 것이다. 숲이 조성되면 그토록 생명력이 강하던 풀들은 더 이상 맥을 못 춘다. 기름진 흙은 풀들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민들을 괴롭히는 풀들은 대부분 척박한 환경을 아주 좋아한다. 뿌리가 이웃집 구들장을 뚫고 올라온다는 쇠뜨기나 메꽃도 땅이 기름져지면 어느 날 문득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자연이 자신에게 맡긴 역할을 다 했기 때문이다.

유기농을 하던 어떤 농부는 어느 날 나팔꽃의 습격을 받았다. 나팔꽃은 무서운 기세로 텃밭을 점령해버렸고, 그 농부는 낙엽과 나무껍데기를 잘게 부순 조각들로 멀칭을 해가며 삼 년간 나팔꽃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그러던 어느 봄날 나팔꽃이 일제히 사라져버렸다.

풀들의 생리와 가치를 잘 알고 있었던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면서 농사를 지어왔다. 김을 맨다는 말은 풀을 자른다는 뜻이다. 즉 우리 조상들은 풀의 뿌리를 살려뒀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자연에 순응할 때 자연은 사람을 돌본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풀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기는 쉽지 않겠지만 자연이 일하는 방식을 우리가 이해하면 자연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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