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의견 수용 공사일정 전면 수정
석면 위험 노출된 에어컨 공사 막아
“허점 많은 석면 관리 철저히 감시할 것”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로 석면노출 피해로부터 어린이들을 지키고 있는 대곡초등학교 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들. 왼쪽부터 김희정, 정인영, 문성준(운영위원장), 임정희(학부모회장), 김지영씨.


[고양신문] 발암물질인 석면 자재의 위험성에 대해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부족한 현실에서 고양시 대곡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건물의 석면 자재에 대한 적극적인 모니터링에 나섰다. 대곡초등학교 운영위원회(위원장 문성준)와 학부모회(회장 임정희)는 석면 노출이 우려되는 시스템 에어컨 설치 공사를 석면자재 교체작업 이후로 연기하고, 불가피하게 진행되는 전기공사에 학부모 모니터링단을 운영해 안전성을 철저히 점검하기로 결정했다. 학교측도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용해 시공사측과 공사 연기 협상을 추진하는 등 석면 노출로부터 어린이들의 안전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석면이 1급 발암물질로 밝혀지며 석면이 포함된 건축자재 사용이 전면 금지된 것은 2007년부터다. 문제는 그 이전에 지어진 공공건물에 석면 자재가 흔하게 사용돼 지은 지 오래 된 학교 중 천장 마감재로 석면을 함유한 천장재를 사용한 곳이 적지 않은 것. 이에 따라 교육지원청은 석면 자재가 남아있는 학교들을 대상으로 순차적으로 교체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와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 석면 자재가 사용됐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곡초등학교 학부모들 역시 지난달 고양교육지원청의 석면 교체공사 일정조율 통보를 받고서야 비로소 석면 문제를 인식했다. 학교 건물 천장 마감재에 석면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대곡초 운영위원회는 뒤늦게나마 석면의 유해성에 대한 경각심을 공유하며 올해 겨울방학 기간을 이용해 석면자재 교체 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엄격한 절차에 의해 진행되는 석면자재 교체 공사는 평균 45일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돼 겨울방학 전후의 학사 일정의 조정도 불가피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불거졌다. 현재 대곡초는 기존 건물에 잇대어 교실 증축공사를 진행중인데, 증축공사와 맞물려 기존 건물의 전기승압공사와 시스템 에어컨 설비 공사가 여름방학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던 것. 전기와 에어컨 공사를 하려면 천장재 일부를 뜯어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해한 석면 성분이 배출될 것이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고려 없이 공사 일정이 결정된 것이다.

결국 공사가 무방비상태로 진행되도록 방치할 수 없었던 학부모들이 적극 대응에 나섰다. 석면의 위험성을 공부하고, 어린이들을 석면 노출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찾기로 했다. 규정을 살펴보니 허점이 많았다. 학교 전체의 석면자재 교체공사를 할 때는 사전 신고와 밀폐와 방진, 사후 청소와 잔류량 검사 등 엄격한 관리 절차를 따라야 하지만, 규모가 작은 부분 공사에선 이런 절차들이 의무 사항이 아니었던 것. 결국 증축공사를 하는 업체에서 석면노출 방지 규정을 허술하게 넘기며 승압공사와 에어컨 설치 공사를 강행할 것이라는 우려를 씻기 힘들었다.

이에 따라 학부모들은 학교 측에 기존 건물의 전기승압공사와 에어컨 공사를 올 겨울 천장 교체공사 이후로 미뤄 줄 것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측의 적극적인 노력도 보태졌다. 제품 입고까지 마무리 된 에어컨 설치공사를 업체와의 협상을 통해 천장 교체공사 이후로 미루기로 합의해 낸 것이다. 학부모위원 중 한 사람인 김지영씨는 어려운 결정을 진행해 준 학교측의 수고에 고마움을 표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공사 일정을 학부모들의 요청에 의해 전면 수정한 것은 타 학교라면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오랫동안 학부모와 학교가 신뢰를 쌓아 온 대곡초등학교만의 소통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학부모들과의 신뢰와 소통을 바탕으로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는 대곡초등학교 강경순 교장.


에어컨 설치공사는 미뤘지만, 전기승압공사는 증축건물의 승인과 맞물린 문제라 미룰 수 없었다. 결국 학부모들은 모니터링단을 구성해 승압공사를 진행할 때 석면자재를 원칙대로 취급하는지를 감시하기로 했다. 석면공사 모니터링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사전 준비도 꼼꼼히 챙기고 있다. 문성준 운영위원장은 “석면문제를 지속적으로 감시해 온 환경단체인 환경보건시민센터로부터 수시로 조언을 구하고 있다”면서 “이달 19일에는 센터를 찾아가 석면문제와 관련한 교육도 받고 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 위원장은 일련의 일을 겪으며 학교의 석면자재 문제를 관리하는 교육 행정의 허점과 모순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사와 관리감독 주체가 모호하기도 했고, 공사 규모에 따라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발견되기도 했다. 교육지원청이 학사일정을 전면 조정해야 하는 석면자재 교체 공사 협의를 6월이 되어서야 통보해 온 것도 불합리한 행정의 사례로 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합의와 학교측의 이해와 협조로 최소한의 요구사항들을 관철해 낸 것을 적잖은 수확으로 자평했다.

“대곡초등학교의 사례가 타 학교에도 선례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도 학교 현장 어디선가 아무런 고민 없이 석면자재를 뜯어내고 공사를 벌이고 있을 텐데, 교육당국의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이를 촉구하기 위해서는 석면의 위험성에 대한 학교와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요구가 있어야 하구요.”
 

지어진 지 오래된 학교의 천장 마감재로 널리 사용된 석면이 함유된 천장재.
대곡초등학교 전경. 기존 건물 왼편으로 교실 증축 공사가 진행중이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