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규진 교수, 귀가쫑긋에서 ‘다산 정약용, 상식으로 혁명하다’ 강의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에서 '다산 정약용, 상식으로 혁명하다'를 강의 중인 함규진 교수

[고양신문] “시대가 변해도 장소가 바뀌어도 지켜야만 할 것, 항상 변하지 않고 우리가 받들고 되새겨야 할 것이 ‘상식(common sense)’입니다. 상식과 원칙이 바로 서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상식적인가요?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한 삶을 사는 사회를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난 7일 저녁,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학과 교수가 고양시 대표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에서 ‘다산 정약용, 상식으로 혁명하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그는 정치사상을 전공하고 정약용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정약용 정치사상의 재조명』, 『영조와 네 개의 죽음』 등 다수의 책을 썼다.

함 교수는 상식과 원칙이 실종된 현상은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양반들은 백성이 군주보다 귀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들 자신은 돈과 권력에 집착했고 민생은 외면했다는 것. 권력은 소수 사람들이 독점하고 대부분의 백성은 노예처럼 살았고, 학자들은 이기론과 명분론에만 빠져 백성들의 삶을 구제하는 학문을 등한시했다고 설명했다.

비상식은 또 다른 비상식을 낳는다. 함 교수는 이런 비상식을 바로 잡기 위해 혁명 혹은 개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라고 강조했다. 사회를 뒤엎어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상식'에 대해 설명 중인 함규진 교수와 강의를 듣고 있는 귀가쫑긋 회원들

먼저 함 교수는 ‘어떻게 상식으로 혁명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신화나 전설에 부정적이었던 다산의 자연에 대한 상식론과 정치사회에 대한 생각을 설명했다. 다산은 사실을 좋아하고, 신기하고 기묘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매우 싫어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헛소리이므로, 사실과 진실만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왕의 조상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신적인 사람이어서 복종해야 한다는 신화적인 생각은 모두 헛소리다. 백성한테 왕을 뽑을 권리도 있고 갈아치울 권리도 있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생각을 펼친 다산은 “머리로 만들어 낸 것은 학문이 아니”라며 “선비는 지적 유희가 아니라 사회에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 비료나 토지 개선 연구가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사회에 대한 다산의 상식론은 어떤가? 임 교수는 다산이 “급진적인 개혁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이기도 했지만, 말년에 쓴 『목민심서』나 『상서고훈』, 『경세유표』 등을 통해서는 왕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면서 “이로 인해 ‘다산이 말한 혁명은 독재자를 만들기 위한 혁명인가’라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함 교수는 다산의 학문적 진정성에 대한 일관된 신뢰를 드러냈다. “다산은 자신의 책을 정말로 아꼈던 사람이에요. 그는 자식들에게도 ‘죽은 다음에 내 제사를 지내지 말아라. 그 대신 그 시간에 내 책 한 줄을 더 읽어라. 그러면 호화로운 제사를 지낼 때보다 지하에서 더 감격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만약 다산이 자신의 젊었을 때의 주장을 후회했다면 말년에 책에서 그 내용들을 다 빼버렸을 텐데 다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단다. 결국 그의 젊어서의 진보적 생각도 말년의 독재적인 사고도 모두 다산의 사상이었으므로 그의 책을 합쳐서 봐야한다는 것이 함 교수의 설명이다.
 

다산 정약용이 경제, 정치, 교육을 통해 주장한 '상식으로 혁명하자'를 설명 중인 함규진 교수

또한 함 교수에 따르면, 다산은 사람 마음에는 항상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이라는 상반된 두 의지가 있어서 이것이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인성론을 주장했다. 사람 마음에서 이것이 항상 싸우는 데 어느 쪽이 이기는지 빈도와 정도에 따라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된다는 것. 그러므로 도심이 많이 나오는 대인배가 되게 만들어서 평균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다산의 주장은 이렇다.

“상식으로 혁명을 만들어 내면 가능하다. 경제를 기반으로, 정치를 통해, 또한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기반이 갖춰지고 확보될 때 도와 예, 공동체에 대한 생각, 도심이 나올 수 있다. 대부분의 토지가 아주 소수에게 주어져 있고, 많은 백성들이 소작인으로 힘들게 사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를 정전제와 여전제를 통해 뒤엎어서 백성들이 먹고 살기에 충분한 물적인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그 다음 정치적 구조를 바꿔야 한다. 선량하고 정의감 있는 왕(군주)에게 권력을 집중해 주는 정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후 교육을 통해 가족과 국가와 사회, 세계와 자연까지도 생각할 줄 아는 인성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다산이 주장한 평등하고 공정한 정전제는 시행할 수 있었을까? 이상적이지만 지주들의 반대 때문에 실제로 실시하기는 불가능했다. 해서 다산은 여전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공동농장을 운영하되 열심히 한 사람은 소출을 많이 가져간다는 것이 여전제의 개념이다.

“위에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의 택리(宅里)가 고르게 되고, 전지(田地)가 고르게 되며 백성들의 빈부(貧富)가 고르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바쁘게 왕래하게 될 것”이라고 다산은 저서『전론』 마지막에 썼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제도를 시행을 해 본 적은 없다고 함 교수는 설명했다.

함 교수는 다산의 혁명론이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는 의미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보완 내지 대안을 연구하는 실마리가 된다”며 “제도개혁에는 현실성과 문화조건 고려가, 도덕성 회복에는 실천의지와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제도개혁이 의식개혁이며, 도덕성을 회복하고자 개혁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마무리했다. 이날 강의는 다산이 꿈꿨던 ‘상식이 바로 선 사회’는 어떤 사회였는지, 오늘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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