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남 소설가

[고양신문] 며칠 전 한국과 미국의 두 정상이 워싱턴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첫 번째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에 두 정상이 북핵문제를 비롯해 사드 배치와 통일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기를 기대했지만 발표된 회담 내용은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미국은 FTA 재협상과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자국의 이익을 위한 보호주의를 우선시했다. 그러면서도 강국의 면모를 잃지 않으려는 듯 대북 제재를 가한다는 명목으로 전날 단둥의 모 은행과의 거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미국의 입장인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기회로 통일 문제에 대해 그동안 너무 많은 시간을 그들에게 의지해왔음을 스스로 뒤돌아볼 때가 되었음을 자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난 6월 고양포럼에서 초청한 노정선 교수가 제시한 통일정책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의 주장은 대략 이랬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면 대화와 교류를 할 수있다는 문 대통령의 제안은 잘못되었다는 것으로, 단서를 달지 말고 조건 없는 대화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통일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해결보다 민간교류를 활성화시켜 경제통일부터 선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강론이 특별했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던 것을 원론적으로 다시 한 번 주지시킨 것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제시하는 구체적 방법론 때문이었다. 개성공단 부활 문제는 당연하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우리가 주장했던 것 같은 그냥 퍼주는 식의 경제 지원이 아니라 물물교환 등을 통해 서로가 상생하면서 자존심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은 새롭다고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휴전협정에 공동구역으로 명시되어 있는 ‘조강’에 남북이 공동으로 물물교환 장터를 개설하자는 제안은 앞으로 그 방법을 구체화시켜 추진할 필요까지 느끼게 했다.

그렇다.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분단을 책임져야 할 당사국은 다름 아닌 미국과 지금의 러시아다. 그리고 그들을 간접적으로 도운 나라 또한 중국과 일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도 분단된 우리를 향해 오히려 통일을 위한답시고 사사건건 간섭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에게 이끌려 6자 회담 등 실기를 거듭하며 67년의 긴 시간을 허송세월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 그 긴 세월 동안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은 사면초가에 빠지고 말았다. 물론 이는 빗나간 사회주의 체제와 3대 세습에서 비롯된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입장을 자각한 북한이 항복을 강요하는 강대국 세력에 맞서서 자위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는 북한 주장이다)이 핵무기 개발이라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특히 지금도 핵무기를 개발하여 수시로 시험 발사하고 위협을 가한다는 것은 분명 세계 질서와 평화를 저해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막을 수 있다면 막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제재와 압박만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그보다는 무엇 때문에 그들이 그것을 개발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과 처지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도 방법이 되지 않을까. 옷을 벗으라고 무작정 압박할 게 아니라 스스로 벗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비핵화를 담보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겠다는 발표는 단지 명분을 쌓기 위한 허울일 뿐, 처음부터 그 목적의 진실성이 배제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보면 베를린 선언도 결국은 획기적인 정책발표가 아니라고 본다. 정말 통일을 위해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상대의 모든 조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같은 눈높이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진솔함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통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요원한 게 아니다. 통일의 주체는 우리말고 그 누구도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변국의 응원과 훈수는 필요할지 몰라도 통일은 우리, 즉 남과 북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의 통일을 외세에 의존하겠다는 사고를 가진 무리들이 있다면 이는 바로 통일을 저해하는 적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아직까지 그런 구태의연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구 정치권의 위정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이는 하루 속히 청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새롭게 탄생된 문재인 정부가 서둘러야 할 통일작업의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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