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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추구하는 가치가 살아있고 이야기가 쌓이는 ‘사람의 마을’ 꿈꾸자
  • 이성오 기자
  • 승인 2017.07.18 14:07
  • 호수 1330
  • 댓글 0
김훈 작가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고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지역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줬다.


고양신문 28주년 기념, 제59회 고양포럼 특별기획
‘인간의 미래 고양의 미래,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고양신문] 고양신문은 창간 28주년을 맞아 ‘인간의 미래와 지역의 미래’를 생각해보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인간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를 고민하고 이 가치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의 미래를 준비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다. 59번째 고양포럼을 겸한 이 자리에는 고양에 살고 있는 문화계 거장인 김훈 작가와 정지영 감독, 고양 곳곳에서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는 다양한 공동체의 대표자들이 참여했다.

첫 이야기를 꺼낸 김훈 작가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고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지역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주었다. ‘고양군지’와 ‘일산신도시발굴보고서’ 등 고양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이미 섭렵한 작가는 그냥 유명한 한 이웃이 아니었다. 고양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공부하고 이해하고 고민하는 ‘깊고 따뜻한 이웃’ 이었다.

동네에서 불을 끄다 죽은 일산소방서 소방관들의 삶을 아프게 품고 있었고, 장항습지를 찾는 새들을 반갑게 맞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동네 음식점 사장과 알바 청년을 보며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이 약자와 약자의 싸움이 되지 않아야 함을 깊이 걱정하고 있었다. 작가는 일산은 ‘뜨내기들의 도시’ 라고 차갑게 말을 던졌지만, 사실 ‘뜨내기들의 마을이 되지 않도록 발버둥 쳐야 한다’는 소리로 들렸다. 김훈 작가의 생각을 먼저 정리하고, 정지영 감독과 공동체 대표들의 이야기를 고루 담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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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신문 창간 28주년 기념 포럼이 지난 4일 일산동구청 대회의실에서 160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고양의 역사는 600년 아닌 20년
20년 전에 서울에서 일산동구 정발산동으로 이사 왔다. 그땐 정발산동이 허허벌판이었다. 몇 년 사이 평평한 땅 위에 수직의 건물들이 들어섰다. 신도시 건설 20년 만에 고양은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가 됐다. 한 지역의 인구가 이렇게 급격히 늘어난 것은 역사상 매우 희귀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고양의 자랑이 아닌 비극이다. 여러 문제들이 이때 생겨났다.
고양은 신도시 이후 새로운 지역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고양의 지명을 사용한 지 600년 됐다고 하지만 사실 고양의 역사는 20년이다. 지금은 원주민들이 떠난 뜨내기들의 마을이 됐다.
 

공동체 기반은 공동의 가치와 규범
고양시가 지역공동체로서 사람 사는 동네가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기반이 필요한데, 그 기반이 바로 ‘공동이 추구하는 가치와 규범’이다. 각자의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것을 조정할 수 있는 권위가 있어야 하고, 시민들은 그 권위에 승복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최고의 공동체는 국가라고 볼 수 있다, 국가는 헌법이라는 가치와 규범을 기초로 만들어진 공동체다. 


인간의 삶은 상호 의존적이어야
인간의 삶은 상호 의존적이어야지 적대적이면 안 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고, 어려우면 서로 도와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것이 공동의 가치와 규범이 돼야 하고 그것을 다수가 따라야 공동체라 할 수 있다. 라페스타(일산 상업지역)를 지나다 보면 사람들끼리의 갈등이 여러 번 목격된다. 작은 일로 가게 주인들끼리 싸운다. 이런 사소한 욕망의 충돌을 자율적으로 조정해가야 한다. 공동의 가치와 규범이 아닌 행정기관의 권위에 매번 맡겨야 일이 해결된다면 공동체가 살아있는 동네라 할 수 없다. 사소한 일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공동체가 아니다.


호수공원에 순직 소방관 흉상 만들고 기억하자
고양이란 도시가 ‘사람 사는 동네인가’ 생각해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순직 소방관이다. 신도시 이후 불을 끄다 순직한 소방관이 3명 있다. 나는 이런 분들의 흉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동네 소방관이 동네에 난 불을 끄다가 죽은 것이다. 이런 분들이 기억돼야 이곳이 사람 사는 동네가 된다. 호수공원에 우리를 위해 희생한 사람의 석상을 만들어 기억해야 한다. 호수공원에는 정체 모를 벌거벗은 서양 여자의 석상도 있더라. 호수공원에 순직 소방관의 흉상과 작은 무덤을 만들어 표석을 세우면, 여기가 뜨내기들만의 동네가 아니라는 것을 시민들도 알게 될 것이다.
 

김훈 작가를 바라보는 토론자들.


신도시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마을의 역사가 있었다
신도시 개발 직전 방대한 분량의 ‘고양군지’가 발행됐고, 신도시가 개발되면서는 단국대 발굴팀이 훌륭한 보고서를 냈다. 민속학적으로 아주 값진 책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중이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이런 책들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작은 책으로 만들어 고양지역 학교에 보급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과 시민들이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과거에 어떤 동네였는지를 알 수 있었으면 한다. 이런 책을 만들고 보급하고 읽는 것이 마을의 스토리를 쌓아가는 초석이 된다.  
 

행주치마의 가치 신라왕관보다 크다
고양시에는 역사적 유산도 많다. 그중 가장 중요하지만 빠뜨리고 있는 것이 행주치마다. 행주대첩과 권율 장군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다. 행주대첩은 부녀자들이 돌을 날라서 그 돌로 싸워 이긴 싸움이다. 일본과는 종군위안부와 같이 한 많은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주치마와 같은 역동적인 민초들의 역사도 있다. 행주치마에 담긴 역사적 함유 가치는 신라 왕관보다 뛰어나다. 그런데 고양시는 그것을 사장시켜놓고 있다. 치마로 돌을 나르는 모습을 부조로 만들고 행주치마를 디자인해 보급하는 등 충분히 브랜드화 할 수 있다. 행주치마를 기념하는 놀이를 만들어 지역 축제 때 해보는 것도 좋겠다.
 

한강 하류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봉홧불 재연 가능
행주산성 안 덕양산 꼭대기에는 봉화대가 있어 봉홧불을 올렸다. 과거엔 오두산과 고봉산을 거쳐 행주산성의 봉화가 강을 거슬러 서울의 남산까지 이어졌을 거다. 봉수길은 대동여지도에 나와 있다. 난 이 지역 시군들이 힘을 합쳐 봉화를 재연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파주에서 올려라, 그럼 우리가 받아서 서울로 보내겠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8·15 행사 때 한강 하구의 봉화를 올리면 의미가 클 것이다. 연기를 대신해 레이저를 쏠 수도 있다. 북한 황해도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소중한 고려유적 공양왕릉, 최영장군묘 쓸쓸
고양에는 자랑할 만한 고려유적이 있다. 공양왕릉과 최영장군묘가 그것이다. 고려 유적은 남한에는 남아있는 게 별로 없어 정말 귀한 것들이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려 역사와 함께 사라진 인물들이라 조선시대 500년 동안 묘를 돌보지 않았다. 지금도 방치되기는 마찬가지다. 공양왕릉도 최영장군묘도 너무 허술하고 쓸쓸하다. 행정가들은 유적을 돌보고, 역사가들과 지역 교육자들이 함께 지역의 역사유산으로 잘 활용했으면 한다.
 

일산문화공원에서 소설가 김훈. 김 작가는 고양포럼 이후 추가 인터뷰에 응했다.



북한산과 한강 잇는 창릉천, 생태하천으로 살려내야
고양시 정체성을 대표할 만한 상징물로는 북한산과 한강이 있다. 그리고 북한산과 한강을 창릉천이 이어주고 있다. 북한산의 봉우리인 인수봉, 노적봉, 백운대, 의상봉이 다 고양에 속해 있다. 이 봉들의 능선을 이용해 로고로 만들 수도 있다. 이 봉우리들이 우리의 표상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북한산 계곡물이 흘러 한강으로 가는 창릉천도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 창릉천을 어떻게 해서든 살려야 한다. 울산은 태화강을 살려내면서 공업도시로서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울은 홍제천을 살려냈다. 이들 하천에 비교한다면 창릉천을 살리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행주에 어부들이 남아있다는 것은 신나는 일
북한산 계곡물이 창릉천으로 흘러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 옆에서 한강과 만난다. 북한산 물줄기가 한강과 만나는 그곳 행주에 한강 내수면 거의 가장 마지막에 있는 어촌이 있다.
지금도 행주어촌에는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들이 있다. 이곳에서 우리 민족은 수천 년 동안 고기를 잡아왔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수질오염 때문인지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존폐위기에 있다. 대도시 옆에 수천 년 역사의 어촌마을과 어부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참 신나는 일이다. 이곳 어민들이 사라지면 큰일이다.



장항습지에 새들 찾아오면 환영식 해주자
정발산과 고봉산에는 물줄기가 하나도 없다. 도시를 개발하면서 모든 물줄기를 끊어버렸다. 인공적인 물줄기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장항습지엔 새들이 많이 찾아온다. 만주 시베리아에서 매년 같은 무리의 새떼가 장항습지를 찾는다고 한다. 고양의 장항습지가 각인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특별한 새들이다. 새들이 장항습지를 찾아올 때 환영식을 해줬으면 좋겠다. 떠날 때는 환송식도 해주고. 새들이 오는 것을 반기는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 신문에도 크게 쓰고.
 

고양을 고향으로 만들 규범과 가치 필요
우리가 함께 고양에 살게 됐으니 이제는 고양을 고향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역공동체를 위한 규범과 가치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 규범과 가치를 공유해야만 지역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눈에 보이는 어떤 상징을 만들면 쉬울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낡은 것이 된다. 동네의 축적된 이야기를 통해 공유할 수 있는 규범과 가치가 만들어질 때 진짜 사람 사는 동네가 되고 도시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규범을 통해 이해관계의 충돌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규범과 가치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 위급에 처했을 때 돕는 것처럼 선의적이고 단순한 것이다. 소방차와 응급차가 출동할 때 길을 터주는 것도 중요한 규범과 가치일 수 있다. 뜨내기들의 도시가 될 수도 있는 고양에서 더불어 사는 길을 찾고 있는 다양한 생활공동체들이 외연을 확장하고, 교회나 사찰 등 종교단체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김훈 작가는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1년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 2007년 『남한산성』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올해 장편소설 『공터에서』를 출간했다. 수필집으로는 『밥벌이의 지겨움』, 『라면을 끓이며』 등이 있다. 고양시 정발산동에 살고 있다.

※김훈 작가는 4일 진행된 고양포럼 이후 추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포럼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면에서는 포럼 내용과 인터뷰 내용을 같이 정리했다.

 

 

이성오 기자  rainer4u@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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