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자 한겨레 국제면에 실린 로이터통신의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8일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며 벌인 시위를 담은 이 사진의 캡션은 ‘워싱턴의 텅 빈 탄두들’이었다. 시위대의 피켓에는 “빈 탄두들이 워싱턴에서 발견되다” 쯤으로 해석될법한 영문(英文)과 ‘머리가 텅 빈’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사진이 희화적(戱畵的)으로 배치돼 있었다.

‘진짜 스모킹 건(物證)’이란 부제(副題)와 함께. 어림짐작으로 읽어보면 유엔 무기 사찰단이 이라크에서 찾아낸 화학탄두 미사일에는 탄두가 부착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과 “사담 후세인이 세계평화에 위협적인 존재라는 ‘물증’을 대라”는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세르반테스도 웃겠다
유엔 무기 사찰단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조사 결과 의혹을 살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고 이라크가 핵활동을 한 적이 없으며 알사무드2 미사일 파기는 실질적인 무장해제라는 보고서를 안보리에 제출했음에도, 미국과 영국은 안보리에 17일을 최종 시한으로 못박은 ‘이라크 결의 수정안’을 7일 안보리에 제출함으로써 사실상 이라크와 유엔에 대해 최후통첩을 했다. 안보리의 결의 없이도 미국과 영국만으로도 이라크에 대한 ‘성전’을 개시하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수정안에 스페인이 가세하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평소 필자는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계획 등에 전폭적인 지지를 나타내고 있는 영국 블레어 총리의 언동을 지켜보면서 엉뚱하게도 세르반테스의 ‘라만차의 기사 돈 키호테’에 나오는 돈 키호테와 산초 판자를 연상하곤 했다. 그러던 판에 부시와 블레어의 ‘2인무(二人舞)’에 세르반테스의 나라 스페인까지 끼어 들었으니, 필자가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으려니와 세르반테스도 무덤 속에서 웃을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전쟁은 비아냥거리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비극이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계획에 항의하는 전세계 지성인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2월 20일 ‘미국은 이라크 침공계획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냈다. “미국은 대 테러전을 한다며 전체 인구의 절반이 14세 미만의 어린이들인 이라크에 대해 전쟁을 시작하려 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테러를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적 행동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과 함께.

한국기자협회의 ‘반전 성명’과 상관없이 몇몇 방송 신문 통신사 기자들이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특파돼 날로 전운(戰雲)이 높아가는 현지 상황을 전하고 있다. 전쟁 자체가 좋아서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는 없을 것이다. 범세계적인 반전 여론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일단 벌어지게 되면 전쟁의 대의(大義)와는 상관없이 취재·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언론의 비극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쟁을 취재 보도하는 기자의 임무는 전쟁의 ‘반인류성(反人類性)’을 고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이 지구상에서 전쟁을 없애는 데 있다.

현재 현지에 특파된 한국기자들 가운데 일부는 미 국방부가 주관하는 ‘종군기자 프로그램’에 소속돼 각각 미군 단위부대에 배치돼 있다. 문자 그대로 ‘종군기자’인 셈이다. 그래서 일까. 미군 부대에 배치된 ‘종군기자’들의 보도 태도가 벌써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나치게 미국쪽에 편향돼 있다는 것이다. 침공군에 배치된 종군기자의 한계일 수밖에 없는 데 기자 개개인들이 각자 고민해야 할 과제다.

종군기자 임무는 ‘전쟁 고발’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기자들의 안전문제다. 월남전 때 종군기자는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는 게 고작이었지만, 이번에는 탄저균과 홍역 예방주사를 맞고 방독면까지 갖고 다녀야 한다. 게다가 일단 최일선에서 활동하다보면 군인들과 똑같은 위험에 노출된다. 포로가 됐을 때에 대비해서 종군기자들에게는 ‘비전투원(非戰鬪員)’임을 알려주는 인식표를 제공한다지만 그 인식표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미디어오늘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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