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용 『호수공원 나무 산책』 저자.

[고양신문] 나무가 쓰러졌습니다. 돌풍에 쓰러진 나무는 삼백 살 나이를 먹은 배나무 트리스탕입니다. 트리스탕은 루이 15세 이후 마녀 사냥, 프랑스 혁명, 드레퓌스 사건 등 프랑스 역사와 함께한 나무였습니다.

의사인 조르주 란 박사는 오랫동안 보살폈던 트리스탕을 ‘프랑스의 주목할 만한 나무’ 대기 명단에 등록합니다. 자폐아인 소녀 마농이 이사를 옵니다. 마농은 배나무 트리스탕을 친구이자 아빠로 생각합니다.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던 마농은 죽은 트리스탕 몸으로 조각을 합니다. 마농이 형상화한 조각상 속에서 트리스탕은 다시 태어납니다. 조각상에 깃든 배나무 트리스탕의 의식은 마농과 마농의 의붓아버지가 된 란 박사, 트리스탕 이야기를 쓰고 있는 젊은 작가 야니스와 무언의 소통을 합니다.

성장해 유명한 조각가가 된 마농은 트리스탄(트리스탕의 여성형)으로 개명합니다. 예술가로서 한계를 느낀 트리스탄은 아마존 밀림으로 떠납니다. 벌목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트리스탄은 아마존 밀림에 갔다가 그곳에 살고 있는 원시부족과 함께 살아갑니다. 트리스탄과 작가 야니스의 사랑 속에서 잉태한 아들 토에는 밀림 속에서 태어납니다. 트리스탄은 나무를 벌목하려는 사람들과 맞서다 불도저에 깔려 죽고, 토에는 원시부족의 샤먼, 환경운동가, 학자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칠십 년 전 어린 마농이 뱉은’ 씨앗 속에서 트리스탕은 다시 태어납니다.

공쿠르 상 수상작가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가 쓴 장편소설 『어느 나무의 일기』 줄거리입니다. 호수공원에서 자라는 이백 살 회화나무를 볼 때마다 항상 떠올리는 소설입니다.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니 이백 살이 훌쩍 넘었겠지요. 아마도 배나무 트리스탕처럼 호수공원 회화나무도 한국 근현대사를 온전히 지켜봤을 것입니다. 한때는 습지였을 땅, 논밭이었을 풍경, 경의선 철도가 지나면서부터는 멀리서나마 증기열차도 보았을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도 지켜봤을 것이고,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호수공원 담장 너머로 대형 교회 첨탑과 그 위 십자가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고, 라페스타 언저리에서 들려오는 밤의 향락객들을 외면하듯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꽃이 드문 여름철 회화나무 연노랑 꽃들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배롱나무와 함께 무더운 여름에 무더기로 오랫동안 꽃이 폈다가 지기를 반복하는 회화나무. 가지가 자유분방하게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갑니다. 그래서 학자수(學者樹)라고도 합니다. 공교롭게 서양 이름도 스칼라 트리(scholar tree)입니다. 회화나무를 중국에서는 괴목(槐木), 꽃을 괴화(槐花)라고 한답니다. ‘괴’를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회’여서 회화나무란 이름이 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호수공원 여러 곳에 회화나무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습니다. 일산 지역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 놓았습니다. 잎은 어긋나게 달리고 깃꼴겹잎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잎이 아까시나무와 닮아서 아까시나무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열매는 작은 염주를 꿰어놓은 콩꼬투리모양처럼 생겼습니다. 콩과 잎떨어지는 큰키나무로 분류합니다.

<사진제공=김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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