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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음악의 아름다운 하모니이인숙의 공연평론 '국립현대무용단 제전악-장미의 잔상'
  • 이인숙 무용평론가
  • 승인 2017.08.0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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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제전악 장미의 잔상. 안성수 예술감독장의 첫 신작이다. 현대 국악과 춤의 조화가 실 짜기처럼 촘촘하다.

안성수 예술감독장의 첫 신작
지난 연말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장으로 부임한 안성수의 첫 신작인 '제전악-장미의 잔상' (7월 28~30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이 마침내 막을 열었다. 개막 전에 이미 수차례의 리허설을 공개했지만 정식 무대에서 전체 작품을 보는 맛은 연습실에서 보는 리허설과는 달랐다. 막이 올라가기 전, 어두운 무대의 높은 단 위에 앉은 다섯 명의 연주자들에게 조명이 비치고 그들이 연주하는 단조롭게 반복되는 가야금 소리와 함께 간간이 끼어드는 장구와 피리 소리는 흡입력이 대단했다. 춤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리면서 무대에 몰입시키는 힘이 있었다. 
무대가 밝아지고 무용수들의 춤이 시작된 이후에도 막이 내릴 때까지 음악과 춤의 어우러짐은 탁월했다. 안성수 감독과 라예송 작곡가의 협업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었다. 라예송은 개량 국악기를 쓰지 않고 전통 악기만 고집했다.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미니멀한 음악은 안성수의 미세하게 짜여진 춤동작과 하나가 되어, 현대무용과 전통악기로만 구성된 국악 연주의 결합이라는 낯선 조합이 전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이미 서로의 춤과 음악에 팬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었다. 
다섯 명의 연주자들은 한 사람이 3개 이상의 악기를 연주한다. 장구와 해금,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징, 그 밖의 타악기들을 그때그때 바꿔가며 연주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이들의 음악과 함께하는 무용수들의 춤은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몸짓과 소리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하모니였다. 뛰어난 국악 현대음악과 함께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현대무용 신작의 탄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곡가 라예송과 실짜기처럼 협업
'제전악-장미의 잔상'은 안성수의 전작인 '장미'(2009년 초연)와 '혼합'(2016년 초연)의 확장으로 기획한 작품이지만, 그 바탕에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있었다. 2009년 작 '장미'를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맞춰 안무했던 안성수는 이번 작품에서 '봄의 제전'을 국악기로 편곡해 흥겨운 축제의 춤판을 벌이고 싶었다. 그러나 안성수의 2009년 작 '장미'에 큰 영감을 받았던 작곡가 라예송은 안성수에게 새로운 제전 음악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작곡과 안무의 과정을 함께했다. 
음악이 나오면 안무가는 동작과 장면 하나하나를 만들어가고 작곡자는 연습실에서 춤추는 무용수들을 보면서 영감을 얻어 다음 곡을 작업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음악과 춤은 ‘고치고 바꾸고 버리고 다시 쓰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꼼꼼하게 완성시켜 나갔다고 한다. 그 과정이 마치 씨실과 날실이 얽히면서 피륙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았다고 해 안성수는 이를 “실짜기 같다”라고 표현한다. 하나의 춤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서는 참 독특한 작업이다. 이미 만들어진 음악에 맞춰 안무가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안성수는 남다른 이 과정이 자신에게 ‘호강’이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협업은 음악과 춤의 가장 이상적인 동행을 보여준다.

전통 국악기에 실려 아름다운 몸짓을 보여주는 무용수들, 이들 중에는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전공자들이 모두 섞여 있다. 안성수에게 중요한 것은 장르적 분별이 아니라 그 모두를 통한 아름다움의 창조인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이 한국춤과 서양무용의 해체와 조립을 실험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관객들은 많은 춤동작들이 상체는 한국춤의 춤사위를, 하체는 서양무용의 스텝을 주로 쓰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가 한국춤인지, 서양무용인지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발생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춤의 이질적인 몸짓을 해체하고 조립하는 탐구와 실험의 과정에서 미세하게 쪼개진 몸짓들을 초단위로 섬세하게 조합한 춤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남을 뿐이다. 무용수들의 몸짓을 보면 때로는 어떻게 저런 동작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팔을 위로 올려 회전하는 동작에서 무용수들의 팔에는 손목과 팔꿈치 사이에 다른 마디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두 팔의 빠른 회전이 지극히 유연하고 아름답다. 대단한 속도감을 자아내는 춤동작을 아름답게 소화해낸 무용수들의 열정이 놀랍다. '제전악-장미의 잔상'에 섬세한 아름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섬세하지만 강렬한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역동적인 춤이 많았다. 자주 등장하는 군무뿐만 아니라 이인무나 그 밖의 다름 춤에서도 섬세함과 함께 역동적인 힘이 느껴진다.
 


숱한 사건과 사고 이겨낸 우리를 위한 축제
안성수는 “2009년의 '장미(봄의 제전)'는 땅과 여성을 예찬하는 굿이었고, 2013년의 '단'은 기원제였으며, 2016년에 만든 '혼합'은 가장 슬펐던 진혼제”였다고 한다. 그러나 신작 '제전-장미의 잔상'은 굿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작품이며, “많은 사건과 사고를 잘 이겨낸 우리를 위한 축제”라고 말한다. 이러한 축제를 위해서 그는 단군신화부터 신라의 서동요, 조선의 유랑광대 등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한다. 거기에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사의 춤인 ‘하카’, 스페인의 플라멩코에서도 영감을 받았다고 하니 그의 신작은 국악과 현대무용의 혼합, 한국춤과 서양무용의 혼합을 넘어 한국의 문화적 전통과 이국의 전통의 혼합까지 아우른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에는 군무가 자주 등장한다. 부족국가 시대 전사들의 힘찬 군무, 축제의 군무, 화합의 군무, 강인한 여성 전사들의 군무도 있다. 남성 혹은 여성 무용수들의 군무는 힘차고 아름답다. 역동적이면서도 손끝 하나, 호흡 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함은 무용수들의 기량을 보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관객을 매혹하는 힘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리라. 그러나 때로는 잦은 군무가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각각의 군무는 세세한 동작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개별적인 이미지의 다름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을 노래하는 최수진과 성창용의 아름다운 이인무도 조금만 힘을 빼고 좀 더 서정적이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해본다. 선화공주가 서동을 안고 잔다는 노래를 퍼뜨려 여인을 쟁취한 서동의 계략도 안무로 표현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러한 디테일까지 안무로 살리기에는 작품이 안고 있는 시공간이 너무 넓다.

자연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먼 과거로부터 부족국가 시대,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운 삼국시대의 사랑이야기와 전사들의 춤, 단군신화의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의 대립, 미래의 번성을 위한 춤판 등, '제전악-장미의 잔상'은 먼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공존이라는 광폭의 공간과 시간을 60분이라는 공연 시간에 담고 있다. 그러다보니 각각의 모티브는 단편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전체적인 구성이 성기게 된다. 안무가의 의도가 “스토리텔링이 아닌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좀 더 촘촘한 구성으로 각각의 이미지가 결합됐으면 하는 바람은 안무가의 의도를 무시한 지나친 욕심일까.

신녀들의 오고무는 전통적인 오고무와 달리 리듬의 변화와 함께 하얗게 칠한 북과 검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의 흑백 조화가 담백하면서도 화려하다. 그것은 외양적인 화려함이 아닌 무용수들의 몸짓의 화려함이다. 담담하게 북을 울리다가 문득 아름답고 화사한 몸짓을 보여주는 신녀들의 춤사위는 유혹적이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린 산조의 가락으로, 북과 함께 혹은 따로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몸짓은 관객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리라.

부분적인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제전악-장미의 잔상'은 60분이라는 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르게 몰입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안성수는 이번 작품이 굿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는데 다음에는 어떤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인숙 무용평론가  webmaster@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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