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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글씨에 쏟은 정, 이웃에게까지 번져가네서예공모전에 6명 전원 입상한, 행신동 햇빛마을24단지 서예반
  • 이성오 기자
  • 승인 2017.08.11 19:02
  • 호수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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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강진옥, 정미자, 김옥자, 최규형, 변해광, 전재덕(강사), 이규만, 김원달 회원. ‘2017 대한민국 향토문화미술대전’에는 김옥자(추사체), 강영일·강진옥(해서체), 변해광·정미자·최규형(전서체)씨가 입상했다.


20년 인사 안하다가 이제야 절친
자식 못 오게 하고 붓글씨에 전념


[고양신문] 노령화 시대에 접어든 요즘 아파트단지 내 어르신 소모임이 활성화 되면서 주민 화합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햇빛마을24단지에는 작년 10월부터 서예반 소모임이 결성됐다. 총 13명이 활동하는 서예반에서 막내는 66세, 최연장자는 82세다. ‘한자 붓글씨’하면 남성들의 전유물이란 생각이 많지만 이곳엔 여성 3명이 참여하고 있다.

햇빛마을24단지 서예반은 이번에 큰 경사가 났다. 서예 공모전에 참여한 회원 6명이 전원 입상(특선)하게 된 것. 지난 8일 ‘대한민국 향토문화미술대전’은 홈페이지에 최종 입상자를 발표했는데, 그곳에 서예반 회원 6명의 이름이 올랐다.

서예를 정식으로 배운 지 1년이 채 안 되는 회원들임에도 출품작 전체가 입상한 것에 많은 주민들이 환호를 보냈다. 관리소장은 곧바로 단지 입구에 입상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걸었고, 회원들은 플래카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햇빛마을 서예반은 외부 전문강사를 가끔 초청하긴 하지만 평소에는 주민 중 한 명인 김원달씨에게 지도를 받는다. 한문서예1급 자격증을 보유한 김씨는 “이번 공모전에 참가자 전원이 수상하게 된 것은 순전히 서예를 즐기며 열심히 준비한 동료회원들 스스로의 노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예반 회원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소모임 장소로 오후 2시 출근, 6시 퇴근이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불문율처럼 이것을 지키고 있다. 매일같이 만나서 조용히 먹을 갈고 글씨를 쓰면서 서로를 천천히 알아갔다. 이렇게 1년 동안 쌓은 동료들과의 정과 붓글씨와의 정은 이제 가족 간의 정도 뛰어넘을 정도가 돼버렸단다.
 

강진옥씨가 붓글씨 연습에 열중이다.


여성회원인 정미자씨는 공모전을 앞두고 집에서도 새벽 2~3시까지 글을 쓰곤 했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출품하고 싶어서였고, 동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싶은 마음도 컸다. 정씨는 “지난달에는 주말에 자식들도 못 오게 하고 붓을 잡았다”며 웃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남편이 나가면, 혼자 집에서 TV를 보면서 지냈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시간을 붓글씨를 쓰며 보내서인지 전기요금마저 확 줄었더라고요.”

이곳 단지는 노년층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 입주 20년 된 초기 입주민들이다. 하지만 회원들은 지금까지 얼굴도 모르고 지나쳐온 이웃들이 이렇게 정 많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고 한다.

총무를 맡고 있는 변해광씨는 “얼굴은 어렴풋이 알아도 서로 인사도 안하고 지나치기 일쑤잖아요. 아파트 생활이란 게 참 그런 것인데, 노년층이 많은 우리 같은 단지에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들끼리 소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전에 없던 생기가 돌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변씨의 말대로 회원들은 하나같이 웃는 얼굴이다. 은퇴 이후, 또는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무료한 시간의 대부분을 아파트 단지에서 보내는 노년층에게 서예반과 같은 소모임은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됐다.

외부 전문강사로 서예반을 가끔 찾는다는 전재덕씨는 “이곳 회원들은 자체적으로 붓글씨를 쓴 지 1년도 안됐지만, 전문가에게 2~3년 배운 사람들만큼이나 실력이 뛰어나다”며 “한자 하나하나를 정성을 다해 쓰다보면, 좋은 글에 담긴 뜻을 곱씹기도 하고 많은 한자를 습득하게 돼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회원 중 나이가 가장 많은 김옥자(82세)씨는 “노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은 늘었지만 마땅한 즐길거리가 없었다”며 “지금은 스스로 모임을 만들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취미를 즐기다보니, 성취감이 생기고 사는 맛도 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젊을 적 배우지 못했던 것을 나이 들어 동료들과 함께 아파트단지 내에서 배우니 체력적인 부담도 없다”며 “각 단지에서 소모임을 결성해 활동해보기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현재 햇빛마을24단지에는 서예반과 함께 바둑반, 기타배우기, 전통춤 등의 소모임이 나이 60대 이상 회원들을 주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성오 기자  rainer4u@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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