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영상미디어센터 G시네마, 9월 2일까지 상영

우연한 만남으로 이어지는 다섯 개의 에피소드
관계의 밀도 섬세하게 그려낸 젊은 날의 스케치

 

독립영화의 재미와 개성을 담은 영화 '여자들'이 어울림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사진은 영화의 첫 에피소드 '낮은 여름이고, 밤은 가을이다'에 등장하는 최시형(남자 주인공)과 전여빈.


[고양신문] 독립영화의 미덕을 듬뿍 담은 한 편의 영화가 찾아왔다. 고양영상미디어센터는 다양성영화 개봉작 프로그램 G시네마를 통해 다음달 2일까지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영화관에서 서울독립영화제와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에 특별 초청된 화제작 ‘여자들’(감독 이상덕)을 상영한다. 상업영화의 문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스토리 전개, 신인 배우들의 상큼 발랄한 연기, 만든 이의 개성이 묻어나는 감각적인 영상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작품을 감상한 뒷맛이 삼삼하다. 우연히 찾아간 낯선 골목에서 나만의 맛집을 찾아낸 기분이랄까.

낯설고도 참신한 이야기 전개

영화는 일반적인 극영화가 구축하는 스토리라인의 틀을 따라가지 않는다.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젊은 작가’라는 주인공 캐릭터를 툭 던져 놓고, 그가 만나는 다섯 명의 여자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스케치하듯 담아낸다. 주인공 시형은 재주는 있지만 아직 자신의 작품을 한 번도 완성하지 못한 예비작가다. 자부심과 열등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내면을 지닌 시형 곁으로 마치 계절이 흐르듯 다섯 명의 여자들이 스쳐 지나간다. 다섯 개의 만남은 모두 우연에 기대고 있지만 각각 기대감, 아쉬움, 주저함, 일탈, 정직함 등 서로 다른 색깔의 ‘어떤 날’로 주인공의 마음에 각인된다. (※ 앞의 단어들은 영화를 감상하고 난 기자가 주관적으로 뽑아낸 것들이고 영화는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은유적인 문장의 소제목들을 달고 전개된다.)

언뜻 맥락을 알 수 없는 대화, 습관처럼 이어지는 음주와 흡연, 관계가 전개될 만하면 끝나버리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쌓이면서 스토리는 오리무중이 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낯설음이야말로 이 작품을 만든 의도로 보인다. 감독은 일반 관객들이 기대하는 기승전결의 이야기가 오히려 허구이며, 우연한 만남의 현장에서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에 담긴 은밀한 밀당, 그리고 미묘한 긴장 그 자체에 관계의 실체가 숨어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듯하다.
 

두 번째 에피소드 '풀코스와 디저트'는 우연히 마주친 대학 후배와의 만남을 그렸다. 후배 역으로 등장하는 채서진은 영화배우 김옥빈의 동생이다.


신인 연기자들의 매력 한꺼번에 만나는 재미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다섯 명 여배우들의 개성을 비교해 보는 재미는 이 영화가 건네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유명 배우는 없지만 서로 다른 매력을 품은 독립영화계의 기대주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으니 요즘 말로 가성비 으뜸이다. 장진 사단의 떠오르는 신예 전여빈은 고양이를 찾다가 우연히 주인공의 옥탑방이 있는 옥상에 들르는 여자 역을, 김옥빈 동생으로 알려진 채서진은 맑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대학 후배를 연기한다. 가장 성숙하고 지적이면서도 직설적인 캐릭터인 서점 주인 역은 원조 ‘홍대 여신’으로 불리는 인디뮤지션 요조가 맡아 에피소드의 중앙에서 영화의 무게감에 방점을 찍어준다. 다수의 독립영화와 CF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신예 유이든은 작가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는 솔직하고 발랄한 여성으로 등장해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마지막 오키나와 해변마을에서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전소니 역시 독특한 개성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남자 주인공 ‘시형’ 역을 맡은 연기자는 누굴까? ‘다섯은 너무 많아’로 주목을 받은 연기자이자 ‘서울연애’, ‘농담’ 등을 직접 연출한 독립영화감독 최시형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찾는 ‘작가로서의 순수한 내면’과, 마주치는 모든 여자들과 일종의 ‘썸’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젊은 남자의 본능’이라는 두 얼굴을 지닌 양면적 캐릭터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에게 공감이 가면서도 괜히 얄미워지기도 했다고 말해준다면 아마도 그는 속으로 ‘성공이야!’라며 뿌듯해하지 않을까.
 

마지막 에피소드 ' 이게 다예요'는 일본 오키나와의 한적한 해변 마을을 무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행에서 마주친 여자 역의 전소니가 독특한 매력을 선보인다.


일상 속 아름다움 더듬는 감각적 영상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또 하나의 매력은 소박하면서도 감성 돋는 화면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마음의 결을 섬세하게 담아내려는 영화의 시선은 평범한 풍경을 밀도 있게 포착해내는 감성적인 영상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감독은 화면 하나 하나를 예쁘게 찍기 위해 매 순간 고민을 많이 한 듯하다. 그 수고의 마음이 관객에게도 따뜻하게 전달된다. 현란하거나 화려한 연출 효과를 억지스럽게 의도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옥탑방 옥상에서 바라보는 변두리 마을 풍경, 단조로운 작가의 방, 골목에서 마주칠 듯한 평범한 서점과 카페가 카메라의 영민한 선택에 의해 가장 근사한 색감과 구도를 드러낸다.

영상미학의 일관성은 마지막 오키나와해변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에서도 이어진다. 이왕 오키나와까지 갔으니 이국적 풍광을 원없이 담아내려는 욕심을 부려볼 만도 했을 텐데, 그저 투명한 바다와 백사장, 그리고 시간이 정체된 듯한 해안 마을의 공간들을 아주 차분하고 담담하게 담아낸다. 호들갑 없이도 관객들의 안구를 호강시켜주는 재주는 칭찬 받아 마땅하리라. 주의할 점, 영화를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와 밀당하며 썸 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질지도 모른다.
 

영화는 곳곳에서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준다. 주인공의 셔츠와 여객선 갑판의 의자, 오키나와의 바다 색이 멋지게 어우러지는 한 장면.

 

고양영상미디어센터 G시네마
'여자들‘

감독 : 이상덕
출연 : 최시형, 전여빈, 채서진, 요조, 유이든, 전소니
상영일 : 9월 2일까지 (25·26일 돗자리 영화제 상영으로 제외)
상영시간 : 매주 금·토 10:30, 14:00, 16:10
장소 :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영화관
관람료 : 성인 5000원, 청소년ㆍ어르신ㆍ장애인 3000원
문의 : 031-814-8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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