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만 인권운동가

[고양신문] 육군대장과 그 부인에 의한 ‘공관병 학대 사건’이 알려진 후 국민적 분노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후 매일같이 쏟아지는 새로운 추가 사실로 인해 군 내부의 부끄러운 면모가 여과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육군 대장의 아들이 공군으로 복무 중 휴가를 나올 때 그 뒷수발 역시 같은 또래인 공관병에게 시켰다는 대목에서는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누구의 자식은 귀한 대접을 받고, 누구의 자식은 노예같이 살았다는 것이 너무도 화가 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국민적 분노에 ‘더 큰 불길을 당긴 것은’ 다름아닌 육군 대장의 부인이 군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면서 내놓은 해명입니다. 기자들이 “공관병들을 괴롭혔다는 그동안 혐의에 대해 인정하냐”며 묻자 육군 대장의 부인은 “아들 같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했지만, 그들에게 상처가 됐다면 그 형제나 부모님께 죄송합니다”라고 답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함께 분노했습니다. 육군 대장의 부인은 사과한다며 쓴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바로 그 “아들 같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했지만… ”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떠오른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난 5월에 제가 제작한 연극 ‘이등병의 엄마’ 중 한 대목입니다. 연극을 보러 오신 많은 관객 분들이 ‘오열을 참지 못하는 명장면’입니다. 군 복무중 사망하여 다시 그 아들들을 돌려 받지 못한 유족들의 사연을 담은 이 연극은 이후 대통령 부인이신 김정숙 여사님도 함께 관람해 주시면서 큰 이슈가 되었는데, 그때 여사님도 끝내 참지 못하고 오열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연극 말미, ‘군 내 가혹행위 및 구타로 아들을 잃게된’ 엄마가 진실 규명을 외치며 국방부 철문 앞에서 목숨을 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싸움이었습니다.

그렇게 단식 농성 십수일이 넘어가면서 정신이 혼미해 진 엄마에게 어느 날 죽은 아들의 영혼이 찾아왔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아들이 엄마를 찾아왔으니 그 심정은 말해 무엇할까요? 바로 그때 아들이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에게 꼭 부탁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는 겁니다. 그러자 엄마는 이내 눈물을 닦고 아들에게 바짝 다가 앉으며 “부탁? 뭔데. 어서 말해봐. 이 엄마가 뭐든지 다 들어줄게”라고 합니다. 죽은 아들이 찾아와 부탁이 있다는데 그 엄마가 무엇을 못 들어 줄까요? 그러자 아들은 울며 이랬습니다. “엄마, 죽지마세요. 대신 살아서 저같은 군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주세요. 엄마.” 이 말에 무너지는 엄마. 그리고 엄마와 아들은 끌어안고 함께 오열합니다.

육군 대장의 부인 말에 제가 분노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아들 같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했지만…’이라는데 세상 어느 천지의 엄마가  먹던 물을 아들의 얼굴에 뿌리고, 전과 썩은 과일을 던집니까? 어느 엄마가 아들의 손목에 호출기를 채우고 온갖 학대와 비난의 말을 던집니까? 그런데도 육군 대장의 부인은 제대로 된 반성은 고사하고 진실을 교묘하게 왜곡하려고 합니다.

의무복무를 위해 군에 입대하는 이들은 결코 죄인이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더 귀하고 가치있게 우리나라가 예우해야할 ‘또 하나의 애국자’입니다. 전쟁이 나면 육군 대장은 결코 전선의 최전방에 달려 나가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가라는 명령만 내릴 뿐 죽음의 전선으로 달려나갈 이들은 바로 이 나라 의무복무 군인입니다. 그들이 있기에 육군 대장의 영예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휘할 병력이 없는데 무슨 대장입니까? 그런 귀한 사병을 무시하고 그 인권을 유린한다면 우리는 절대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가해자들의 진정어린 반성과 더불어 합당한 처벌이 함께 하기를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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