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 이야기(3) - 정범구 전 국회의원

<당신은 어떤 시민인가>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어떤 시민’에게 다가가는 시간. 세 번째 만난 이는 사회학자 정범구씨다. 한때 TV 방송토론 진행자로 전국적 인지도를 자랑했으며, 고양에서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과거의 명성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듯 최근 들어 크고 작은 모임에서 이웃들과 소탈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친근한 얼굴로 우리 곁에 돌아온 그가 살아온 이야기와 최근의 관심사를 진솔하게 들려줬다.

‘사회’에서 ‘개인’으로 관심의 대상 이동
국회의원 시절 인간성에 대한 성찰 기회 얻어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과 고민 놓지 못 해”

 


어린 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집으로 배달된 동아일보를 꽤 열심히 읽었다. 당시만 해도 신문에 한자가 절반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생각해도 대견하다(일동 웃음). 어쨌든 성인이 되어 정치까지 하게 되었으니 내 삶에서 ‘사회’에 대한 의식과 관심은 줄곧 이어져 온 셈이다.

나의 사회적 관심의 뿌리가 어디에서 온 것일까를 생각하면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충북 음성의 빈농이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가출해 서울과 만주를 떠돌다가 일본까지 건너가셨다. 그 곳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고 해방이 된 후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여전히 기댈 곳이 없어 이런 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미군부대 군속 자리를 잡아 그 일을 오래 했다. 변변한 학식 없이 몸뚱이 하나로 격랑의 시대를 헤쳐 온 아버지와 나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할 때 갈등이 심했다. 대화가 안 통하고 사사건건 대립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기껏 대학 보내 놓으니 주둥이만 살아서 떠든다”고 윽박지르곤 했던 아버지는 아마도 배운 자식에 대한 콤플렉스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다.

내 사회의식의 뿌리는 어디일까.

그렇다면 내 사회의식은 어머니 쪽에서 영향을 받은 걸까? 경기도 용인 출신인 어머니는 전주이씨 가문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았던 분이다. 아마도 그것 밖에는 변변히 내세울 게 없었기 때문이었던 듯한데, 아들인 내가 보기에도 좀 우스웠다. 일본에서 여학교를 다니셨다는 얘긴 들었는데 졸업을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어머니는 사회 문제에 비교적 비판적이고 기가 드센 분이셨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직접적으로 나에게 사회의식을 심어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어려서부터 사회와 세상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대학 정치학과에 진학하고, 독일로 유학도 가게 됐다. 내가 좀 있어 보이는 인물이라(일동 웃음) 처음 독일에 갔을 때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집안이 잘 나가서 유학을 온 게 아닌가 하는 오해도 받았다. 사실은 국제적인 개신교 조직을 통해 독일 개신교단의 장학금을 받아 유학 기회를 얻은 것이다. 처음에는 3년 정도 머물며 공부를 마칠 계획이었는데, 독일 땅을 밟은 지 20일 만에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이어서 12·12와 5·18 민주항쟁이 연이어 터졌다. 그러다보니 독일 마부르크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도 본의 아니게 긴 시간 독일에 눌러 앉게 됐다.

숲을 살피는 데 바빠 나무에 눈길 주지 못해

11년 만에 돌아와 대학 시간강사, 대기업 연구소 연구원 등을 하다가 1994년 우연히 방송 토론 진행자로 발탁이 돼 CBS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을 6년간 진행했다. 1997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가 맞붙었던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역사상 처음 열린 ‘대통령 후보 TV 합동토론회’의 사회를 맡아 지명도를 높였고, 자연스레 현실 정치인으로 발을 들여놓게 됐다. 이후 16대 총선은 고양에서, 18대는 충북 음성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을 지냈다.

돌아보면 나는 오래도록 개개인의 ‘사람’보다는 집단으로서의 ‘공동체’를 보는 데 익숙했다. 숲을 살피는 데 바빠 숲을 이루는 나무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볼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각 사람 개인이 누구인가보다는 그 사람이 소속된 집단이 어디인가, 그 사람은 이 사회에서 어떤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게 더 자연스러웠다. 어쩌면 개인에 앞서 국가로 대표되는 공동체를 먼저 사고하도록 강요해온 우리나라 교육의 영향을 나도 모르게 받은 것 같다.

정치 경험하며 인간성의 적나라한 밑바닥 목도

그런데 나이를 먹으며 어느 시점부터 숲보다는 개개인의 사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한 회의와 함께 시작된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게 된 시점은 현실정치에 몸을 담으면서부터다. 16대 때 처음 고양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이 됐는데, 지금과 마찬가지로 이런 저런 문제로 여당과 야당의 대립이 치열했다. 거기에 더해 변화를 둘러싸고 당 내부의 갈등도 첨예했다. 그러다보니 동료 국회의원들의 여러 가지 행태를 적나라하게 목도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권에 발을 들이기 전 사회에 있을 때는 하나같이 인격적이고 존경받던 인사들이었는데 권력과 권력, 이해관계와 이해관계가 맞부딪치는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인간성을 표출하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내 편과 니 편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도 한다는 사실이었다. 보통 사회에서는 특정인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신뢰가 깨지면 아무래도 멀리하거나 서로 안 보고 살게 된다. 그런데 정치판은 뒤통수에 비수를 꽂으며 배신을 하고도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허허 웃으며 손을 잡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인간의 이중성이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공간이 있을까.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인간이 지극히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 자신의 조그만 이해관계 때문에 인간성이 팽개쳐지는 모습은 사실 아주 작은 권력을 다투는 곳에서도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곤 한다.

최근에도 재밌는 체험을 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들이 모이는 헌정회라는 모임이 있다. 국회의원 동기들이 꼭 한번 얼굴 보자고 연락이 와서 한번 나가 보니, 현역 시절 죽일 듯 살릴 듯 주먹질까지 했던 여 야의 강성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선한 양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금배지 하나 믿고 그렇게 까불고, 그렇게 비굴해졌던 것인가 생각하니 인간이 참 우스운 존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의 참 얼굴은 무엇일까.

2012년부터 현실정치를 떠나 5년 정도 자유인으로 살아오며, 개인의 문제를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참 얼굴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나의 참 얼굴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반복해서 곱씹게 된다. 돌아보니 국회의원을 하던 시절에 아내와 사이가 안 좋았다. 사람(person)이라는 단어가 그리스어로 가면이라는 뜻의 ‘페르소나(persona)’에서 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여러 개의 가면을 번갈아 쓰며 각기 다른 역할을 하며 사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사회활동에 집착하는 남자들은 그만큼 더 많은 가면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을 하는 시절에는 바깥에서의 가면 놀음에 너무 지쳐서 집에 들어오며 남편과 아버지 가면을 갈아 쓰는 게 피곤해지더라. 집에서만이라도 가면을 좀 방기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내가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사는데, 과연 어떤 게 나의 참 모습일까. 레마르크의 소설 『리스본의 밤』은 한 사람 안에 얼마나 많은 인격이 들어있는가를 질문한다. 가면을 다 벗겨낸 내 얼굴은 과연 무엇일까. 맨얼굴로도 나는 정녕 나다울 수 있나. 사회적인 옷과 계급장을 다 떼고 맨몸뚱이로 섰을 때 나는 과연 당당할 수 있을까. 남들에게 알려진 내 이름을 다 떼어내고 나면 내가 남들에게 어떤 빛을 보여줄 수 있을까…. 질문은 연이어 이어진다.

어린 시절 ‘소년 정범구’가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을까. 사라졌다면 내 속의 소년은 언제쯤 사라진 걸까. 어릴 적까지 갈 것 없이 20~3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사실 가장 곤혹스러운 모임 중 하나가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다. 하나같이 꼰대들이 된 중년들이 모여 추억과 우정을 외치며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나는 1971년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10대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존재인지 대답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도 오래 전 추억이라는 공통분모 하나를 붙들고 만남을 즐거워하는 게 어딘지 기형적으로 보인다. 그러니 동창회에 가면 괜히 술만 많이 마시게 된다.

인간의 실존적 선택의 이유 여전히 궁금해.

요즘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를 다시 꺼내 읽으며 박경리 선생이 참 위대한 소설가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간 군상 한명 한명을 어쩌면 그렇게 생동감 있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100년 전 인물들이 마치 주변에 살아있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100% 선한 이도, 100% 악한 이도 없다. 영웅도 나름대로의 약점과 결점을 지니고, 악인도 나름대로의 인간미를 품고 있다. 모두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연약한 군상들일 뿐이다.

다시 처음 던졌던 의문으로 돌아가 보자.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왜 똑같은 조건에서도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실존적 선택을 하는가? 같은 일제의 압박 하에서 누구는 만주군관학교에 가 긴 칼을 차고, 누구는 독립운동을 하는 의병이 되는 걸까. 민주화의 갈림길에서 누구는 독재의 앞잡이가 되고, 누구는 민주주의의 제단에 목숨을 바치는가. 판단이 갈라지는 지점이 과연 뭘까. 나는 여전히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고 있다.
 

한달에 한 번, 한 사람의 시민을 주인공 삼아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시민모임'을 함께 하는 이들과 함께. 사진 왼쪽부터 안재성 고양시향토문화보존회장, 정범구 전 국회의원, 윤주한 통일을 이루는 사람들 대표, 서은택 행주산성지역발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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