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3절(松都三絶)로 이름을 떨친 황진이(黃眞伊)의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조선 중종·명종연간에 활동했던 인물로 본명은 진랑(眞娘)이고 기명은 명월(明月)이다. 개성의 황씨 성을 가진 진사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자신을 짝사랑하던 동네 총각의 죽음을 보고 기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빼어난 용모에 시, 서는 물론 학문적 지식까지 두루 갖춘 그녀는 대제학을 지낸 소세양, 부운거사 김경원 등 수많은 풍류명사들과 교유(交遊)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관심은 거들먹거리는 선비들을 놀려주는 데 더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당시 왕실의 종친이자 선비로 이름을 날리던 벽계도정 이종숙을 골탕 먹였는가 하면, 개성에서 생불(生佛)로 통하던 지족선사를 파계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작가 최인호의 소설을 보면 황진이가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지족선사가 홀로 수행하고 있는 선실(禪室)로 찾아가는 대목이 나온다. 그녀가 선사의 방으로 들어서서 비에 흠뻑 젖은 옷을 한 겹씩 벗자 그녀의 백옥 같은 속살이 드러났다. 하지만 벽을 향해 돌아앉은 선사는 미동도 없이 염불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가 알몸으로 다가가 선사의 몸을 감싸자, 선사의 몸이 그녀의 무릎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 때 생겨난 말이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하찮은 신분일지라도 자신의 순정을 바칠 첫사랑만큼은 함부로 정할 수는 없는 법, 수많은 한량과 선비들이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 하였지만 그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내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뭇 사내들의 유혹을 뿌리쳤다. 그러던 어느 날 점잖아 보이는 한 선비가 찾아왔다. 황진이는 그에게 주안상을 올린 다음 지필묵을 갈아 ‘점일이구(點一二口), 우두불출(牛頭不出)’이라고 써 보였다. 선비는 황진이의 치마 자락을 말없이 끌어당겨 단필로 ‘허(許)’라고 적었다.  

황진이는 그 선비에게 큰절로 삼배를 올린 다음, ‘산 자에겐 한 번, 죽은 자에겐 두 번, 세 번의 절은 첫 정절을 바치는 서방님께 드리는 여인의 법도입니다’라고 설명하였다. 즉, 점일이구(點一二口)는 언(言)의 파자요, 우두불출(牛頭不出)을 조합하면 오(午)자이다. 그리고 이들 언(言)과 오(午)를 합치면 허(許)자가 되는 고로, 황진이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허락한다는 뜻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날 밤 황진이와 선비는 운우의 정을 나누며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잠시 주안상을 보러 간 사이 선비는 문창호지에 시 한 수를 적어 놓고 홀연히 사라졌다.

‘물은 고이면 강이 되지 못하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꽃은 피지 아니 한다/ 내가 가는 곳이 집이요 하늘은 이불이며/ 목마르면 이슬 마시고 배고프면 초근목피가 있는데/ 이보다 좋은 곳 또 어디 있으랴.’

황진이가 옛사랑을 잊지 못하고 전국을 찾아 헤매다 박연폭포가 내려다보이는 화담산방(花潭山芳)으로 그를 찾아갔을 때 선비의 몸은 많이 노쇠해 있었다. 그들은 스승과 제자로 한참을 더 살다 선비가 세상을 뜨자 그녀는 운수(雲水)가 되었다. 이후 송도에는 3절에 관한 이야기만 전해질 뿐, 그녀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