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전국이 연일 시끄럽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런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축산 농가들이 왜 살충제를 쓸 수밖에 없었는지 근본원인을 밝혀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살충제 달걀 파동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시선은 생산 농가를 비난하는 쪽에 맞춰져 있다.

작년에 조류독감이 번지면서 살아있는 닭 3800만 마리를 살처분한 것처럼 이번 살충제 달걀 파동도 공장식 축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가축을 키우는 농민들은 먹을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게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살충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공장식 축사를 하지 않고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닭들은 일생을 A4용지보다 작은 철망에 갇혀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온갖 기생충이 창궐하게 되고, 농민들은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살충제 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동물복지를 실천하는 농가들도 있다. 절친한 선배 한 분은 여주에서 1000마리 미만의 닭을 키운다. 선배는 닭의 개체수가 1000마리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그 이유는 1000마리가 넘어가면 손수 만든 사료를 먹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선배가 정성껏 배합해서 만든 사료를 배불리 먹은 닭들은 천지사방 산으로 흩어져서 온종일 자유를 만끽한다. 그리곤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밥을 먹은 뒤 200평 규모의 하우스 여기저기에 달걀을 낳는다.

이곳에서 조류독감이나 진드기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게 가능한 건 선배의 눈물겨운 노동과 닭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있기 때문이다. 선배는 닭에게 꼬박꼬박 ‘닭님’이라는 존칭을 붙인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십 년 전, 큰물이 계곡을 쓸고 내려오면서 선배의 닭장을 덮친 일이 있었다. 닭들은 급류에 휩쓸려 몰살했고, 망연자실한 선배는 모든 걸 접고 이사 갈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일부 살아남은 닭들이 산속에 숨어 살면서 개체수를 불렸고, 반 년 뒤 300여 마리의 닭들이 무리를 지어 집으로 찾아왔다. 그 광경을 본 선배는 그 자리에 엎드려 큰절을 하면서 ‘닭님, 감사합니다’ 하고 울면서 인사를 올렸다.

선배와 함께 살아가는 닭들은 그래서 행복하다. 물론 이곳에서 살아가는 닭들이 다 천수를 누리는 건 아니다. 닭들은 환경만 좋으면 삼십 년 가까이 산다. 하지만 선배는 생계를 위해서 주문이 들어오면 닭을 잡는다. 닭을 잡을 때에도 선배는 ‘죄송합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겠습니다’ 하고 속죄의 인사를 올린다.

그렇게 해서 선배는 닭 한 마리에 3만원을 받고, 달걀은 개당 1000원을 받는다. 도시 사람들로서는 기함할 수밖에 없는 가격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너무 싸게 파는 거 아니냐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우리는 축산 농가의 고통은 외면한 채 닭고기와 달걀은 싼 게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닭들의 비참한 일생에 그 어떤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30년 살 수 있는 닭들이 육계는 고작 40일을, 양계는 20개월 만에 생을 마감한다. 살충제 달걀은 축산 농가의 부도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잘못된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축산 농가를 겨눈 비난의 총구를 거두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선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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