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박사학위 취득한 안희철 박애원 과장

교통사고 겪고 증권맨에서 사회복지사 변신
정신장애인과 함께한 경험 학위 논문에 담아
“다시 주어진 인생, 타인에게 기여하는 삶 살고파”

 

정신장애인 요양시설 박애원에서 일하는 안희철 과장이 최근 명지대에서 사회복지 박사 학위를 취득해 주위의 축하를 받고 있다.


[고양신문] 고양시 일산동구 설문동에 자리한 정신장애인 요양시설 박애원의 대외협력팀에서 일하는 안희철 과장은 요즘 주변인에게 축하 인사를 받기 바쁘다. 지난 8월 명지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50대의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시작한 지 3년6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만에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안 과장은 “현장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한 점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학위 취득이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사실 안 과장은 젊은 시절 잘 나가는 증권맨이었다. 사회적 성공을 향해 내달리던 그가 상대적으로 처우가 열악한 사회복지사로 변신해 학업적 성취를 이룬 것에 대해 주변인들의 격려와 축하가 답지하고 있는 것.

불의의 교통사고가 안겨 준 새로운 도전 

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한 그는 여의도 증권회사로 출근해 숨가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다 30대 중반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고 두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 깨어났다. 꼬박 1년의 긴 회복과 재활을 거쳐 겨우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사를 넘나들었던 경험은 인생에 대한 새로운 갈망을 품도록 했다.
“다시 한 번 인생의 기회가 주어진 셈인데, 좀 더 보람된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그동안 나와 가족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는 반성도 했구요. 노인복지관을 찾아가 무작정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지요.”

처음 주어진 자원봉사는 상담 업무였다. 주말마다 복지관을 찾아 자원봉사를 펼치면서 자연스레 사회복지사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결국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냈다. 인생 1막이 ‘나’를 위한 삶이었다면, 인생 2막은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것. 당시 그의 인생 차선 변경을 위해 친절한 조언을 해줬던, 지금은 모 기관 관장이 된 한 사회복지사와는 지금도 속내를 터놓는 절친이다.

사회복지 분야에 뛰어들어 아동구호단체의 대외업무, 사회복지법인 신문 기자 등의 일을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시설을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단법인을 목표로 조그만 사업장을 열었다. 어르신택배를 운영하고 공동 작업장을 만들며 의욕적으로 사업을 펼쳤지만 경험과 준비 부족으로 뜻대로 되진 않았다.
“제2의 인생을 시작했을 때 결정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던 가족들도 대책 없이 일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서는 많이 힘들어했지요. 결국 1년 만에 실패를 인정하고 사업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정신장애인들과 함께하며 다양한 활동 전개 

그에게는 실패 경험을 성숙의 계기로 삼는 지혜가 있었다. 자신만의 일을 하겠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는 첫 다짐을 다시 되새기며 박애원에 입사했다. 새로운 일터는 안희철 과장에게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줬다.
“사회적 편견에 둘러싸인 정신장애인들이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욕심 없는 심성을 가지고 스스로의 병마와 싸우며 살아가는 모습이 저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이 분들을 위해 내 삶의 시간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애원에 입사해 그는 대외협력 업무를 전문화했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기관, 또는 기업과 결연을 맺고, 선한 도움의 손길을 끌어들이는 일이 그의 과제였다. ‘디딤돌’이라는 소식지를 신문 형태로 변경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도록 한 이도 안희철 과장이다. 분기별로 발행하는 ‘디딤돌’에는 박애원의 소소한 소식들이 알차게 실린다. 그동안 맺은 인연들에 대해 안 과장은 고마운 인사를 잊지 않는다.
“새고양로타리클럽은 매년 박애원의 모든 가족들이 함께 가을 소풍을 다녀올 수 있도록 후원하고 있습니다. 바이네르와 청아공원도 꾸준히 박애원에 도움을 주고 있구요. 그밖에도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바쁜 일과를 쪼개 뒤늦게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뭘까?
“일에 대한 보람과 만족도는 높았지만, 사회복지에 대한 이론적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늘 따라다녔어요. 남들은 너무 늦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제3의 인생에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경험과 이론을 연결해보고 싶었어요.”

현장 경험에 이론적 전문성 더해 

안희철 과장의 학위 논문 제목은 ‘정신요양시설 거주 정신장애인의 자기 결정이 회복에 미치는 영향 : 사회적 지지의 조절효과 분석’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정신장애인들의 회복과 증상 조절을 위해서는 일상속에서 적절한 자기 결정권이 주어져야 하며, 그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가족이나 시설 관계자 등 주변인들의 사회적 지지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논문의 요지다. 오랜 기간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애정과 관심으로 그들을 관찰해온 안 과장의 따뜻한 시선이 그의 논문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현재 명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고양시 사회복지종사자 처우개선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는 안희철 과장에게 학위 취득 후의 계획을 질문했다.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정신장애인들과 함께하는 곳이 제 삶의 현장입니다. 다만 질병과 사회적 편견이라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는 정신장애인들을 위해 저의 경험과 연구가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박애원 마당에 선 안희철 과장. 기마병이 고아를 안고 있는 모습의 조형물은 1954년 설립 당시 고아원으로 출발한 박애재단의 정신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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