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용의 호수공원 통신>

호수공원에 딱 한 그루 있는 호두나무 열매.

 

김윤용 『호수공원 나무 산책』 저자

[고양신문] 폐렴이 와서 지난 한 달 동안 몸이 힘들었습니다. 호수공원 산책도 그동안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씩 회복하는 것 같아서 모처럼 호수공원을 향해 걷습니다. 백마역에서 출발해 백마공원~마두공원~강촌공원~낙민공원을 지납니다. 호수공원 육교를 건너면 바로 호수공원 산책로입니다. 이곳을 한 바퀴 돌면 5㎞ 거리여서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합니다.

한 달 전만 해도 이 길을 쉽게 걸었는데 오늘은 출발부터 머리가 거부 반응을 나타냅니다. ‘몸도 힘든데 좀 쉬지, 뭘 걷겠다고 그러시나’ 하구요. 근육과 뼈에 각인된 걷기는 이 길을 걸으라며 재촉하는데 머리가 장난을 하는 겁니다. 산책길이 굉장히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몸이 익숙하게 기억하던 길을 머리가 꾀를 부리고 있습니다.

결국 호수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관찰하기에 호수공원에는 150여 종이 넘는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호두나무와 가래나무, 참죽나무, 탱자나무는 딱 한 그루씩만 자라고 있습니다. 제 두 발과 눈으로 관찰한 것이니 놓친 것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호수공원 그 드넓은 공간에 오직 한 그루만 자라는 나무여서 더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 자주 찾아가 인사를 나눈 나무들입니다.

호두나무는 월파정 들입에서 아랫말산 방향으로 가다 보면 자작나무 무리가 자라고 있는데, 그 풀밭 안쪽에 외롭게 비실비실 자라고 있습니다. 호수공원을 개발하기 전에는 이곳이 습지나 논이었으니 배수가 어렵고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 흙일 것입니다. 호두나무는 배수가 좋은 곳에서 잘 자라는 습성이 있는 나무이니 자라기 힘들겠지요. 하여튼 올해에도 호두알 여러 개 열렸습니다. 벌써 풀밭에 떨어진 호두알도 눈에 띄는 군요.

중국인들은 호두를 ‘오랑캐 나라에서 들여온 복숭아를 닮은 열매’로 해석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호도(胡桃)였던 이름이 나중에 우리말 호두로 바뀌었습니다. 잎은 깃꼴겹잎이고 작은잎은 5~7개로 나타납니다. 꽃은 암수가 한 그루에 함께 자랍니다.

가래나무는 단정학이 있는 자연학습관 입구에서 출발해 정자 쉼터 바로 못 미쳐 산책로 방향에 한 그루 자라고 있습니다. 호두나무와 달리 열매가 여러 개 모여 달리고, 열매는 둥그렇지 않은 길쭉한 럭비공 모양입니다. 잎은 깃꼴겹잎이지만 호두나무에 비해 작은잎이 훨씬 더 많습니다. 작은잎 모양이 농기구 ‘가래’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왔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지금 호수공원 가래나무는 벌레들이 잎을 모두 갉아먹어 끙끙 앓고 있습니다. 까닭에 여름에 보았던 수많은 열매들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지역생태활동가, 도코로지스트 이야기』(이상북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자신이 사는 곳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알아가고 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책등에 밝히고 있습니다. 일본어 ‘장소’를 뜻하는 ‘도코로’에 ‘전문가, 행위자’를 뜻하는 ‘ist’를 붙여 만든 낱말이라고 합니다. ‘어떤 장소의 전문가’, ‘특정 장소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는 사람’ 따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제가 바로 도코로지스트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호수공원을 걸으며 나무를 관찰하고 기록해 왔기 때문입니다. ‘어느 곳에 어떤 나무가 지금쯤 열매를 맺었겠구나.’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고양신문 독자 여러분도 가까운 장소를 정해 도코로지스트로 성장하길 권해 드립니다.

호두나무 수꽃차례.
호두나무 암꽃.
가래나무 암꽃.
가래나무 열매.

▲ 사진제공 = 김윤용 작가. 2016년 호수공원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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