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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잠시 속도를 늦추는, 그 섬에 가고 싶다<공감공간> 가을 나들이 코스로 추천하고픈 강화 교동도
  • 유경종 기자
  • 승인 2017.10.07 09:56
  • 호수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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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땅 지척에 건너다보이는 중립수역에 위치
교동대교 개통되며 한 나절 나들이코스로 인기
교동향교, 연산군 유배지 등 역사 유적 풍성
옛 정취 남은 대룡시장, 구경하는 재미 쏠쏠

 

교동도 초입에서 만나는 고구저수지. 사진 왼쪽에 아스라이 바다 건너 북녘 땅 연안군이 보인다.


[고양신문]  교동도는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속한 섬이다. 섬에서 또 섬으로 건너가야 하니 찾아가는 길이 만만찮지 싶겠지만 걱정할 것 없다. 김포에서 강화도로, 또 강화에서 교동도로 연육교가 놓여 있어 일산대교를 건너 한 시간 여 차를 밟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교동대교가 놓인 건 불과 3년 전이다. 육지와 연결되며 섬을 찾는 이들의 발길도 부쩍 늘었다. 특히 주말이면 소박하고 호젓한 풍경을 찾아 온 나들이꾼들이 이어진다.
교동도에 가을이 한창 무르익고 있다. 세월조차 잠시 쉬어가듯 속도를 늦추는 곳, 소박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볼거리 가득한 교동도로 훌쩍 떠나보자.

하늘과 호수가 만나는 고구저수지

교동도는 채 5km가 되지 않는 강화만 바다물길을 사이에 두고 북녘 땅 연안군과 마주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섬에 들어서려면 해병대 장병들의 가벼운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최전방 접경지역의 긴장감은 크게 느낄 수 없다. 교동도 관광안내지도를 펼쳐보니 남북 중립수역에 위치한 교동도를 ‘평화의 섬’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밀접한 대치가 만들어 낸 아슬아슬한 평온이 새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교동도로 들어선 나들이꾼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고구저수지다.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는 고구저수지는 낚시꾼들에게는 꽤 유명한 명소다. 굳이 낚시대를 드리우지 않더라도 잠시 차를 세우고 시원한 풍광을 둘러볼만 하다. 연과 부들 등 다양한 수생식물이 보기 좋게 수면을 장식하고 있고, 멀리 수평선을 그리는 둑 너머로는 아스라이 북녘 땅의 능선이 조망된다. 한쪽에는 근사한 포토존 조형물도 놓여 있어 동행한 이와 번갈아 포즈를 취하게 만든다.

나들이를 떠나면서도 짊어지고 있는 마음의 짐 따위가 있다면 저수지의 수면위로 반짝이는 햇살 속에 툭 던져버리자. 마음의 빈 공간을 미리 만들어둬야 섬에서 마주칠 새로운 풍경들을 담아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억새, 부들, 수련이 가득한 고구저수지 수변. 섬에서 맞이하는 가을 정취가 은은하다.


탁 트인 조망이 일품인 화개산 전망대

물을 만났으니 이번엔 산에 올라보자. 화개산은 교동도에서 가장 높다지만 259m에 불과하다. 산에 오르기 전에 잠시 연산군 유배지를 둘러보자. 조선 역사에서 가장 패악스런 임금으로 오명을 남긴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뒤 이곳 교동도에 유배되어 가장 수위가 높은 위리안치(圍籬安置, 유배처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두르고 나오지 못하게 하는 형벌)에 처해지고, 결국 두 달여 만에 죽음을 맞이한다. 이곳에는 유배처와 인물들을 재연해 놓아 역사의 교훈을 새기게 한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전망이 트인 중턱에서 내려다보니 방금 전 들렀던 고구저수지와 주변의 광활한 들녘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약수터를 지나 조금 가파른 경사로를 잠시 오르니 어느새 정상이다. 느긋하게 걸었는데도 30분이 채 안 걸린 듯.

정상에서 바라보는 사방의 전망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섬의 동남쪽으로는 조선시대 교동읍성이 있었던 마을과 충청도와 경기도, 황해도를 아우르는 삼도수군통어영지가 있었다던 남산포의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물길 건너로는 석모도와 강화도 풍경이 겹쳐진다.

섬을 에워싸고 있는 너른 들녘에는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섬이면서도 어찌 저리도 드넓은 평야를 품고 있을까. 삼국시대부터 물이 얕고 평평한 갯벌을 꾸준히 간척해 섬과 섬을 잇고 드넓은 농경지를 얻었다고 한다. 화개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땅이 윤택하고 햇살이 기름진 섬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북쪽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니 북한 연백평야와 개성으로 연결되는 예성강 하구가 보인다. 날이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도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온단다. 분단 전에는 헤엄쳐 건너다녔다 할 만큼 지척의 거리다. 망원경이 설치돼 있어 풍경을 자세히 살필 수 있다. 북녘 땅 논에서도 벼이삭이 평화로이 익어가고 있다.

사실 교동도는 분단 전 북쪽 연안군과 밀접한 생활권에 속해 있었다. 고려의 수도 개성과 무역항이었던 벽란도를 드나들던 상인들과 중국 사신들이 머물던 곳이 바로 교동도였던 것이다.
 

화개산 등산로 초입에 자리한 연산군 유배지. 역사적 사건을 재연한 조형물이 재미를 더한다.
화개산 정상 정자에 서면 북녘 땅 연백평야와 예성강 하구를 비롯해 섬 주변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코스모스 물결 춤추는 교동향교

화개산에서 하산해 화개사와 교동향교로 향한다. 중간에 대룡시장이 있지만 일단 그냥 지나치자. 먹거리가 있고 목을 축일 곡차가 있는 시장골목은 아무래도 나들이의 말미에 찾아야 제격일 테니 말이다.

화개사와 교동향교는 한 길로 들어서 양 갈래로 갈리는 길 끝에 각각 자리하고 있다. 고려 때 창건되어 목은 이색이 머물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화개사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절집이다. 잔디가 정갈하게 깔린 마당에 서면 남쪽으로 트인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다. 마당 한쪽에는 수령이 오래 된 소나무가 당당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화개사에서 돌아 나와 오래된 비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삼거리에서 반대편 길로 꺾어 올라가면 교동향교다. 교동향교를 찾기 가장 좋은 시절은 바로 요즘이다. 하마비가 서 있는 주차장에서 향교까지 올라가는 오르막길 좌우로 언덕 가득 펼쳐진 코스모스밭이 바람에 출렁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해바라기도 기우는 태양이 아쉬운 듯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 유명한 꽃잔치 장소를 몇 곳 다녀봤지만, 교동향교 언덕의 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만들어내는 장관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지 싶다. 뒤로는 듬직한 화개산이, 앞쪽으로는 서해바다의 넉넉한 햇살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조화로운 풍경을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8호인 교동향교는 우리나라 향교 역사의 첫 손가락에 꼽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고려 충렬왕 때 유학자 안향이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유학의 태두인 공자와 제자들의 초상을 가져와 전국 최초로 모신 곳이기 때문이다. 성현의 제사를 올리는 대성전과 학문을 정진하는 명륜당은 물론 유생들의 거처인 동·서재, 외삼문 등의 건물이 정갈하게 보존돼 있다. 토요일에 방문하면 가훈쓰기, 유교예절 배우기 등의 전통교육 체험도 할 수 있다.
 

교동향교 언덕길 양쪽에 펼쳐진 코스모스와 해바라기밭.
전국 최초로 공자의 초상을 모신,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교통향교의 외삼문.

 
삼도수군통어영이 있었던 남산포구

향교 남쪽 바닷가로 향하는 마을이 과거 관아가 있었던 읍내동이다. 이곳에는 조선 인조때 축성한 교동읍성이 있었지만, 현재는 읍성 남문의 무지개모양의 홍예문만 남아있다. 기자가 찾은 날은 아쉽게도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이마저도 온전히 구경할 수 없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과거 삼도수군통어영지가 있었던 남산포로 향한다. 요즘으로 치자면 해군사령부 본부가 주둔했던 셈이다. 황해를 중심으로 교역과 경계를 펼쳤던 과거에 예성강과 임진강, 한강의 들머리에 교동도가 자리를 잡고 앉았으니 이래저래 얼마나 중요한 섬이었을지 짐작이 된다. 비록 과거의 영화는 저물고 고깃배 드나드는 소박한 포구가 됐지만, 남산 언덕에 서서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을 환송하고 물자를 싣고 오는 교역선을 맞이했을 선조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벼이삭이 익어가고 있는 풍요로운 교동도의 들녘. 오랜 간척 사업 덕분에 섬이지만 사방으로 넓고 기름진 논을 품고 있다.
조선시대 충청도, 경기도, 황해도를 아우르는 삼도수군통어영 본영이 있었던 남산포 앞바다. 지금은 소박한 포구의 풍경이다.

 
볼거리 즐길거리 가득한 대룡시장

교동도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대룡시장이다. 교동면사무소와 학교, 우체국 등이 모여 있느는 섬의 중심부에 대룡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시장의 내력을 살피자면 한국전쟁까지 거슬러가야 한다. 황해도에서 잠시 포화를 피해 피난을 온 이들은 휴전선이 그어지며 영영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끊기면서 교동도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 지척에 보이는 고향의 산하를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이 황해도 연백의 연백시장을 본따서 만든 시장이 바로 대룡시장이다. 이후 오랜 시간 민통선으로 육지와의 자유로운 왕래가 제한된 지정학적 이유로 인해 시간이 멈춘 듯 재래시장의 원형이 고스란히 이어졌다. 한동안 섬 인구가 줄고 실향민 1세대들이 세상을 뜨며 쇠락하기도 했지만, 3년 전 다리가 놓이며 새로운 활기가 돌고 있다.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점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겹다.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하나 둘 나타나는 교동이발소, 동산약방, 중앙신발은 시계를 과거로 돌려놓은 듯 옛날 점포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미용실에선 똑같은 스타일의 파마머리를 한 어르신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수다를 펼치고, 다방에선 쌍화차 향기가 골목으로 흘러나온다.

주말과 휴일에 외지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늘며 시장 전체가 추억과 향수를 겨냥한 테마 여행지로 변신하고 있다. 담벼락에는 70~80년대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재미난 포스터와 표어들이 그려져 있고, 설탕을 듬뿍 무친 꽈배기와 호떡은 어느새 대룡시장의 명물이 됐다. 꼬마 손님들은 좌판을 벌인 달고나 아저씨 곁을 떠날 줄 모르고, 인삼막걸리를 파는 주점 앞에선 주말마다 통기타를 멘 중년 가수가 거리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에선 변화의 조짐도 감지된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에서 마주칠 듯한 세련된 카페나 소품가게도 들어섰다. 시장 초입에 지어지고 있는 번듯한 건물들도 완공되면 시장 풍경도 지금과는 좀 달라질지도 모른다. 혹여 대룡시장도 서울의 여러 골목마을처럼 상업적 개발이 가속되며 소박한 정취를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묵은 것들의 가치와 새로운 것들의 활력을 균형 있게 아우르는 지혜를 대룡시장을 지키는 이들에게 기대해보자. 그런 기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교동도에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 교동도와 대룡시장 나들이 도움말을 청하고 싶으면 ‘교동사랑회’에 문의하면 된다. 역사와 문화해설, 나들이길 안내를 들을 수 있다. 010-6376-9836

 

교동시장을 찾은 꼬마 손님들은 달고나 좌판에 둘러 앉아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대룡시장 골목 끝에 자리한 교동초등학교 운동장에 드리운 크고 시원한 그늘은 수령이 오래 된 측백나무 울타리의 작품이다. 운동장 한쪽에 서 있는 개교 100주년 기념탑의 연도가 2007년이니, 올해로 110년이 된 학교다.

 

주말이면 외지에서 찾아오는 나들이꾼들의 발길이 늘고 있는 교동시장. 강화 막걸리를 파는 주점 앞에서 무명 가수가 통기타를 연주하며 거리공연을 펼치고 있다.
시장 담벼락 곳곳마다 70~80년대의 시대상을 추억할 수 있는 재미난 포스터와 표어들이 그려져 있다.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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