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개혁정책에 시동이 걸리자 예상대로 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저항이 만만치 않다. 검찰이나 재벌 등 당사자 뿐만아니라, 조선 동아 등 보수 신문들은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재벌개혁이나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분명해 이들 분야에서의 개혁작업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개혁정책에 비교적 우호적인 방송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진보적 신문과 인터넷 매체가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여론 왜곡도 우려할 사항은 아니다. 오히려 보수신문이 재벌과 검찰의 편을 들면 들수록 국민들은 더욱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어려운 문제는 지방분권이다. 추진 주체의 힘이나 여론의 지지 모두 미약하기 때문이다. 서울 독점 체제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의 힘에 비해, 지방분권을 원하는 지방사람의 힘은 그야말로 오합지졸 수준이다. 특히 여론주도력에 있어서는 비교가 안된다. 한국사회의 여론은 서울사람에 의해, 그들의 입장과 이익을 우선 반영해 형성된다. 이를 주도해온 것이 언론이다. 그래서 한국 언론은 보수, 진보 관계없이 중앙에 포진한 기득권 세력이다. 적어도 지방분권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다. 그들은 지역격차를 체감하지도 지방분권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왔다.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한국언론은 권력의 주위에 맴돌며 갖가지 이득을 챙겨왔고, 권력은 언론을 가까이 두고 편리하게 이용하고 통제해 왔다. 그 결과 한국 신문의 95%가, 방송프로그램의 90%가 서울에서 만든 것이다.

자연 신문지면과 TV화면 대부분은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채워진다. 지방에서 발생한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대구 지하철 사고처럼 대형사고가 터진 경우이다. 중앙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지방의 모습은 낙후하고 궁핍해서 사람살기 힘든 곳일 뿐이다. 잠깐 주말에 놀러가거나 쓰레기 처리하는데 필요한 장소일 뿐이다. 물론 지역에도 언론은 있다. 대도시마다 지역방송국과 지방일간지가 있고, 중소도시에는 주간지역신문이 발행된다. 그러나 지역언론은 모든 면에서 중앙언론의 곁가지에 불과하다. 지방방송국은 중앙방송의 중계소나 다름없으며, 지방일간지는 지역내 부조리의 산실이고, 주간지역신문은 지역유지의 홍보창구로 전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금과 같은 언론구조, 즉 비대한 중앙언론과 부실한 지역언론을 그대로 둔 채 지방분권을 추진한다면 저항을 이겨내기 힘들 것이다. 설사 정부차원에서는 지방분권이 실현된다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지방분권이 새삼스러운 국정목표는 아니다. 이미 10여 년 동안 지방자치제를 통해 지방분권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구호만 요란했을뿐,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지 못한 채, 지역 기득권 세력들을 위한‘그들만의 자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역 간의 불균형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중앙언론의 분산없이 행정기능의 분산만 시도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지역내의 정보교환과 여론을 수렴해주는 지역언론의 기능을 간과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지방분권이 이뤄지려면 행정수도의 이전과 같은 상징적이고 획기적인 작업에 앞서, 각 지역사회의 기초를 다지는 차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지방분권이이란 정치나 행정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교육 등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유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과제이다. 또한 우선 순위를 정하고, 지역 간의 이해를 조정해가며, 순차적으로 실시해야할 국가적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지역 내에서는 물론이고, 지역과 지역 간, 국가 전체적으로 원활한 정보교환과 의견수렴이 가능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물리적 기반으로서 도로나 상하수도 전기와 같은 기반시설이 필요한 것처럼, 지역주민들 스스로 지역사회를 정비하고 발전시킬 건강한 지역언론이야말로 지방분권의 첫 번째 조건인 것이다.

지금처럼 중앙언론이 여론을 독점한 상태에서, 지역언론이 부실하고 부패한 상태에서, 지방분권을 추진한다면 실패할 것은 자명하다. 지방분권의 필요성과 절박성을 대다수 국민들에게 설명할 경로가 없기 때문이다. 설사 지방분권이 강력하게 추진된다하더라도, 장차 비대해질 지방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지역언론이 없다면 오히려 지방정부의 부조리와 비효율적 역기능만 늘어날 것이다. 결국 ‘지방분권’ 역시 ‘지방자치’처럼 한때의 유행어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중앙에만 집중된 기형적인 한국언론의 구조를 지역적으로 고루 분산된 정상적인 언론구조로 바로 세워야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지방분권을 할 수 있다.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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