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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마을길 구석구석 이야기가 숨어 있네<공감공간> 수역이 마을과 배다리 누리길
  • 정미경 시민기자
  • 승인 2017.10.16 16:01
  • 호수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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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덕양구 수역이길 앞에서 포즈를 취한 '스토리가 있는 속살 골목여행' 참가자들과 이성한 (왼쪽에서 다섯번째)

 

[고양신문] 높은 하늘에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알싸한 공기가 뺨을 스치는 가을, 어느 곳을 걷더라도 좋은 계절이다. 고양시에는 명성이 자자한 고양누리길과 평화누리길, 북한산 둘레길 외에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걷기 좋은 길이 여럿이다. 산길과 마을길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걷는다면 즐거움은 더 커진다.
지난 12일 고양시평생학습프로그램의 하나인 ‘스토리가 있는 속살 골목여행’ 나들이길에 동행했다. 모임을 인솔한 이성한 도보여행가(한양문고 테마여행 대표 진행자)는 4시간 동안 이어진 나들이길 내내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버무려 풍성한 이야기를 전해줬다.

‘으뜸 집’ 가까이의 ‘삭은 절’

나들이 출발지인 원당이라는 지명은 ‘으뜸가는 집이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으뜸가는 집이란 바로 인근 서삼릉을 말한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다보니 옆으로 사근절천이라는 작은 하천이 이어진다. ‘사근절’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재밌다. 원당역 뒤쪽 성라산에 예전에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많아 계속 나무를 파먹어 스님들이 절을 떠났다. 폐허가 된 절은 낡고 삭아가며 ‘삭은 절’이라 불리게 됐고, 삭은 절이 있는 동네에 흐르는 하천이라는 뜻으로 사근절천이 되었다고 한다. 하천이나 산, 동네의 지명 하나하나에는 이렇듯 나름대로의 내력이 있다.
 

기응세 선생 묘역에서 한석봉이 쓴 묘비에 대해 설명 중인 이성한 대표

한석봉 글씨 남은 기응세 묘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23호인 기응세(奇應世) 선생 묘역은 왼쪽에 남편이, 오른쪽에 부인이 함께 누운 쌍분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 중기 최고의 명필 한석봉이 쓴 묘비다. 비록 비바람을 맞은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는 상태지만, 아마도 글씨는 탁본을 떠서 소중하게 보관돼 있을 것이다.
기응세는 고양8현(高陽八賢)의 한 사람인 복재 기준(奇遵)의 손자이자 한성 판윤을 지낸 기대항(奇大恒)의 아들이다. 그는 효심이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묘 앞쪽에는 묘비와 함께, 향을 피워 위에 계신 혼을 불러오는 향로석이 있고, 그 바로 뒤에는 도굴방지를 위한 커다란 상석이, 뒤쪽 아래쪽에는 혼이 노니는 곳인 혼유석이 있다.

먹거리촌 유명해진 수역이 마을

기응세 묘역을 지나 잠시 운치 있는 산길을 지나니 여유로운 시골 마을 풍경이 이어진다. 수역이 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현재 도로 건설로 인해 멀쩡한 외관의 집들 대부분이 폐가로 변해 있다. 수역이란 ‘물이 거꾸로 올라온다’는 뜻이다. 과거 고양시는 물이 범람하는 지역이었다. 자유로가 만들어지면서 든든한 제방역할을 하게 되어 지금은 수해 걱정을 덜게 되었다. 마을에는 수역이천이라 불리는 작은 하천이 안쪽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수역이라는 이름 유래의 또 다른 설로는 어르신들이 장수한다, 즉 수명이 긴 마을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마을을 빠져 나가니 노랗게 익은 벼가 넘실대는 논이 펼쳐진다. 사진을 찍기 좋은 풍경이다. 그 앞쪽으로 맛집들이 늘어서 있는 지역은 수역이촌 먹거리촌으로 불린다. 나들이 길잡이 이 대표가 예전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주꾸미, 보리밥, 두부집과 커피아저씨 등 몇몇 음식점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와 깨알 같은 맛 정보를 재미나게 들려준다.

기적소리 그리운 원릉역

수역이천을 나와 낙타고개로 이어지는 길을 통과해 수역이마을 마을회관 앞을 지나니 양쪽으로 길게 뻗은 녹슨 철로가 보인다.
지금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 교외선 원릉역이다. 폐간이역을 걷다보면 어릴 적 향수가 느껴져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혼자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교외선은 서울 서부역에서 신촌역을 거쳐 일영, 송추를 지나 의정부까지 이어지는 철로지만 2004년부터 여객용으로는 사용이 중단됐다. 현재는 한 달에 한두 번 군수물자 운송 열차가 운행될 뿐이다. 원릉역은 배우 이제훈이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영화 ‘파수꾼’을 촬영한 곳이어서 더 반갑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원릉, 폐기차역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육골쉼터에 있는 박재궁길과 배다리누리길 이정표

배다리 마을 감싸고 걷는 숲길

철길을 빠져 나와 박재궁마을을 지나 대궐고개약수터라는 푯말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간다. 한참을 걷다 보니 탄약대로와 육골쉼터를 지나 배다리누리길이 이어진다.
배다리는 주교동(舟橋洞)의 한글 이름으로 고양시청 주변 마을을 일컫는다. 한강에 제방이 만들어지기 전, 주교동까지 강물이 들어와 마을 주민들이 배로 다리를 만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배다리누리길은 숲속길과 황토길, 군사도로와 철책길, 밭길 등으로 이어져 지루하지 않다. 숲 사이로는 멀리 북한산 주봉들이 마치 연꽃이나 왕관, 혹은 닭 벼슬 모양으로 보인다.

숲길을 앞장서 걷던 이 대표가 나들이꾼들을 풀이 무성한 군부대 철책 담 바로 옆으로 안내했다. 견달산 정상에 있는 군부대 기지다. 그 안쪽에 커다란 불상 뒷모습이 보인다. 삭막한 군부대 안에 왜 4m 크기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을까? 궁금증을 품은 채 길상사(주지 보산스님)로 발길을 옮겼다. 따뜻한 커피와 차를 대접 받으며 보산스님으로부터 직접 미륵불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그야말로 마치 전설 속 이야기처럼 탄성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현달산 군부대 내에 있는 통일미륵불에 대해 설명중인 길상사 주지 현도 스님

통일염원 담은 견달산 미륵불

7년 전에 나이 많은 스님이 찾아와 주지스님에게 “앞으로 길상사에 1200년 된 부처님이 오신다. 그 부처님이 오시면 남북통일의 단초가 열린다. 부처님이 오시면 뒷산에 모시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까 생각했는데, 5년이 지나 여주에 사는 한 농부가 찾아와 “우리집 농토에 석불이 있는데, 꿈에 부처님이 자꾸 나타나 고양시에 있는 길상사에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한다”는 게 아닌가.
전문가로부터 고증을 받은 결과 이 미륵불은 고려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고, 원래 현달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가 일제시대에 반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후 보산스님은 여주의 미륵불을 모셔 와서 군부대의 협조로 지난해 현재의 위치에 모셨다. 이 부처님은 남북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아 ‘통일미륵대불’이라 불리고 있다.

보산스님은 “조만간 군부대에서 협조를 해줘서 철조망이 곧 제거될 것이다. 그러면 언제든 그곳에 올라가서 걷고 조망할 수 있다”며 “고양시에 이런 보물급의 문화재가 있다는 것은 큰 긍지이자 자랑거리다”라고 말했다.
차를 마시며 구수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몸이 따스해졌다. 구름이 끼고 다소 쌀쌀한 느낌이 드는 날이었지만 길상사를 내려와 헤어지는 마음이 훈훈했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땅이 축축하게 젖어 있어 더 짙어진 흙냄새와 풀냄새, 숲속 나뭇잎 냄새도 좋았다. 혼자라도 좋았겠지만 함께여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
 

■ 나들이 코스 : 원당역-행주기씨 종중 도선산-기응세 묘역-수역이마을-원릉역-박재궁마을-탄약대로-대궐고개약수터-육골쉼터-배다리누리길-길상사(총 8km, 4시간 소요)

■ 도움말 : 이성한 도보여행가(한양문고 테마여행 대표 진행자)

 

골목 여행 참가자들에게 원릉역에 대해 열심히 설명중인 이성한 대표
걷기에 좋은 옛 숲길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배다리누리길
 

정미경 시민기자  gracesoph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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