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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의 흔적 찾는 부지런한 두 발이 나의 스승”고양시향토문화보존회 안재성 회장
  • 유경종 기자
  • 승인 2017.10.16 16:28
  • 호수 1341
  • 댓글 1

<당신은 어떤 시민인가>

이웃과 함께 일상의 현장에서 시민다운 삶을 살아가는 ‘어떤 시민’에게 다가가는 시간. 네 번째 만난 주인공은 고양시향토문화보존회 안재성 회장이다. 부지런한 활동과 소탈한 인품으로 폭넓은 인맥을 맺고 있는 그의 이야기 속에는 고양땅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향토문화 보존을 향한 식지 않는 열정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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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향토문화보존회 안재성 회장은 문봉서원의 역사와 선비들의 생애을 정리한 책을 출간하고, 대한민국막걸리축제를 개최하는 등 누구보다도 바쁜 가을을 보내고 있다.


나의 부모님은 강원도 원주 분들이고, 나 역시 강원도 시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께서 철원에서 염색사업을 크게 하셨는데 해방과 한국전쟁 등 역사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터전을 잃고 서울 불광동으로 이사를 하셨다. 그래서 불광초등학교를 다녔지만, 1973년부터 고양군 화전에서 살다가 83년 원당으로 이주했다. 젊은 시절에는 크라운맥주, 현대약품 등에서 사회생활을 했는데, 좀 자유로운 기질이 있어 직장생활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

1980년대부터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던 고양과 파주 일대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나 역시 시류를 타고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에 여기 저기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광탄 인근의 골프장 책임자로 일하며 젊은 나이에 돈을 꽤 벌어보기도 했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좀 모이는 편이라 지인들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저런 사업 제안들이 들어오곤 했다. 덕분에 자동차 매매상사와 병원을 운영하기도 했고, 당시만 해도 고양시 유일의 관광호텔이던 행주호텔에 자리하고 있던 규모가 큰 사업장의 책임자로 일하기도 했다. 돌아보니 인연이 닿는 대로 여러 가지 일들을 기웃거리며 젊은 시절을 보낸 셈이 됐는데, 힘들고 험한 일도 겪어가며 단단한 기질을 다진 계기도 됐다.

도시화 과정 겪으며 향토문화의 소중함 눈 떠

삶의 전환점을 만난 건 2001년이다. 그해 지역의 큰 어른이신 이은만 회장을 만났다. 지금은 문봉서원 원장 직함을 가지고 계신 이은만 회장은 고양문화원장을 역임하고, 고양시향토문화보존회 활동을 하며 고양땅의 유·무형 향토문화를 찾아내고 보존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은만 회장의 사무실에 자주 들락거리며 이런저런 문화사업을 돕다 보니 나도 모르게 향토문화와 관련된 일에 하나둘 발을 들여놓게 됐다. 2005년에는 사패산 터널 반대 투쟁에 힘을 보태며 지역사회 현안에도 눈을 떴다.  

고양땅의 정체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니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욕심도 저절로 따라왔다. 이후 고양땅에 관련한 역사와 인물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향토사는 대학에 학과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전공이 있을 수 없는 분야다. 그저 많이 찾아보고, 들춰보는 수밖에 없었다.

가장 좋은 스승은 나의 두 다리였다. 향토문화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곳이면 몇 번이고 발품을 팔아 찾아갔다. 나는 늘 자료는 현장에 있다고 얘기한다. 특히 오랜 역사와 수많은 역사적 인물을 품고 있는 고양땅은 구석구석마다 역사적 자료가 널려 있다. 남들보다 부지런한 두 다리가 내 스승인 셈이다.

역사의 흔적 찾아내고 보존하는 사업 펼쳐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눈이 떠지고 향토사와 관련된 지식이 쌓여갔다. 자연스레 이은만 회장의 뒤를 이어 고양시향토문화보존회를 맡게 되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꾸려오고 있다. 향토사는 그 땅에 사는 사람이 스스로 찾고 지켜야 한다. 향토사는 지역의 누군가가 발로 뛰면서 찾아낸 것을 중앙에서 인용하며 비로소 빛을 본다. 그러한 까닭에 나 역시 혼자 공부하고 찾아낸 사실들을 필요한대로 정리했다. 그러다보니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가고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자세한 연구는 다음 세대에게 넘기자는 마음으로 우선 내 몫의 것을 적재해 놓자는 생각이다. 

4년 전, 고양이라는 지명을 얻은 지 600년 되는 해를 기념해 『고양의 역사는 농업의 역사다』라는 책을 엮기도 했다. 고양땅의 역사는 농업을 빼 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래서 늦기 전에 농업인들의 증언을 모으고 관련 자료를 찾아 정리해 고양 사람들의 삶의 자취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책이다.

1년에 한 번 일산문화공원을 들썩이게 만드는 대한민국 막걸리축제를 치르는 것도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이다. 전국 어디를 가든 축제가 참 많지만, 우리 것을 가지고 함께 신명나게 즐기는 축제는 막걸리축제가 으뜸이지 싶다. 막걸리는 우리나라 식생활의 정체성이라 할 만한 발효문화의 산물이다. 행사를 준비하고 치르는 일이 매 번 쉽지는 않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막걸리축제의 가치를 알아주고 함께 즐기는 분들이 늘고 있다. 이런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보다 내실 있고 재미있게 치러야겠다는 소명감이 생긴다.

오랜 염원 담아 『문봉서원과 선비의 삶』 출간

최근에는 『문봉서원과 선비의 삶』이라는 책을 펴냈다. 고양시 유일의 사액서원이었던 문봉서원은 고양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기에 지금은 사라져버린 문봉서원의 복원과 그곳에 배향된 여덟 분 선비들의 삶에 대한 조명은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자료들을 찾고 정리해 앞부분에서는 문봉서원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철폐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피고, 뒤편에는 고양팔현의 생애와 흔적을 담아 책으로 엮었다.

숙종 14년(1688년) 고양지역 유림들에 의해 세워진 문봉서원은 숙종 35년(1709년)에 사액서원이 된 후 선현들에 대한 배향과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조선의 대표적인 서원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처음에는 4명의 선비들을 모시다 나중에 4명의 인물이 추가되어 남효온·김정국·기준·정지운·민순·홍이상·이신의·이유겸 등 여덟 분을 배향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7년(1870년)에 강제 철거됐다.

문봉서원의 특징을 꼽자면, 무엇보다도 향촌 유림들의 자율 기구라는 본래의 성격에 충실한 서원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지역의 서원들이 정치색에 물들어 학파의 성쇠에 따라 명멸했던 것과는 달리, 문봉서원은 당파에 치우치지 않고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지속적으로 상소를 올려 배향된 선비들을 추대하고 사액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의 삶을 정리하며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생략해야 하는지를 조절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책을 편집하며 고양인의 정체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과거 고양에 살았던 선조들은 무엇을 고심하고 무엇에 연연하며 살았던 것일까를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나라도 더 찾고 보존하려는 관심 커져야 

향토문화 보존활동을 하며 느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양시가 급속한 도시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문화의 흔적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일이다. 예를 들자면, 오래전 흥도동 인근에 행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궁말이나 궁터와 같은 지명이 전해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보다 정밀한 발굴이나 보존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버렸다. 찬우물의 지명도 눈 뜨고 놓친 또 하나의 사례다. 

이런 일들을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양시에 향토사를 편찬하고 보전하는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고양시에는 향토사를 전담하는 상설 위원회가 없다.

내 나름대로 부지런히 한다고 했지만, 아직 손도 못 댄 분야가 너무 많다. 이제는 고양땅의 민속과 풍습, 지명 유래 등에 대해 구술을 해 줄 어르신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뜨고 있다. 그러다보니 하나라도 더 줍고 챙겨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날 때도 있다.
돌아보면 향토문화를 보존하는 일에 무작정 뛰어 든 내 인생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늘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아내에게 언제까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거냐는 핀잔도 듣지만, 나처럼 사는 사람도 한 명쯤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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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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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범구 2017-10-16 17:28:23

    "나처럼 사는 사람도 한 명쯤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아무렴요.
    절대 공감하며 지지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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